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읽는 그림책 : 고라니 텃밭
고작 한 평 남짓 텃밭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의외로 한 평 텃밭은 넓다. 첫 해는 아무것도 모르고 쌈 채소만 잔뜩 심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쌈 채소가 처치 곤란할 정도였다. 아랫집, 윗집과 나누고 처갓댁도 드리고 심지어 춘천집까지 가져갔다. 처음에는 한 봉투에 여려 종류의 쌈 채소가 들어있는 씨앗을 흩뿌리기로 심었는데 자라난 싹이 잡초인지, 쌈 채소인지 몰라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은 흰 줄을 박아놓고 거기에 맞춰 씨를 뿌린다. 역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어느 해에는 오이가 풍년이고, 어느 해에는 애호박이 풍년이다. 함께 심어도 둘 다 풍년이 되지 않는다. 고추와 파프리카, 피망 같은 종류는 언제나 실패한다. 가지와 브로콜리도 언제나 망한다. 어느 해에는 참외와 딸기를, 또 어느 해에는 수박을 심기도 했는데 과실 맛을 보지는 못했다. 올 해는 샐러리와 방울토마토로 재미를 봤다. 여름 내내 비가 왔지만 오이도 괜찮았다. 여름 끝자락에 텃밭을 뒤집어 업고 모종으로 심은 김장무(15개)와 배추(3포기)도 나름 선방했다. 내년 선발 라인-업에 대한 구상도 일단락되었다. 상추(2종), 샐러리, 오이, 깻잎, 애호박에 단호박까지! 한 평이면 충분하다.
텃밭은 동네 뒷산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가다 보면 널찍한 평지에 있다. 텃밭을 통과해 계단을 오르면 울타리와 문 하나가 나오고, 그 문을 지나면 동네 뒷산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울타리 위, 아래로 철망이 쳐졌다.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는데 사정을 알고 보니 고라니 가족이 텃밭에 잠입해 작물들을 망쳐놓았기 때문이었다. 생계를 위해 짓는 농사도 아니고 고라니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평소 소신대로 친환경주의자에 박애주의자가 되어 감정적으로나마 고라니 편에 섰다. 철망 철거를 요청했냐면 그렇게 하진 못했다. 심정적으로만 동(動)했을 뿐 언제나 그렇듯 가장 쉬운 방관자의 길을 택했다.
가을 초, 한 주 전 모종으로 심었던 무와 배추에 물이나 줄까 해서 텃밭에 올라갔다. 지난주 심은 무 10개, 배추 5개 모종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OMG!" 분주하게 밭일을 하시던 텃밭 반장 아주머니가 새끼 고라니 짓이 분명하다고 했다. 오직 새끼 고라니만이 철망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그럴듯한 추론과 함께. 그렇게 심증만으로 새끼 고라니가 용의 선상에 올랐다. 인심 좋은 텃밭 반장 아주머니는 거의 매일 텃밭에 올라 와 일을 하는 분이라 그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괘씸한 고라니 녀석, 같은 편 텃밭까지 망쳐 놓다니!" 방관자에서 피해자로 입장이 바뀌니 '철망이 허술한가?'라는 생각으로 번졌다. 사람이란 참 이토록 간사하다.
김병하 작가님의 그림책 <고라니 텃밭>이 떠오르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작가님이 나보다 먼저 이런 일을 경험한 듯했다. 입으로만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외치는 나와는 다른 탁월한 해결책을 제시해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개인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제안이다. 하지만 한 지역, 도시, 국가로 확대해 보면 인간이 어떻게 자연과 상생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라니 텃밭>은 질문에 대한 해답이자, 또 다른 질문의 시작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자연과 인간'이란 주제로 다양한 생각을 나누기에 그만이다. 정감 가는 그림에 이야기도 담백해 유아부터 초등 저학년까지 좋아할 만한 그림책이다.
숲 속에 작업실을 마련한 화가 김씨 아저씨는 채소 기르는 게 좋아 텃밭을 만든다. 아내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옥수수며 감자, 다양한 쌈 채소와 온갖 작물을 심는다.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고 가꿈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누군가가 텃밭을 엉망으로 만든다. 모종을 다시 심고 허수아비를 세운다. 소용없다. 범인을 잡으려고 밤새 지키다 고라니를 만난다. 한밤의 추격전이 벌어진다. 고라니 대비용으로 더 높고 튼튼한 울타리를 설치한 날 아저씨는 엄마 고라니와 새끼 고라니 두 마리와 마주치게 되는데.... 결말은 직접 확인해 보면 좋겠다. 그림책 제목 <고라니 텃밭>에 실마리가 들어있다.
아내와 동네 뒷산 산책을 하다 새끼 고라니를 마주쳤다. 우리 텃밭을 망가뜨린 그 개구쟁이 녀석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보통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비탈길에서 눈에 띄곤 하는데 그날은 등산로 가운데 떡하니 서있었다. 사람이 보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더니 웬일인지 도망가지 않았다.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자리에 멈춰 서서 30초간 서로 마주 보았다. 꽤 멀리 떨어진 거리였지만 맑은 눈이 참 예뻤다. 그때 새끼 고라니가 말을 걸었다. (내 상상 속에서)
"아저씨, 미안."
"괜찮아. 별거 아니야. 모종은 다시 사 와서 심었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하지만 까칠한 새끼 고라니 상상 속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가지 않았을까?
"새끼 고라니야, 미안. 모종이 많이 부족했지?"
"네. 인간들이 산을 마구 파내서 먹이가 늘 부족해요. 앞으로 신경 좀 쓰세요."
"그럴게. 자주 내려와."
온통 초록으로 덮여 공기 맑고 눈 시원한 동네는 옛말이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산을 깎고 또 깎아냈는데 지금도 깎아내고 있다. 산이었던, 숲이었던 공간들이 집으로 차곡차곡 채워져 갔다. 고라니 가족한테 미안한 마음이나마 가져야 하는 게 자연에 의지해, 자연에 신세 지며 사는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일까? 무와 배추를 거둬들이며 고라니 가족 몫으로 무청과 배추 겉잎을 고스란히 밭에 두고 왔다. 찬 바람 불 때 한 끼 식사로 맛나게 먹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