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읽는 그림책 : 사자가 작아졌어
'세 번 읽는 그림책' 브런치 매거진 연재를 시작하고 아이들 책장에 꽂혀 있는 그림책들을 내 기준으로 필터링했다. '그래, 이 책은 준이 좋아했었지.', '이 책은 Q가 엄청 좋아했는데.' 그렇게 기억을 더듬어 책장에서 꺼낸 책이 차곡차곡 쌓였다.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책들도 따로 빼두었다.
우리 집 가장이자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위대한 그림책 전문가'인 아내가 쌓아둔 그림책을 보더니 실소했다. '너무 아빠 기준으로 골랐네' 라며 정곡을 콕 찔렀다. (일부러 그런 측면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그림책이라며 책장에서 다양한 책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조폐공사의 베테랑 위폐 감별사의 행동과 같아 책을 고르는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렇게 수북하게 쌓인 책이 Q 키만큼이나 되었다. 이 정도면 매일 한 권씩 소개해도 석 달은 걸릴 듯했다. 역시 아내는 아내다!
엄마, 아빠가 갑자기 그림책을 꺼내서 읽고 의논하고 수상한 행동을 보이자 호기심 많은 Q가 무얼 하는 건지 물어보았다.
"너희들이 좋아했던 그림책들만 따로 빼 둔 거야. 아빠가 글 쓰려고."
Q는 자신의 키만큼 쌓인 그림책들을 이리저리 보았다. 회상에 잠긴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어떤 책은 그 자리에서 바로 펼쳐 읽었다. 한참을 그러더니 책장으로 가서 그림책 한 권을 꺼내왔다.
"내가 (지금) 진짜 좋아하는 책은 이건대?"
Q가 가져온 그림책은 <사자가 작아졌어!>였다. 이런 책도 있었나 싶었다. 책을 휘리릭 넘겨 보며 이 책이 왜 좋은지 Q에게 물어보았다.
"단순한데 재미있어."
"그게 끝이야?"
"응. 다른 게 더 필요해?"
대답할 말이 없었다. 메시지는, 교훈은, 행간의 의미는, 작가의 세계관은? 그런 것들은 Q와는 상관없었다. 그림책은 그저 재미있으면 그만이었다. 방파제에서 멋진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찍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파도에 온몸을 강타당한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오로지 재미를 위해 책을 읽는다. 다른 목적은 없다. 그래서 부담 없이 읽고 또 읽는다. 책을 읽는 게 공부가 되고, 숙제가 되고, 의무가 되는 순간부터 책과 점점 멀어진다. 그러고 보니 어느 때부턴가 준과 큐가 책을 읽으면 독서록을 쓰게 하고 책에 담긴 의미나 교훈을 찾아내게 하고,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 파악하도록 했다. 재미가 숙제로 바뀌었던 것이다. 독서도 단계별로 숙련도가 요구되고, 또 독후활동도 필요하므로 당연한다고만 생각했다. 저녁때가 되면 스스로 책장에서 책을 꺼내 독서하던 아이들이 '책 좀 읽어야지.' 잔소리를 해야 억지로 책을 펼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주로 읽던 책도 그림책에서 아빠가 지정해 주는 글 위주의 청소년 도서로 바뀐 것도 한 몫했으리라. 그래서 성인이 될수록 책과 멀어지는 걸까? 살아가는 일도 복잡하고 버거운데 독서까지 골머리를 앓아가며 해야 하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도 편하게, 그냥 재미로 책을 읽으면 어떨까? (누가 책 읽으라고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사자가 작아졌어>는 용서에 관한 그림책이다. 아프리카 초원의 왕 사자가 늦잠을 자고 깨어났다. 그런데 갑자기 용맹한 사자가 인형처럼 작고 귀엽게 변해버린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사자를 어린 가젤이 구해주는데, 사자와 어린 가젤과는 슬픈 '악연'이 있다. 사자는 어린 가젤에게 용서받기 위해 애쓰고, 결국 진정한 용서를 받게 되지만.... 결말이 참 재미있다. 일종의 열린 결말이라고나 할까? 정성훈 작가님은 우리가 그저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아프리카 초원을 누비는 가젤과 그 뒤를 쫓는 사자를 보며 아름다운 용서에 관한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Q가 이 책이 단순한데 재미있다고 말한 이유를 책장을 덮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슬픈 악연과 결말이 궁금한 분은 꼭 읽어 보세요.)
<사자가 작아졌어>는 그림책을 보는 어른과 아이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그림책의 역할이나 읽는 목적에 대해서도 고민할 부분이 많아졌다. 아이도, 어른도 책에 관한 흥미를 지속하려면, 적어도 독서를 하는 행위가 의무나 공부여서는 안되리라는 점도 확실해졌다. '책은 세상을 향해 난 작은 창'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하지만 창이 꼭 네모 모양만은 아니리라. 세모 모양, 원형, 원뿔형, 별 모양 셀 수 없이 많은 형태의 창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무수한 창을 하나의 시선으로만 본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일까? 오늘은 Q에게 한 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