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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Dec 26. 2020

산타할아버지 크리스마스 선물 반품 사건

산타할아버지를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두뇌 플레이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산타할아버지에게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반품해 달라니!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에 우리 집에서 발생한 실제 상황이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전에 약간의 상황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크리스마스 아침 풍경은 대체로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① 잠에서 깬 아이들이 크리스마스트리 앞으로 달려간다. 

 ② 산타할아버지가 놓고 간 편지와 선물꾸러미를 발견한다. 

 ③ 집이 떠나가도록 환호성을 지른다. 

 ④ 선물을 풀어보고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이때 형제/자매가 있으면 받은 선물을 자랑한다. 

 ⑤ 엄마와 아빠는 이 장면을 보고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비밀스러운 눈짓을 주고받는다.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인지한 순간부터 10여 년간 우리 집 크리스마스 풍경도 이런 루틴을 벗어나지 않았다. 데자뷔처럼 매 해 똑같았다. 하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산타할아버지가 오시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준과 Q의 잦은 마찰 때문이었다. 착하지 않은 행동이었으니 선물을 받지 못해도 할 말이 없는 이유였다. 속사정도 조금 있었다. 아이들이 '진짜 산타가 누구인지'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산타할아버지는 아무래도 아빠나 엄마 중의 한 사람인 것 같다는 준과 Q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들게 된 이후로 '이걸 계속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아는 비밀이 된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우리 가족사에서 자연스럽게 지워버리기로 했다. 


 어김없이 12월이 되었다. 뜬금없이 Q가 '그'에게서 어떤 선물을 받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Q에게 산타할아버지는 어느새 '그'가 되어 있었다. Q의 말을 듣고 선수끼리 왜 이러나 싶었다. 어차피 산타할아버지는 올해도 우리 집에는 오지 않을 텐데 왜 저렇게 받고 싶은 선물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건지 의아했다. 게다가 받고 싶다는 선물도 '총'이나 '게임 아이템'이라 우리 부부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것들이었다. 충분한 포석도 깔아 두었다. 


 "올 해도 산타할아버지는 안 오시지 않을까? 그렇게 둘이 싸워대는데…?"


 Q가 둔 초강수로 치열한 두뇌 싸움이 시작되었다. 산타할아버지지의 존재가 공공연한 비밀이 된 마당에 터무니없는 공개 선물 요청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Q는 한 술 더 떠 '그'에게 편지를 쓰겠다든가 (12월에?), 쿠키와 우유를 어디에 두겠다든가 하는 계획을 계속 언론을 통해 흘렸다. '오호, 언론 플레이를 하시겠다고?'


 나는 '전략적 외면' 방침을 정해 무시하자는 견해를, 아내는 지난해에도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못 받았으니 올 해는 다시 산타할아버지를 모셔오자는 '전략적 회유' 방침을 제시했다. '답정아!(답을 정하는 것은 어차피 아내다!)' 천사 같은 아내의 방침에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줄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준비했다. Q가 원한 아이템은 언감생심 집안에 들일 수 없어 부득이하게 다른 선물로 준비하기로 했다. 평소에 아이들이 좋아하고 갖고 싶다고 했던 품목들 중에 야구모자, 만화책, 레고 캐릭터 속옷이 낙점되었다. 


 "이 선물을 받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그래, 한번 더 속아준다."


 휴일에는 늦잠 자던 아이들도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일찍 잠에서 깬다. 저절로 눈이 뜨이나 싶었다. 아이들이 선물 앞으로 후다닥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와 나는 일부러 자는 척했다. 그런데 들려야 할 환호성이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고요했다. '층간 소음' 때문에 일부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도 치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속 깊은 아이들은 아닌데….


 중학생이 된 준은 산타할아버지께 받은 선물에 너무 만족한다며 선물을 챙겨 자기 책상에 옮겨 놓았는데, Q 선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웬일인가 싶어 선물 상자를 확인해 봤더니 그 위에 Q가 산타할아버지께 써놓은 편지가 있었다. 그 편지를 읽고 그만 나와 아내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기한테 준 선물이 자기 것이 아닌 것 같으니 반품해 달라는 편지였다. 어쩐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싶었다. 

 "반품하려면 내년이나 가능하겠네. 산타할아버지는 내년 크리스마스에나 오실 테니."


 기분이 지하 1,000미터 아래로 흐르는 천연 암반수에서 수영이라도 하는 듯한 Q를 달래고 또 달랬다. 형이랑 매일 싸우는 통에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안 오실 걸 억지로 오신 거라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받지 못한 것이라 설득했다. 그제야 Q는 선물 박스를 다시 열어 선물 포장을 하나씩 풀었다. 얼굴은 여전히 울고 싶은 표정이었다. 내년에는 형이랑도 친하게 지내고 자기 할 일도 스스로 잘하라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덕담을 해주며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그럭저럭 올해 크리스마스도 잘 넘기는 듯했다. 그날 밤에 자러 들어간 준과 Q가 속삭이는 대화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야, 산타할아버지한테 계속 선물 받고 싶으면 뭘 받아도 기분 좋은 척 해."  


 내년 크리스마스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아~ 반전의 반전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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