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홍 Dec 24. 2020

코로나로 빼앗긴 아이들의 2020년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았다.

 코로나, 힘들지만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방역 지침을 준수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금과옥조처럼 여겼다.   

 일상을 강탈당하고도 그 안에서 나름의 질서를 만들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모든 게 괜찮은 줄 알았는데 지금 괜찮지가 않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 가족, 아니 나에게는 루틴이 있다. 

 다음 해 달력 (탁상용과 벽걸이용), 준과 Q의 성장 앨범을 만드는 일이다. 

 준이 태어나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왔다. 

 다른 사람에게는 큰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어떤 일보다 값지고 중요한 일이다.  

 그 해 촬영한 사진을 고르고 골라 달력을 만들고 아이들 성장 앨범을 만들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만큼 아빠로서 낭만적인 일은 없다. 디지털 & 스마트 폰 시대라 몇 천 장이 넘는 사진들 중에서 그 순간, 그 시간, 그 여행, 그 나이 때 준과 Q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진을 고르는 일은 매우 어려운 만큼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발행(출력) 전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최종 승인권자 아내에게 'APPROVAL'을 받는 절차가 있지만, 이 작업은 한 해의 끝자락에서 오롯이 나에게만 허락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올 초 계획했던 준의 제주도 졸업여행을 시작으로 자전거 여행, 여름휴가, 가을 단풍 산행, 어머니 생신 이벤트 (깜짝 글 낭독회) 등이 코로나로 줄줄이 취소됐다. 그나마 코로나가 좀 잠잠해졌을 때 속초(고성) 바다를 당일치기로 두 번 다녀온 게 올해 여행의 전부였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여행 테마별로, 월별로, 이벤트별로 폴더를 만들어 저장해 놓던 컴퓨터가 빈 곳간처럼 썰렁했다. 'O월의 일상'으로 이름 붙인 일상의 사진들도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텃밭을 가꾸는 사진이 전부였다. 100여 장이 필요한 아이들 성장 앨범은 말할 것도 없고 12장이 들어가는 벽걸이 달력조차 만들 수 없을 만큼 사진은 제한적이고 장 수도 몇 장 되지 않았다. 믿었던 아내의 스마트 폰 속 앨범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아, 온라인 수업 장면과 마스크 쓰고 줄넘기하는 사진으로 성장 앨범을 채워야 하나!' 


 성장 앨범은 아이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만들어 결혼 선물로 줄 작정이다. 물론 한 해가 빠진다고 무슨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아이들의 '찰나'를 모두 담아주고 싶었지만, 모든 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기에 애초에 그런 욕심은 내려놓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한 해의 기록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정확히는 기록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기록할 사건(이벤트)을 아예 만들지도 못해 성장 앨범을 만들 수 없다는 '현타'가 오니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로 빼앗긴 일상'이라는 말을 태연하게 내뱉으며 나름의 방법을 찾아 집에만 머물며 '슬기로운 코로나 극복 생활'을 해왔는데 정작 아이들 성장 앨범에 올릴 사진 한 장이 변변치 않으니 한 해를 몽땅 도둑맞은 기분이 들었다.  


 성장 앨범의 애독자는 나와 아내였다. 예전에는 그랬다. 지금 열렬한 애독자는 아이들 자신이다. 틈만 나면 자신의 성장 앨범을 들춰보며 이건 뭐하는 사진이야, 이거는 어디냐, 이때는 왜 울었냐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진 속 제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우리 것이었는데 더는 우리 것이 아닌 게 되었다. 마치 아이들처럼 말이다. 성장 앨범은 평범한 일상의 기록이지만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생생한 역사이기도 하다. 혹한 속에서도 시청광장을 찾아 촛불을 든 건 개인의 역사가 사회, 국가의 역사와 결코 동떨어지지 않음을 아이들에게 깨닫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에게 썩 좋은 아빠는 아니지만, 성장 앨범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만들어준 건 참 잘한 일이라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칭찬해마지 않았다. 하지만 그놈의 코로나로 아이들 역사에서 2020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에게 졌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절로 나왔다. 


 모든 질문에 해답을 가지고 있는 우그웨이 대사부 같은 존재인 아내는 준과 Q 성장 앨범을 '2020 코로나 극복 특별판'으로 기획해 한 권으로 얇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코로나란 놈은 괘씸하지만, 그것 자체로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니 그 안에서 아이들을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기록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성장 앨범의 두께(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사진들)는 아빠로서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그 집착을 버리라는 의미였다. 이제 2020년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게 잘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정말 코로나 때문에 괜찮지 않다. 


 12장의 사진이 필요한 벽걸이 달력과 탁상용 달력은 아내가 올 한 해 그린 그림과 가족사진을 함께 사용해 만들기로 했다. 그건 괜찮은 타협안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21년은 안녕할까? 코로나로부터 우리 아이들의 2021년을 지켜줄 수 있을까? 바람과 희망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일찍이 깨달았으나 이번만큼은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 아이들의 2021년을 지켜줄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검사를 받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