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고 싶은 아이, 뛰어놀고 싶은 아이

세 번 읽는 그림책 : 얼음 땡!

by 조이홍

"우리가 아이들한테 너무 보수적인가?"


어느 날 아내가 물었다.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서 '제약사항'이 너무 많은지를 묻는 것이었다. '우리 같은 부모가 어디 있어?'라고 대답하면서도 '보수적'이라는 말이 귀에 걸렸다. 아이들 (특히 Q)이 집에서 거의 게임을 하지 않다 보니 다른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걸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게임에) 집중한다는 게 아내의 설명이었다. 그런 의미라면 보수적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인 준은 6학년 때 휴대폰이 생겼고, 초등학교 4학년인 Q는 아직 휴대폰이 없다. 가족 내규에 따르면 아이들 휴대폰 지급 시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그런데 6학년 때 학생회 일을 맡게 된 준은 휴대폰 없이는 학교 생활이 어려웠다. 불가피하게 지급 시기가 앞당겨졌다. 이런 분위기니 아이들이 모바일 게임이나 PC 게임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나마 휴대폰 보유자인 준은 게임에 관심이 없지만 Q는 달랐다. 게임 전문 유투버가 장래희망인 Q에게 게임은 삶의 절반을 차지했다. 그런 사정을 익히 아는 터라 아내와 나도 무조건 게임은 안된다는 입장은 아니었다. 자기 할 일 (학교 공부와 집 숙제)을 다하면 주말에는 게임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그 기회를 잡느냐, 잡지 못하느냐는 전적으로 아이들에게 달렸다. 그러니 지난여름 방학 이후 게임 기회가 현저하게 줄어든 게 우리 잘못은 아니었다.


요즘 한창 유행인 '어몽 어스'라는 모바일 생존게임이 있다. 아내와 나는 이런 게임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언제부턴가 Q가 크루원, 임포스터를 입에 달고 사는 통에 반 강제로 알게 되었다. 비록 게임은 못해도 Q는 이미 빠삭하게 정보를 꿰뚫고 있었다. 준의 휴대폰이 'Family Link'로 연결되어 있어 App. 설치가 불가능하자 우리 휴대폰을 노리고(?) 사전작업을 펼쳤다.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아내와 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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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Q가 도화지에 뭔가를 열심히 그리더니 정성스럽게 색칠까지 했다. 그리고 하나하나 오려냈다. 어몽 어스 캐릭터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가상의 공간에서 하는 게임을 현실에서 했다. 엄마, 아빠의 휴대폰에 게임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게임 캐릭터를 현실로 불러냈다. '저렇게까지 게임이 좋을까?' 아내와 나는 한참을 넋 놓고 그 모습을 보았다. Q의 모습 위로 내 어릴 적 모습이 겹쳐졌다.


어린 시절 개구쟁이였던 나는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도사였다. (우리 동네에서는 제일 잘하는 아이를 '도사'라고 불렀다) 동네 모든 딱지와 구슬은 우리 집, 내 보물창고에 있었다. 딱지치기와 구슬치기가 시들해지면 으레 오락실에 가곤 했다. 돈이 없어 직접 하지 못해도 (남이 하는 걸) 보기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오락실에 가는 걸 금지하셨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몰래 오락실 갔다 들켜 아버지에게 혼쭐이 나면 공책을 뜯어 오락을 그려서 매뉴얼(수동)로 만들어 놀았다. 방구차, 너구리, 킹콩 등 다양한 오락을 그렇게 즐겼다. 결국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 건가?


코로나로 일상을 빼앗긴 지 오래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매일 가는 수영도 가지 못할뿐더러 요즘은 야외 활동도 거의 하지 못한다. 집안에서 노는 것보다 집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장려하는 우리로서는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눈만 마주치면 티격태격하는 준과 Q도 놀 때만큼은 죽이 잘 맞는다. 정말 원 없이 신나게 논다. 게다가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Q는 10세 미만 아이들에게는 스타다. 아이들과 재미있게 잘 놀아주기 때문이다. Q가 놀이터에 나오면 집에 있던 아이들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아이들이 집에만 있으니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게임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예전처럼 밖에서 신나게 뛰어놀게 되면 그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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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강풀이 쓰고 그린 그림책 <얼음 땡!>은 뺑뺑이 돌 학원도, 혼을 쏙 빼놓는 모바일 & PC 게임도 없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학교가 끝나면 온 동네 친구들이 공터에 모여 구슬치기며 딱지치기, 고무줄놀이나 비석 치기를 하며 매일 신나게 놀던 우리들 이야기다. 휴대폰을 쳐다보는 아이도 없고, 마스크를 쓴 아이들도 없었다. 뽀얀 먼지를 간식 삼아 (가끔 진짜로 흙을 먹는 아이들도 있었다) 실컷 뛰어놀아도 감기 한번 안 걸리는 시절이었다. 초경량 패딩이나 롱 패딩이 없어도 누런 내복 하나만 겨울이 두렵지 않았다. 가끔 심하게 말뚝박기를 하다 허리를 다치는 아이나 겨울철 골목길에서 비료포대로 눈썰매를 타다 돌부리에 걸려 병원으로 실려가는 아이가 꼭 몇 명씩은 생겼지만, 다들 별 탈 없이 튼튼하게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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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하는 놀이의 꽃은 단체 놀이였다.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얼음 땡),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우리 집에 왜 왔니 그리고 오징어가 대표적인 단체놀이였다. 같은 편이 된 친구와는 백 년의 우정을 과시했고, 다른 편이 된 친구와는 철천지 원수 사이가 되었다. 다음 판에 편이 바뀌면 방금까지 적이 다시 동료가 되었다. 처음부터 모두 한 편이었으니 가능했다. 상품이 걸린 것도 아니고 놀이에 진다고 나라를 뺏기는 것도 아닌데 우리 편이 이기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했다. 때론 기꺼이 자기 한 몸 희생했다. 옷이 뜯기고 찢겨나가기도 하고 팔다리에 상처가 나도 우리 편을 위해서라면 물러서지 않았다. 오죽하면 '놀 때처럼 공부하면 OO대학에 가겠다'라는 말을 매일 들었을까. 팽팽한 긴장감 속에 대치하다가도 순순히 뒤로 물러날 때가 있었다. 엄마가 저녁밥 먹으라고 부를 때였다. 100미터도 넘는 거리에 있는 집에서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는 항상 정확하게 들렸다. 이름을 듣지 않아도 목소리로만 다들 자기 차례를 알아챘다. 해가 지고 어스름 저녁이 되면 그렇게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공터가 정말 공터가 된 순간이었다.


강풀 작가의 만화도 좋아해 구입해서 읽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림책 <얼음 땡!>을 참 좋아한다.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그림책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읽고 싶어서 종종 아이들에게도 읽어주며 '아빠가 어릴 때는 친구들과 이렇게 신나게 놀았지' 하면, '그럼 공부(숙제)는 언제 해?' 하고 곤란한 질문 세례를 받기도 했다. 정말 공부는 언제 했더라? 솔직하게 '아빠가 너만 할 때는 공부 같은 거 안 했어. 그냥 신나게 뛰어놀았지.'라고 말하려다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침묵하는 아빠를 용서해라, 아들아!


지금 내 휴대폰에는 Q가 간절히 원하는 '어몽 어스' 게임이 깔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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