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트 에코와 장자

세 번 읽는 그림책 : 움베르트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

by 조이홍

소설가, 철학자, 기호학자 움베르트 에코가 어린이들을 위해 쓴 하나뿐인 동화책!


얇은 동화책에 나온 그의 이름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걸작 <장미의 이름>은 20대의 풋풋했던 내가 가장 사랑한 소설 중 하나였다. 요즘도 10년 주기로 다시 읽곤 하는 <장미의 이름>은 1980년에 출간되었다. 나보다 몇 살 어리다. 하지만 그때는 누구나 이 책을 읽었다. 잘 나가는 소설이었다. 내 동기로 잘 나가는 '情을 나누는 파이' '커피와 잘 어울리는 크래커'가 허락해 준다면 <장미의 이름>과도 기꺼이 친구 먹고 싶었다. 지금까지 네 번 정도 읽었으니 앞으로 적어도 다섯 번은 옆에 두고 더 읽고 싶은 작품이다.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귀는 벗'은 많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게다가 배울 게 많고 재미있는 친구라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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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가 우리 집에 찾아온 것은 코로나가 막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올 초 무렵이었다. 움베르트 에코의 동화책이라고? 처음에는 약간 눈살이 찌푸려졌다. 바로 직전에 믿고 있던 친구에게서 심하게 뒤통수를 맞은 후유증 때문이리라. 역시 최애 작가인 하루키의 '동화적 상상력'이 빛나던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에 다소 실망을 했기에 아무 잘못도 없는 이 책을 보는 시선이 다소 삐뚤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는 일개 독자로서, 개인적인 취향에서 '별로'라는 의미일 뿐이다. 여전히 하루키의 작품은 거실 책장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다른 책들을 호령하고 있으니.


제목처럼 <움베르트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되어 있으나 유일무이한 우리 별 지구가 당면한 문제라는 점에서 결국 하나의 이야기인 셈이다.


첫 번째 이야기 <폭탄과 장군>은 전쟁과 무기(핵폭탄)에 대한 이야기다. 아토모라는 원자가 주인공이다. 부자들이 돈을 대 무기를 잔뜩 만들어 놓자 장군에게 전쟁을 일으키도록 압력을 넣는다. 세상이 파괴될 것을 걱정하는 아토미와 그의 친구들은 핵폭탄에서 도망치고, 그 덕분에 핵전쟁은 무산된다. 도시마다 떨어진 핵폭탄은 터치지 않고 꽃병이 된다. 결국 사람들은 전쟁 없는 세상이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쟁이 사라지자 장군은 호텔 문지기가 되는데, 무기를 만드는데 돈을 댄 부자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두 번째 이야기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은 다름에 관한 이야기다. 화성에 간 미국인, 러시아인, 중국인은 처음에는 서로 경계하고 미워한다.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밤에 지구를 보며 '엄마'를 그리워하는데 '엄마'는 만국 공통어라 모두 같은 처지임을 깨닫고 하나의 지구인이 된다. 그때 갑자기 팔이 여섯 개나 달린 괴물처럼 생긴 화성인이 등장한다. 당연히 말도 통하지 않는다. 지구인들은 화성인에게 무기를 겨누고 죽이려 한다. 하지만 불쌍한 새 한 마리를 보며 눈물짓는 화성인을 보고 자기들과 같은 감정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고 친구가 된다. 하나의 우주인이 되는 것이다.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괴롭히고 심지어 죽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져 준다.


마지막 이야기 <뉴 행성의 난쟁이들>은 기계문명에 의해 파괴되는 지구에 대한 이야기다. 황제의 명을 받고 새로운 별을 찾아 나선 탐험가가 뉴 행성의 난쟁이들에게 발달된 지구의 문명을 전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지구의 문명이 궁금한 난쟁이는 커다란 천체망원경으로 지구를 관찰하는데 발달된 기계문명으로 지구는 점점 오염되고 황폐화되고 있음을 목격한다. 난쟁이들의 대장은 그런 문명이라면 거절하고 오히려 역제안을 한다. 지구를 그들의 별처럼 깨끗하고 살기 좋은 행성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지구로 돌아온 탐험가는 황제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데, 신하들은 온갖 핑계를 대고 난쟁이들의 지구 이주를 막는다. 왜 그럴까?


<움베르트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신영복 선생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가 떠올랐다.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서로 다른 두 권의 책에서 같은 지향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 분은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동화책의 형식으로, 다른 한 분은 어려운 동양고전을 풀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려는 노력으로 '현재 우리(지구, 자본 등)가 당면한 문제'를 향해 걱정 어린 눈빛으로, 하지만 따뜻한 시선을 담아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특히 <뉴 행성의 난쟁이들>을 읽을 때는 <강의> '장자의 소요' 한 대목이 떠올랐다. 뉴 행성의 난쟁이들의 심정이 한수에서 물을 길던 노인과 똑같으리라 그저 나 홀로 짐작해 보았다.


자공이 초나라를 유람하다 진나라로 가는 길에 한수 남쪽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한 노인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밭에 내고 있었는데 힘은 많아 드나 효과가 별로 없었습니다.

딱하게 여긴 자공이 용두레라는 기계를 소개하자 그 노인이 분연히 낯빛을 붉히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스승에게 들은 것이지만 기계라는 것은 반드시 기계로서의 기능(機事)이 있게 마련이네.

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機心),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네. 본성을 보전하지 못하게 되면 생명이 자리를 잃고,

생명이 자리를 잃으면 도(道)가 깃들지 못하는 법이네. 내가 기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네.”


<강의>에서 이 대목을 읽을 때 섬뜩할 정도로 오늘날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느꼈다. 기원전 인물이 어떻게 이런 혜안을 가질 수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꿈보다 해몽인가?) 학문의 경지가 어떤 수준을 초월하면 정말 도인이 되기라도 하는 걸까? 장자는 움베르토 에코의 꿈에 나타나기라도 했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독서를 하면 이렇게 생각이 가는 대로, 상상이 나래를 펼치는 대로 두어도 좋으니 이 또한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책을 덮으면서 '역시 움베르토 에코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한 문제를 아이들과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볼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 물씬 느껴졌다. 책은 100 페이지가 넘지만 글자는 크고 그림도 많아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유아들과도 함께 읽기에 그만이다. 중학생인 준에게도 읽고 독후활동을 해 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두꺼운 책이 부담되는 성인이 읽어도 좋겠다. 좋은 책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브런치에 소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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