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읽는 그림책 : 우리 모두 처음이니까
코로나로 극장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주말마다 거실 창문 블라인드를 스크린 삼아 가족 영화관을 열었다. 캠핑 다닐 때 장만했던 소형 프로젝터가 효자 노릇을 했다. 저렴하게 장만한 이동식 스크린도 있었지만 귀찮기도 하고 실용성도 떨어져 그냥 블라인드를 이용했다. 화질이 썩 좋지는 않아도 영화 보는데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주말이면 거실 소파에 온 가족이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았다. '세팅 천재' Q는 쿠션을 이용해 자기만의 안락한 자리를 만들어 놓는다. 손에는 팝콘 대신 깍두기 볶음밥이나 카레를 하나씩 들었다. 때론 떡볶이와 튀김, 순대 3종 세트를 뷔페식으로 차려놓기도 한다. 시원한 캔 맥주도 빠질 수 없다. 제주 한달살이를 하면서 그 매력에 흠뻑 빠진 제주 펠롱 에일과 위트 에일을 아내와 사이좋게 하나씩 고른다. (반쯤 마시다 바꿔 마신다) 제주에서도 구하기 어렵더니 이제는 편의점에서 4캔에 만 원 행사를 한다. 뭍에서 만나는 제주 맥주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때만큼은 아이들에게도 탄산음료를 허락한다. 우리는 맥주를 즐기면서 아이들에게는 마냥 '안돼!'라고 할 수 없었다. 준과 Q 형제에게도 온 가족이 함께 영화 보는 시간이 즐겁고 기다려지는 이유가 하나쯤 더 있어도 좋을 듯했다.
코로나가 선물(?)한 가족 영화관 덕분에 오래전에 함께 보았던 영화들을 다시 만나는 기회가 되었다. 이미 백 번은 넘게 본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비롯해 <쿵푸 팬더> 시리즈, <MARVEL> 시리즈, <스타워즈> 시리즈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또 한 편의 애니메이션 명작, <UP>도 보았다.
픽사가 제작한 <UP> 역시 가족 간 사랑과 꿈을 그린 감동 가득한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니 과연! 우리 가족도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감동의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전체적인 스토리도 흠잡을 데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초반 5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 짧은 시간에 두 남녀의 인생을 그토록 아름답고 슬프게 담아낼 수 있다니.... 한 편의 시를 감상하는 듯했다.
<UP> 상영이 끝나고 모처럼 아이들 성장 동영상을 보았다. 왠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마침 외장하드에 아이들 성장 동영상을 모아 놓기도 했다. 첫째 준이 스파이더맨처럼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둘째 큐가 밥 먹다 졸음을 참지 못해 투정 부리는 장면까지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둘이 의사놀이를 하는 영상, 강남 스타일에 맞춰 함께 춤추는 영상, 준이 Q에게 밥 먹이는 영상 등 사이좋은 모습이 담긴 영상들 뿐이었다. 준과 Q도 자기들 어린 시절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서로 자기가 더 귀여웠다며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아내와 나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저때가 좋았지"나 "저때는 귀여웠는데, 저때는!" 같은 말들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김을호 작가님이 쓰고, 신진호 작가님이 그린 그림책 <우리 모두 처음이니까>는 <UP> 초반 5분의 그림책 버전이라고 할만하다. 부부 사이가 모자 사이로만 바뀌었을 뿐이다. 아이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바라보는 엄마도, 엄마로서 생애 첫 도전이라 모든 것이 서툴고 낯설다. 폭풍 같은 사춘기를 지나치는 아이도 혼란스럽겠지만, 그런 아이와 눈이라도 마주치기를 기도하는 엄마 역시 혼란스럽다. 아이가 쌓인 분노를 쏟아내던 날 엄마는 처음으로 아이에게 용서를 구한다. 어색하고 서투르지만 엄마도 용기를 냈다. 그리고 그때부터 마법처럼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처음이니까> 그림책은 한 편의 시(詩) 같다. 우리가 걸어온, 또 우리 아이들이 걸어갈 삶이라는 여행에 대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예습도 없고, 복습도 없는 복잡하고 고달픈 삶을 '잘 사는' 숨겨진 비법 따위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모두가 처음이라 서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를 웃으며 대하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처음이니까>는 우리 모두 이미 알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일깨워주는 그림책이다. 여러모로 참 착한. 브런치에 <세 번 읽는 그림책>을 연재하는 취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이와 함께 한 번, 혼자서 한 번, 그리고 부부가 함께 한 번 읽어 보면 좋을 듯하다.
엄마도 이 삶의 여행은 처음이라
실수투성이에 어설픈 것도 참 많아.
처음 춤을 배울 땐 상대방 발을 밟기도 하고
처음 요리를 배울 땐 불에 데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 실수를 하고 상처가 생기지.
나무에 나이테가 생겨나듯......
그러니 조금 넉넉한 마음으로
웃으며 서로를 바라봐 주면 어떨까?
네가 엄마의 아들이라서, 엄마가 너의 엄마라서
행복하다고 말해 주면 어떨까?
너와 나, 우리 모두 처음이니까 말이야.
천사 같은 아내도, 친구 같은 아빠를 꿈꾸던 나도 요즘은 '잔소리 AI'다. 상황별로 다양한 잔소리를 장착해 난사한다. 잔소리 듣기에 내공이 쌓인 아이들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그래서 가끔은 집이 전쟁터가 된다. 사람 사는 게 다 이런 거 아니겠는가? 아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평화를 원한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가족 영화 상영 대신 <우리 모두 처음이니까> 낭독회를 가져볼까 한다. 백신은 이미 틀렸으니, 치료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