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제주 도착한 다음 날 겪은 뱃멀미 포비아로 아내와 나는 한 동안 낚시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신계에 속한 존재지만 인간 앞에서 세 번이나 토했던 아내는 아예 낚시라는 단어를 지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자기 전 재산을 투자한 큐는 언제 다시 낚시를 할 것인지 정말 매일 물어보았다. 밥 먹을 때도, 잠자기 전에도, 해수욕을 할 때도 집요하게 물어보았다. 제주에 오기 전에 큐와 매일 낚시를 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거짓말쟁이 아빠가 되어 있었다. 그래 뱃멀미 때문이라면 배만 타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다시 낚싯대를 잡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낚싯대와 미끼는 내가 직접 준비해야 했다. 좀 난감한 일이었다. 어떤 낚싯대를 준비해야 할지 전혀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 정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다행히 자주 가는 서귀포 용이식당 근처에 낚시용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었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다시 낚시를 해야 한다고 마음먹으니 눈에 들어왔다. 나와 준, 큐 형제는 최대한 처량한 표정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남자답게 생긴 사장님이 낚싯대를 손보고 있었다. 나는 쭈뼛쭈뼛하며 말문을 열었다.
“저... 제가... 낚시를 전혀 모르는데요, 혹시 초보자를 위한 낚싯대 추천과 조언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말 낚시를 전혀 몰라서요.”
질문이 끝나자마자 상남자 사장님은 낚시의 기본에 대해 20분 정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초보자용 낚싯대도 추천해 주셨다. 나도 그렇지만 준, 큐 형제는 정말 열심히 들었다. 낚시왕 타이틀을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사장님 덕분에 바닥에 떨어졌던 자신감이 조금은 회복되었다.
우리는 위미항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상남자 사장님도 위미항이 초보자가 낚시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했다. 물 반 고기 반이라 넣으면 나올 거라고 했다. 낚시 맛만 보기 위해 가까운 곳에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늦은 오후였지만 위미항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우리도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일단 상남자 사장님께 배운 대로 네 대의 낚싯대에 채비를 했다. 아직 손에 익숙하지 않아서 다 하는데 30분이나 걸렸다. 마침내 2차 낚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낚싯대를 받은 준, 큐 형제는 자리를 잡고 낚시를 시작했다. 아직 새우 미끼를 바늘에 끼우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매번 내가 대신해 주어야 했다. 새우 미끼는 바다에 들어가면 1분이면 사라졌다. 그러니 정작 나는 낚시를 할 짬이 없었다. 나는 직접 미끼를 끼지 않고 잡은 물고기는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준, 큐 형제는 스스로 척척 미끼를 끼웠다. (할 줄 알면서 안 했던 건가?) 나는 징그러워서 손도 못 대는 갯지렁이도 서슴없이 끼웠다. 큐라면 모르겠지만 평소 준이라면 절대 만지지 못하는 갯지렁이 었다. 절박함이 사람의 태도를 어떻게 바꾸어주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큐가 먼저 갯지렁이로 전갱이 한 마리를 잡았다. 그러자 준도 갯지렁이를 사용했다. 준도 첫 손맛을 보았다. 나와 아내는 여전히 새우만 고집했다. 물고기 사이에서 갯지렁이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지 준, 큐 형제는 금방 3마리씩 잡았다. 대부분 전갱이였다.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도 있었다.
하지만 낚시가 순조롭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OO어부로 낚시를 배운 우리는 캐스팅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낚싯대와 함께 팔을 뒤로 젖혔다가 앞을 향해 쭉 펴면 낚싯줄이 풀리면서 봉돌이 날아가는 느낌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하지만 캐스팅만 하면 낚싯바늘이 바닥에 걸렸다.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줄을 끊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우리가 요령이 없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바늘과 봉돌을 여유 있게 준비해 두긴 했지만 바닥과 실랑이를 하면 진이 다 빠졌다.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근처에서 낚시를 하던 아저씨가 빼 주기도 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2차 낚시 전쟁이 종료되었다. 5마리를 잡은 준이 낚시왕 타이틀을 뺏어갔다. 분한 큐는 그래도 자기가 잡은 물고기가 가장 크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했다. 나는 형제가 없어서 모르겠는데 정말 준, 큐 형제는 사소한 것들까지 꼭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그게 항상 다투는 원인이 된다. 잡은 물고기는 다시 놓아주고 퀵 보드를 챙겨 등대가 있는 방파제로 산책을 가기로 했다. 이럴 때면 또 죽이 잘 맞는다. 자기들끼리 킥킥대며 신나게 논다.
3차 낚시 전쟁에서는 큐가 다시 타이틀을 뺏어 왔다. 4차에서는 무승부였다. 낚시를 하면 할수록 느끼는 바가 있었다. 누가 낚시를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했나? 낚시는 바닥과의 싸움이었다. 낚시를 할수록 요령이 늘어나 빈도는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낚싯줄을 많이 끊어 먹었다. 나와 아내의 낚시 열정은 이런 이유로 이내 시들해졌지만 손맛을 본 준, 큐 형제는 진정한 낚시인이 되어 갔다. 물론 잡은 물고기를 식재료로 활용해 요리로 먹지는 못했다. 너무 작거나 맛이 없어 먹지 않는 물고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제주 한달살이가 끝날 때 이미 많이 망가진 낚싯대를 버리고 왔는데 준, 큐 형제는 버리지 말라며 울기까지 했다. 가져와도 다시 사용할 수 없을 정도여서 버려야 했던 것이데 너무 아까워했다. 하지만 우리 집 낚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빠도 낚시왕 한 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