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아니고 OO이야!

세 번 읽는 그림책 : 울트라 비밀 권법 (박보미 글, 그림)

by 조이홍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늘 크고 작은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산다.

業.

요즘 같아서는 하루, 아니 한 시간도 그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아이가 있는 부모'라는 어떤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본 순간 격한 감탄사가 나왔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아가 형성되고 자의식이 강해지면 부모와도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격량의 갈등 상황 속에서 '자식이 아니고 상전이야'라는 말 한 번쯤 안 해본 부모가 있을까? (이 말 못지않게 '자식이 아니고 웬수야'라는 말도...) 물론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 1% 천사표 부모님이 계시다. 하지만 99% 보통의 부모는 모두 같은 마음 아닐까?


코로나로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우리 집에서도 '자식=상전(또는 웬수)' 공식이 증명되는 순간이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발생한다. 스파크가 튀는 긴박한 순간, 그중 대표적인 몇 가지만 추려보자.


1) 샤워 후 촉촉하게 로션(크림)을 바르지 않아 얼굴이며 온몸이 푸석푸석할 때 (꽃가루 날리는 줄!)

2) 샤워 후 머리를 헤어 드라이기로 말리지 않아 머리에서 열흘 신은 양말 냄새가 날 때

3) 갈아입은 옷을 돌돌 말린 상태로 화장실 앞에 방치해 둘 때 (순대가 떨어져 있는 줄 알았다고!)

4) 양치질하라고 하면 칫솔을 물고만 있을 때 (당연히 머리와 같은 냄새가 남)

5) 형(동생)이 실시간 온라인 수업할 때 옆에서 방해(깜짝 출연)할 때

6) e-학습터 듣는 척하면서 몰래 유튜브 볼 때 (다행히 역사 관련 동영상이었지만...)

7) 한 달에 한 번꼴로 스마트폰 액정 박살 낼 때 (일부러 그러는 거냐?)

8) 숙제 끝내고 '게임권' 받아 실컷 게임했는데 확인해 보니 반도 안 풀려 있을 때

9) 저녁 준비하는데 배고프다고 이것저것 집어 먹고 정작 식사 시간에는 깨작거릴 때

10) 줄넘기하라고 내보냈는데 하라는 줄넘기는 안 하고 줄넘기로 서로 목조르기 하며 장난치고 놀 때

11) 위와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할 때


위에 나열한 열 가지는 극히 일부일뿐이다. 아이들 간에 발생하는 다양한 다툼, 분쟁, 논쟁, 갈등, 마찰은 아예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미혼이나 결혼해도 아직 아이가 없는 분들은 '저게 뭐가 문제가 되지?' 할만한 것들이다. 사실 적어 놓고 보니 '고작 이런 걸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애정 어린 조언이 매일 반복되면 잔소리가 되고, 잔소리가 잦아지면 언성이 높아진다. 전혀 불붙을 것 같지 않은 '작은 불씨'가 예상치도 못한 '거대한 화마(火魔)'로 변해버린다. 그 불길은 웃음도 다정함도 모두 삼켜버린다. 누구도 승리한 자 없는 전쟁터에서는 오늘도 총성 없는 전쟁이 계속된다.


아내와 나는 점점 나이 들어가고, 아이들은 점점 자란다. 일방적으로 우위를 점하던 파워게임에서도 서서히 양측 간 균형이 맞춰진다. 언젠가는 상황이 역전될 날도 올 것이다. 예전에는 아이들 먼저 잠들면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떡튀순 3종 세트와 맥주 한 캔, 그리고 한동안 보지 못했던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것으로 육아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 버렸다. 한계에 다다른 정신적, 육체적 시련들이 비로소 정리되고 마음에는 비로소 작은 평화의 비둘기가 날아올랐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이런 게 행복 아니겠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나이 탓인지 아니면 '코로나 블루' 영향인지, 그도 아니면 떡튀순 3종 세트 약발이 다된 탓인지 요즘은 스트레스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의 평화는 어림도 없다. 그렇게 앙금으로 남은 감정의 찌꺼기는 또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향한다.


'품 안에 자식'이란 말처럼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유효 기간이 있다. 지금은 그 시기가 빨리 왔으면 하고 바라지만 정작 아이들이 우리 품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시기가 되면, 이 모든 순간이 그리워지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러니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마지막 구절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식으로 소중한 시간을 흐르는 강물 위로 마냥 흘러 보낼 수는 없지 않을까?


육아와 가정교육에 노자를 들먹일 필요는 없지만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읽으면서 마음에 닿는 구절이 있어 따로 메모해 둔 구절이 있었다. 노자 제66장이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基善下之.

(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이기선하지)

"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님께서는 바다는 기꺼이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기에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이는' 거대한 존재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 이름도 '바다'라는 것이다. 근본(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자 사상의 한 구절을 읽으면서 '부모'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실개천도 개울물도 범람하는 강도 모두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부모도 자식의 모든 것을 담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부모, 참 어렵다. 그래서 業이다. 지치고 힘들어도 기분 Up, 활력 Up 하라는 의미인가 보다.


마음을 바다처럼 넓게 가진다 해도 바다가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수 있는 나만의 비법을 하나쯤은 터득해 두어야 한다. 그런 탈출구가 내 경우에는 독서(만화책 포함)와 탁구이고 아내는 수영과 달리기다. 하지만 코로나 2.5단계 격상 뒤로는 실내 운동과 수영 모두 불가하니 몸에 계속 사리(舍利)가 쌓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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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소재로 한 다소 무거운 그림책 이야기를 쓰려다 우연히 발견한 박보미 작가님의 <울트라 비밀 권법>을 읽고 오랜만에 입을 실룩거리며 웃었다. 지친 마음을 조금은 위로받는 느낌이었다고 하면 너무 과장한 걸까? 그래도 어쩌나, 아들에게 강펀치를 날리는 엄마의 모습에 속이 다 후련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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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비밀 권법>은 Q가 아주 재미있어하는 그림책이다. 이야기도 아주 단출하다. TV 시청을 방해하는 억지로 괴물(엄마)에 대항해 비밀 권법을 연마한 아들 훈이 '썬파워 울트라 캡숑맨'으로 변신해 그 괴물을 공격하는데 알고 보니 괴물(엄마)의 정체도 '요술공주 핑키뽕'이었다는 사실! 썬파워와 문파워로 격돌하는 두 사람은 모두 내상을 입고 결국에는 평화협정을 맺는다는 유쾌한 가족 이야기다. 훈이와 엄마가 모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등장해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일단 한 번 보면 누구라도 웃지 않고는 못 버티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이 말을 다시 한번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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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므로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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