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키우고 싶던 아이들의 대리만족

세 번 읽는 그림책 : 만희네 집

by 조이홍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다 보면 유독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이 있다. 준은 준대로, Q는 Q대로 좋아하는 취향이 제각각이다. 가끔 자기가 원하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아빠(엄마)가 읽어주어야 한다며 고집 피울 때도 많다. 물론 언제나 똑같은 비율로 시작한다. 10권 읽는 날은 5권씩, 2권 읽는 날은 1권씩 고르게 한다. 그러다 누가 먼저 '한 권만 더'를 외치면 '그림책 한 권 정도야 금방 읽으니까'라는 마음에 그러자고 한다. 동작 빠른 준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먼저 골라 오면, Q도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슬그머니 앞에 내려놓는다. 헤어 나올 수 없는 '한 권만 더'의 늪에 빠지는 날이다. 나는 어떻게든 꼼수를 부려 중간에 끊어내지만, 아내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 읽어준다. 지금도 셋이 함께 그림책에 파묻혀 잠든 사진을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다행히 준과 Q가 모두 좋아하는 그림책도 많다. 아이들이 '한 권만 더' 찬스를 쓸 때 방어하기에 그만이다. 둘 다 좋아하는 그림책이므로 '한 권 더'를 요청할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대표작은 뭐니 뭐니 해도 백희나 작가님의 <구름빵>이다. 독특한 회화 방식, 기발한 상상력과 감동적인 이야기는 엄청난 흡인력으로 아이들을 열광케 했다. 너무 많이 읽어서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천 번은 넘게 읽은 듯했다. 고대영 작가님이 쓰고 김영진 작가님이 그린 그림책도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용돈 주세요>, <지하철을 타고서>, <두 발 자전거 배우기>, <거짓말>, <집안 치우기> 등도 멀쩡하게 남아나지 않았다.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재미있는 이야기와 애니메이션 작풍으로 풀어나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권윤덕 작가님의 <만희네 집>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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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희네 집>은 사실 좀 의외였다. 아빠 입장에서도 그림책을 읽어줄 때 기왕이면 재미있는 게 좋았다. 그래야 숨겨왔던 동화구연 선생님 재능을 발휘하기 쉬웠다. 읽어주는 아빠가 재미있고 신나야 듣는 아이들도 재미있고 신나는 법이니까. 그런 면에서 내게 <만희네 집>은 심심한 그림책이었다. 솔직히 많이 심심했다. 사건(이야기) 위주의 전개 방식이 아니라 만희네 집 소개가 서사를 이루기 때문이다. 만희가 아니라 집이 작품의 주인공이었다. 작풍도 왠지 어릴 적 교과서 느낌이랄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아빠를 가장 많이 졸게 한 작품이 바로 <만희네 집>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준과 Q는 <만희네 집>에 흠뻑 빠졌다. 한동안은 '책 읽어줄게 골라와' 하면 항상 맨 위에 이 책을 올려놓았다. '또 그 책이야? 오늘은 다른 거.' 해도 아빠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도대체 아이들은 왜 이 책에 그토록 열광할까? 정말 궁금했다. 물론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매 장면마다 등장하는 귀여운 개들 때문이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깔깔거리며 개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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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갔다 돌아오는 만희의 발소리만 듣고도 대문 틈 아래로 머리를 내밀고 반갑게 맞이하는 개들, 엄마는 요리를 하고 만희는 간식을 먹는 부엌에 앞다리를 걸치고 들어오고 싶어 안달이 난 개들, 마당에서 책을 읽을 때면 옆에 와 조용히 낮잠을 자는 개들, 친구들이 놀러 와 마루에서 놀 때 장난감을 물고 도망치는 개들의 모습은 두 아이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만희가 목욕탕에서 물놀이를 할 때도 개들이 등장하는데 작가님의 의도가 분명했다. 반려견(伴侶犬, 한 가족처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개)이라는 말이 나오기 훨씬 전에 출간된 작품인데 작가님은 개도 가족의 일원이라고 말하려는 듯했다.


이 즈음 준과 Q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적극적으로 했다. 함께 산책 나가면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고 눈을 떼지 못했다. 한 생명을 온전히 잘 키워낼 자신이 없었던 아내와 나는 갖가지 핑계를 대며 만류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종종 거북이나 금붕어 입양으로 합의점을 찾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자꾸 일이 생겨 무산되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만희네 집>을 읽는다는 건 일종의 대리만족이었다. 집 안팎에서 만희와 함께 뛰어놀고, 먹고, 잠자는 가족 같고 친구 같은 개의 존재를 통해 자신들만의 사랑스러운 개를 꿈꾸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지도 못하는 이유로 그림책과 닿아 있었다. 그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권윤덕 작가님은 우리나라 1세대 그림책 작가다. 해외 유명 작가들의 그림책이 소개되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만희네 집>을 출간했다. 소박하고 정감 있는 작풍, 오래된 일상을 담아낸 이야기로 자신만의 그림책 세계를 구축했다. '핵가족'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말이 되었고, '1인 가족'시대가 된지도 한참 지났다.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아울러 투자(투기)의 대상이 아닌,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으로서 집의 의미를 <만희네 집>을 통해 느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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