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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Jul 05. 2020

아내의 힘과 체력의 비밀

미처가 (美妻歌) 제3장 : 신이 아내를 만들 때 

신이 아내를 만들 때였다. 


미모를 한 스푼 넣었다. 그리고 다시 한 스푼을 더 넣었다.

뭔가 부족하다 싶었는지 눈웃음을 한 스푼 넣고, 호수 같은 눈동자도 한 스푼 넣었다. 

백만 불짜리 미소도 한 스푼 넣었다. 

지혜를 한 스푼 넣고, 식욕은 한 스푼 반을 넣었다.

모정(母情)은 반 스푼만 넣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체력은 스푼으로 넣지 않고 국자로 한 가득 넣었다. 

인간 세계에 이런 여장사 하나쯤 태어나도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체력을 국자로 넣다 보니 아주 오래전에도 이런 장사(壯士) 만들었던 기억이 났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주인공 항우였다.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 또한 세상을 덮을 만하다는 바로 그 항우 말이다. 

미처가 미처 (美妻歌 美妻 / 아름다운 아내를 노래하네 아름다운 아내를

미처요 미처 (美妻謠 美妻 / 아름다운 아내를 노래하네 아름다운 아내를)


 완전히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4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아내의 외모는 찬란했던 20대와 비교해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녀 같은 앳된 이미지를 벗고 한층 성숙미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국내 非연예인 부분에서 Top 3 안에 들 정도로 여전히 아내의 외모는 눈부시다. 어려서부터 외모 콤플렉스가 있던 나는 아내의 외모에 반해 결혼한 사실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외모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비단결처럼 곱더라... 뭐 그런 익숙한 동화 같은 이야기다. 아내의 외모를 자랑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 이쯤에서 일단락 짓고 (자기 검열 중이다.) 남다른 아내의 힘과 체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아내의 힘과 체력은 정말 대단하다. 일반적인 사람과 비교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남성 운동선수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 아담하고 가녀린 몸에서 끝을 알 수 없이 나오는 포스의 비밀은 무엇일까? 


 활동적인 아내의 정적인 취미 중 하나는 식물 가꾸기다. 그러다 보니 집에 화분이 많은 편이다. 한때 플로리스트로 활동을 했고, 어려서부터 꽃과 나무를 좋아해 집안에서 다양한 식물을 키우고 있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그전에는 관심도 없던 식물에 애정이 생겨나기 시작해 시간이 날 때마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 주거나 잎사귀를 정리해 주곤 한다. 그런데 가장 힘든 물 주기는 언제나 아내가 담당하고 있다. 크고 작은 화분을 모두 욕실로 옮겨 샤워기로 충분히 물을 뿌려 주는 일이다. 한 번에 다 할 수 없으니 몇 차례씩 나눠서 해야 한다. 그런데 그중 몇 개의 화분은 내가 들기에도 쉽지 않을 정도로 매우 무겁다. 언젠가 아내가 나에게 화분 옮기는 것을 명령했다가 그만 허리를 삐끗한 이후로 (일부러 그런 것은 절대 아닌데) 다시는 내게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 일 이후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은 모두 아내의 몫이 되었다. 물론 내가 집에 있을 때는 둘이 함께 화분을 옮기기도 하지만, 내가 없다고 가만히 있을 아내가 아니었다. 퇴근 후 샤워하려고 욕실에 가보면 발 디딜 틈도 없이 화분이 가득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이 무거운 화분들을 도대체 어떻게 혼자 옮겼는지 물어보면 아내는 백만 불짜리 미소만 보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아내가 정성 들여 가꾸는 식물들 중 일부. 아내의 손길이 닿으면 정말 잘 자란다.>

 이런 적도 있다. 우리 가족은 한때 캠핑을 자주 했다. 캠핑에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사실 캠핑에서 가장 힘든 일은 캠핑장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아파트일 경우) 집과 엘리베이터, 주차장을 오가며 짐을 옮기는 것이 가장 힘들다. 텐트와 타프를 비롯한 각종 캠핑장비와 먹을 것, 물놀이할 것 등을 챙기면 웬만한 집 이사하는 것과 비슷한 규모로 대이동을 해야 했다. 그렇게 2박 3일 캠핑을 다녀오면 모두가 녹초가 되어 집에 도착하는데 그때 단지 입구에 잠시 차를 세워 짐을 모두 내린 후 차를 세워놓고 돌아와야 했다. 그럴 때면 아내는 아이들은 먼저 씻으라고 올려 보내고 혼자서 그 많은 짐을 집 앞까지 옮겨 놓는다.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집까지 거리와 짐들의 무게를 감안하면 도저히 아내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주차를 하고 돌아오는 채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그 모든 일을 보란 듯이 끝내 놓는다.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아내가 삼손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평소 체력으로 10km 마라톤 정도는 가뿐하게 뛰는 아내가 존경스러울 뿐이다.>

 아내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유일하게 아쿠아슬론 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 성남시에서 개최한 제1회 아쿠아슬론 대회에 참가했는데 수영 1.5km와 달리기 10km를 모두 무난하게 완주했다. 지난해에는 성남시장배 장거리 수영대회에도 출전했는데 무려 3.8km를 수영만 하는 대회였다. 약 600여 명이 참가한 대회에서 아내는 무려 112위를 했다. 여성 참가자 중에는 13위를 했으니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용인마라톤 대회 10km에 출전해 1시간 2분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마라톤을 취미로 하는 분들께 10km는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율동공원을 고작 몇 번 뛰어본 것이 전부인 아내에게는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었다. 거의 연습 없이 평소 체력으로 10km를 달린 것이다. 그때 나는 5km를 둘째와 함께 뛰었는데 말이 뛰었다는 것이지 거의 산책 수준으로 걸었다. 그래서인지 5km는 기록도 측정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내는 마스터즈 대회 여성 접영 100m 경기에 참가해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마추어 수영인에게 접영 100m는 워낙 체력 소모가 심해 완주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종목이었다. 

<하산하는 길은 그래도 우리와 함께 해 주는 참 고마운 아내> 

 지난해에 제주 한달살이를 하면서 한라산 등반을 할 때도, 올레 7코스를 걸어갈 때도 아내는 나보다 30분 이상을 빠르게 앞서 갔다. 물론 나는 어른들보다 체력이 부족한 준과 큐를 얼래고 달래며 함께 가야 했기 때문에 일부러 천천히 걷기도 했다. 하지만 솔직히 작정하고 걸어도 아내를 따라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음 날 우리 남자 세 명은 녹초가 되어 일어나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지만 아내는 새벽같이 일어나 수영을 갈 정도록 체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수영장에서 돌아온 아내에게 엄지 척을 날리는 것이 내게 남아 있는 유일한 체력이었다.


 내가 열지 못하는 꼭 닫힌 잼 뚜껑을 열어준다거나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읽을 책을 한 번에 50권씩 빌려온다거나 하는 일은 이제는 너무 흔한 풍경이 되었다. 아이들 책 50권이면 코스트코 장바구니 2개에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양이다. 그것을 양쪽 어깨에 걸치고 집으로 들어서는 아내의 모습을 본 순간 어떤 역도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마지막 시도가 떠올랐다. 숭고하면서 비장미가 느껴지는 힘의 결정체! 내가 얼른 달려가 하나를 받으려고 하자 아내가 소리친다. 


 "비켜, 다쳐!"  


 신의 영역에 있는 아내는 인간의 영역에 있는 내가 다칠까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이때 나는 비로소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과연 아내의 남다른 힘과 체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첫 번째 답은 아마도 사회(시대)가 요구하는 정신력일 것이다. 비리비리한 (나는 절대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남자 세 명을 수호하는 가장이라는 타이틀에 요구되는 책임감과 그로부터 비롯된 정신력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엄마로, 아내로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강한 정신력을 요구한다. 그 정신력은 때로는 물리적인 한계마저도 뛰어넘게 한다. 하지만 아내의 힘과 체력은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가지고 있지 않은, 아내만이 가진 포스의 근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바로 아내의 굵은 허벅지, 일명 꿀벅지라고 추측해 본다. 

<낚시 바늘이 바닥에 걸리자 아이들이 엄마를 찾는다. 힘이 필요할 일에는 엄마가 등장해야 해결된다.>

 사실 내 종아리나 허벅지도 어디 가면 빠지지 않을 정도로 굵고 튼튼한 편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반바지만 입은 내 모습을 보고 씨름 선수 출신이냐고 묻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과 금연 운동을 한 것이 전부인 나로서는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건강해 보인다는 말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내 하체도 아내에 비하면 정말 초라한 수준이다. 아내와 비교하면 그냥 성냥개비처럼 보인다. 게다가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리가 얇아지는데 아내는 더욱 튼튼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매일 하는 수영과 스피닝으로, 코로나 이후로는 스피드 등산으로 하체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주에서 거문오름을 탐방할 때 아내를 본 해설사가 운동선수인지 물어본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보통은 반바지를 입지 않았지만 날씨(비) 때문에 스포츠 반바지에 긴 양만을 착용했던 아내는 누가 봐도 운동선수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내는 웬만해서는 반바지나 치마를 입지 않았다. 가끔 치마를 입어도 발목까지 오는 긴치마를 고집했다. 물론 나는 그 모습이 보기에 좋았지만 아내에게는 그런 숨겨야 하는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슈퍼 히어로들이 자기의 정체가 탄로 날까 봐 평소에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장치 같은 것들 말이다. 슈퍼맨의 안경 같은.

<아내의 슈퍼 발차기에 날아가는 준. 2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전설이...>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내와 나는 이제 막 태어난 아이의 하체를 보고 크게 웃은 적이 있었다. 우리 둘을 닮아 하체가 거의 강호동 아저씨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이라면 남들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 태생적 강인함 때문인지 오늘도 둘째는 힘으로 첫째를 압도한다. 가끔 아내의 튼튼한 하체를 보고 '신은 공평한 것 같아'라고 말하면 아내는 '오늘 기분 좋은가 보다. 앞니 보이지 마라!'라고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러면 나는 '빼빼 말라서 골골대는 것보다 튼튼한 허벅지가 백 배는 낫지요.'라고 듣기 좋은 말로 위기를 모면한다. 사실 얼마나 다행인가 아내가 1년 내내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는 것이. 아내의 튼튼한 허벅지 덕분에 오늘도 나는 슈퍼 히어로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아내의 허벅지가 포스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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