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읽는 그림책 : 돼지책 by 앤서니 브라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집안일 일부를 돕거나 스스로 책임지게 하였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부모에게 집중된 (특히 아내) 가사(家事)를 분담하고자 했다. 내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집안일이란 누구 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닌 가족 구성원이 함께 나누는 일이란 걸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처음 맡긴 일은 '장난감(레고) 정리'였다. 지금도 아이들이 즐겨 가지고 노는 레고는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많아 서랍장 두 개를 가득 채웠다. 조립 설명서만 모아놓은 서랍장이 따로 있을 정도다. 일단 레고 놀이를 시작하면 몇 일간은 내내 레고만 가지고 논다. 방안 가득 레고 부품을 깔아 놓고 별의별 세상을 만들어 낸다. 상상력을 키워주는 장난감으로 레고만 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만들고 허물고, 만들고 허물기를 반복하니 부품 하나를 찾으려면 안 그래도 복잡한 방안이 전쟁터가 됐다. 찾다 못 찾으면 '아빠 찬스'를 쓰는데 아빠라고 천리안을 가진 능력자도 아닌데 그 많은 부품에서 필요한 하나를 찾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주기적으로 레고 정리를 아이들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색깔별로 또 어떤 때는 부품 종류별로 분류하도록 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재미있어했지만 이내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깨달았다. 한번 시작하면 주말 내내 레고 정리에 매달려야 했다. 결국 일요일 밤에 아내가 '아빠 투입' 명령을 내려야 겨우 일단락되었다. 요즘 레고 보관 상태가 엉망이다. 조만간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지니 준과 Q는 5분 대기라도 해야 할 듯.
만화책과 그림책을 즐겨 읽는 Q는 책 정리 담당이다. 아빠 책은 예외다.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과 만화책은 세 장소에 나누어져 있다. 아이들 공부방, 화장실 앞 그리고 안방과 아이들 자는 방 사이. Q는 책을 쌓아 놓고 보는 버릇이 있다. 그림책이든 만화책이든 읽고 난 후 바로 꽂으면 좋을 텐데 옆에 쌓아두고 보다 그대로 방치한다. 이런 까닭에 Q가 세 곳의 책 정리를 맡게 되었다. 관리가 소홀하면 당연히 Q에게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Q는 책을 아무 데나 꽂기 때문에 1년에 두 번 책장 정리는 준과 내가 맡는다. 뾰족한 분류 방법이 없어 출판사별로 꽂는데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평소 Q가 출판사별로 꽂는다면 아낄 수 있는 시간이다. 책 정리 담당 Q에게 철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한 이유다.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아침에 눈뜨면 침대 정돈부터 하게 했다. 미 해군대장 맥 레이븐이 모교 텍사스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할 때 첫 번째로 꼽은 중요한 항목이기도 하다. 졸업식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의 말에 웃었지만 그는 진지했다. 하루의 첫 과업을 완수하면서 얻은 작은 뿌듯함이 그날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몇 년간 잔소리했는데 요즘에 들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침대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마 아빠가 해줄 때처럼 각이 살지 않는다. 지금부터 각을 잡을 줄 알아야 군대 가서 편할 텐데....
식사 후 자기가 사용한 식기(밥&국그릇, 숟가락과 젓가락)를 싱크대에 옮기는 것도 아이들 몫이다. 그것이 식사를 준비해 준 엄마 (가끔 아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나도 어디에서 식사를 하건 그렇게 한다. 왠지 식사를 하고 그대로 일어나면 마음이 찜찜했다. 식기를 옮기며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한 마디라도 더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설거지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딱 식기 옮기기만.
일주일 동안 쌓인 재활용품 분리수거도 아이들에게 맡긴다. 물론 너무 많으면 아빠가 함께 가지만 보통은 아이들에게 맡긴다. 이때 음식물 쓰레기는 서로 버리지 않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이럴 때는 민주적이고도 매우 합리적인 방법, '가위바위보'를 시행한다.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하는 게 더 좋다는 걸 아이들 스스로 깨닫게 되기까지 지켜볼 계획이다.
갈아입은 옷 빨래통에 넣기, 마지막으로 화장실 쓰고 나온 사람이 정리하기 등은 몇 년째 잔소리 중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겠으나 습관이 될 때까지 독려할 계획이다.
내가 집안일을 적극 분담한다거나 아이들에게도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나눈 것이 꼭 아내가 앤서니 브라운의 명작 <돼지책>을 구입해 우리 셋에게 읽어주었기 때문은 아니다.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 경우 평소 신념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아무리 잔소리를 늘어놓아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아이들은 <돼지책>을 읽은 후 확실히 달라졌다. 항상 집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부재할 경우 어떤 일이 생기게 될지 <돼지책>을 통해 살짝 맛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가 매우 사실적으로, 아빠가 매우 극적으로 읽어 준 탓도 있을 터였다. 좀 너무했나 싶을 정도로 준과 Q는 엄마의 소중함에 대해 각성했다. 그 시절에는. (효과가 아주 오래가지는 못 했다) 아무튼, 당시에는 사내아이 둘을 키우는 (거기다 큰 아이 남편까지) 아내의 최후의 방어선은 <돼지책> 덕분에 지켜진 셈이었다.
<돼지책> 표지 그림은 매우 인상적이다. 건장한 남편과 사내아이 둘을 업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매우 충격적이다. 업힌 세 사람은 웃고 있지만 업은 사람에게는 표정이 없었다. 엄마라서, 엄마니까 가족을 위한 희생이 당연한가? 희생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엄마도 힘들고 피곤하다. 엄마의 부재를 느낀 아빠와 두 아이는 어느 날 밤 집을 찾은 엄마에게 돌아와 달라고 무릎 꿇고 사정한다. 그리고 서툴지만 아빠도, 아이들도 자기 몫의 일을 한다. 그리고 비로소 엄마에게도 표정이 생긴다. 미소.
'성 역할'이라는 건 벌써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되어 버렸고, 교과서에나 나오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물론 아직 우리 사회는 '성평등'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꾸준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누구도 중간에 내릴 방법은 없다. 갈등보다는 화해와 대화로 모두 함께 목적지에 도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 아이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부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 나오는 남자 없는 세상은 허구의 이야기로만 상상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