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읽는 그림책 : 사자와 세 마리 물소
11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오리라.
겨울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내게 겨울은 애타게 기다리던 첫눈으로, 온기가 느껴지는 호빵으로, 누나한테 물려받은 빨간색 내복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당일, 우리 집에만 오지 않던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서운함으로 기억된다.
이런 까닭에 우리 아이들이 되도록이면 늦게까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게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너무 일찍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부재(不在)를 깨달았기에. 아이들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산타할아버지께 편지를 쓰면 선물과 함께 프린터로 출력한 답장을 올려놓았다. 크리스마스 당일 산타할아버지의 선물과 편지를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르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던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는 전 세계 아이들에게 답장을 써야 하니까 하나하나 손으로 편지 쓰시는 건 어렵지 않을까 하면서 시치미를 떼야했다. 아이들이 아빠 글씨체를 눈치챌 만큼 자랐기에 불가피하게 선택한 방법이었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트리 옆에 가지런히 둔 쿠키와 우유도 반씩만 먹었다. 산타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너무 바빠서 그마저도 다 먹을 시간이 없으셨나 보다 하면서.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행동했던지!
최선을 다해 동심(童心)의 세계를 지켜주고 싶었으나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결국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형제의 다툼 때문이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티격태격하는 형제에게 산타할아버지가 왜 선물을 주겠는가? 하지만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산타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 = 아빠와 엄마'임을 눈치챘다. 크리스마스에 선물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자기들끼리만 쉬쉬하면서 모르는 척했다. (둘의 대화를 엿들은 아빠한테 들키게 된다.) 이제 산타할아버지의 부재는 모두가 아는 비밀이 되었다. 어른이(어른과 어린이의 합성어) 부모의 동심을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가 오지 않는 건 당연했다.
산타할아버지의 부재를 깨닫게 된다는 건 어른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더 이상 어린이는 아니라는 말이다. 어린이가 아니라고 바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그 경계 어디쯤에 어른이가 있다. 한 발은 현실을, 다른 한 발은 꿈을 딛고 있는 존재가 어른이다. 신체적 나이나 법적 정의와는 별개의 문제다. 피터팬 신드롬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어른이 된다는 건 슬프고 무섭고 힘든 세상과 정면 대결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모든 어른은 용감하면서 비겁하다. (용감, 비겁이란 단어에는 선악의 개념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어른이는 어린이의 좋은 점과 어른의 좋은 점을 누리고 싶은 사람들의 피난처이다.
<사자와 세 마리 물소>는 어른이를 위한 그림책이다. 매정한 현실 세계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삶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음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어른이는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 꿈에 디딘 한 발을 빼내 현실에 내디딘 발 옆에 가지런히 놓는다. 무척 슬픈 일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산타할아버지의 진실처럼 늦출 수는 있어도 피해 갈 수는 없다.
산골짜기에 사는 절친한 친구 하얀 물소, 검은 물소, 노란 물소는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하게 산다. 하루는 심심해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중간에 자칼 무리를 만나지만 셋이 똘똘 뭉치면 무서울 게 없다. 그러다 초원에 도착하고 그곳에 정착하기로 한다. 초원에는 늘 배고픈 초원의 왕 사자가 살고 있다. 사자는 물소가 너무 먹고 싶지만 한꺼번에 셋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사자는 영리하다. 똘똘 뭉친 물소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물소들은 한 마리씩 사라지게 되고 마지막에 사자의 먹이가 되는 검은 물소의 절규만 메아리친다.
"난 너무 비겁했어요. 날 잡아먹어요. 당신이 하얀 물소를 삼키던 날, 그때 나도 이미 죽은 것과 같아요."
<사자와 세 마리 물소>에 등장하는 사자와 물소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상징이 되기도 한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2015년은 마침 회사에서 파업을 강행했던 시기였다. 주중에는 모여 농성을 벌였고, 주말에만 집으로 돌아왔다. 속사정을 모르는 아이들은 출장 갔다 돌아온 아빠에게 한아름 그림책을 가져와 읽어 달라고 했다. 그때 골라온 그림책 중 한 권이 <사자와 세 마리 물소>였다. 아이들에게는 아프리카 초원 약육강식의 세계를 보여준 그림책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달리 보였다. 자본(사자)에 고통받는 노동자(물소)의 이야기였다. 그때 처음 동료의 존재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다. 구호로만 외치는 '단결'이 아니고, 동료를 지켜야 하는 진짜 이유를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비로소 어른이에서 어른이 된 순간이었다.
어른이 잔혹동화 <사자와 세 마리 물소>를 읽는 데는 다소 용기가 필요하다. 현실과 마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매트릭스 주인공 네오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빨간 약을 삼켰다. 여러분에게는 빨간 약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이 있다. 현재 어른이인 당신은 이 책을 펼칠 용기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