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수 싸움 (반전의 반전)

세 번 읽는 그림책 : 뒷집 준범이 (이혜란 지음)

by 조이홍

아이들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고를 때 부모로서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기준 중 하나가 '교훈'이다. 재미있으면서도 아이의 품(인)성 형성이나 사회화에 도움이 될만한 그림책을 아이들 곁에 가까이 두려고 노력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고, 일전에 소개했던 그림책 <그 아이가 바로 나야!>의 한 꼭지처럼 자칫 의도된 교훈 남발은 아이에게 그림책에 대한 흥미 자체를 잃어버리게 할 수 있는 만큼 성장 단계별로 '숨겨진 목적'에 부합하는 그림책을 찾는 일은 우리 부부(특히 아내)에게 중요한 과제였다.


이에 반해 이혜란 작가님의 그림책 <뒷집 준범이>는 조금 특별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읽어주려고 골랐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우리 아파트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두 곳 있다. 하나는 3세 미만을 위한 심심한 놀이터, 다른 하나는 8세 미만을 위한 덜 심심한 놀이터였다. 덜 심심한 놀이터의 인기 놀이기구는 단연 '그네'였다. 요즘도 가끔 즐기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준과 Q는 신나게 그네를 탈 수 있는 덜 심심한 놀이터를 무척 좋아했다. 아빠가 너무 지루해 집에 가자고 조르지만 않는다면, 기다리는 다른 아이가 없다면 온종일이라도 탈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하루는 놀이터에 갔는데 처음 보는 아이들이 그네를 점령해 놀고 있었다. 한 무리로 보이는 아이들은 서로 번갈아 가며 그네를 탔다. 타고 또 탔다. 좀처럼 우리 순서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중에 다시 오자고 아이들을 설득해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쟤들 우리 아파트 사는 애들 아닌데, 왜 여기서 노는 거야?" 아이들이 잔뜩 볼멘소리를 해댔다. "근처에 놀이터가 없으니까 그렇지. 좀 같이 놀면 안 돼?" 에둘러 말해도 아이들 대답은 단호했다. "응!"


지금은 아파트 주요 통로마다 출입문이 생겨 입주민이 아니면 지나갈 수조차 없지만, 그때는 아직 '시골스러운 정겨움'이 남아 있던 터라 동네 아이들이 자주 놀이터를 이용했다. 우리 아파트가 하나의 커뮤니티가 아니라, 우리 동네를 하나의 커뮤니티로 생각하면 문제 될 게 조금도 없었다. 우리 부부는 대한민국에서 부동산 가격이 비싸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동네의 한 아파트에서 다른 (임대)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단지 안으로 지나다니지 못하게 학교로 통하는 문을 봉쇄했다는 뉴스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준과 Q 아이들 이름에 새겨준 의미답게 다른 사람을 돕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랐다. 그 소망에 빨간불이 들어온 터였다. 삐뽀삐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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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뒷집 준범이>를 비롯한 여러 권의 그림책이 '특별한 목적'을 띄고 아이들 책장에 새 식구로 들어왔다. 새 책은 새 장난감처럼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누구에게나 첫인상이 중요하듯이 아이들과 새 책의 첫 만남도 매우 중요한데, 보통 그 순간에 반복해서 볼 책, 한 번 보고 그만둘 책을 결정했다. 안타깝게도 <뒷집 준범이>는 전자 쪽에 속하지 못했다. 무성영화 시절 변사를 방불케 하는 아빠의 영혼을 담은 연기와 백만 스물일곱 가지로 변화하는 베테랑 성우 같은 낭독 솜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무덤덤하게 '다른 책 읽어 주세요!'를 주문했던 것이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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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집 준범이>를 읽고 가슴 뭉클했던 우리 부부의 바람과는 다소 엇갈린 반응이었다. 이혜란 작가님의 다른 작품 <우리 가족입니다>와 마찬가지로 이웃(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잔잔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작가님의 작풍을 아이들도 좋아하리라 생각했는데 우리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선을 많이 사용하고 채색을 아끼는 그림채가 아이들에게는 심심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요맘때 아이들에게는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그림도 중요한 요소니까.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며 방에서만 홀로 노는 준범이에게 먼저 다가선 이웃 아이들의 마음이 준과 Q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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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림책 한 권으로 아이의 인생이, 인성이 바뀌리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거대한 바위를 뚫는 물방울처럼 지치지 않고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으리라. 이런 경험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어른이 된 준과 Q가 우리의 바람에 한 걸음 더 다가와 있지 않을까? 우리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그 선을 넘으면 욕망이나 집착이 될 테니까!




'세 번 읽는 그림책' 연재를 위해 책장에서 여러 기준을 거친 그림책 50여 권을 따로 빼놓았다. 다음에 다룰까 해서 윗부분에 올려둔 <뒷집 준범이>를 찾아 Q가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았다. 흐뭇했다. 그래 한 방울씩 천천히......


그림책을 다 읽고 다른 책을 보려던 Q에게 "어때, 오랜만에 보니까 그 책도 재밌지?"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아니, 그런데 책을 꼭 재미로만 보나?"

이런 반전의 반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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