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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Jan 05. 2021

새해 브런치 계획

공표라기보다 내적 고백에 가깝습니다 

  신년 계획이 늦어졌다. 딱히 바쁜 일도 없었는데….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오는 순간부터 주인을 닮아 나태한 휴대폰이 '웅웅' 두 번씩 짧게 반복적으로 울어댔다. 구독하고 있는 브런치 작가님들의 새 글이 발행되었음을 알리는 반가운(?) 울림이었다. 마치 새해 첫 날을 기다리시기라도 한 것처럼 새해의 계획과 소망을 담은 글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글쓰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던, 계획은 커녕 진지하게 고민도 해보지 못하고 있던 게으른 브런치앵(Brunchian)으로서 살짝 조바심이 났다. '나만 이렇게 계획이 없는 건가?', 아니면 '브런치를 향한 열정이 사그라들었나?'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던 제8회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에 낙방했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굳이 핑곗거리를 하나 만들자면, (또) 코로나 때문이다. '연말연시' 기분이 전혀 나지 않았다. 우리의 생체시계가 2020년 2월 20일에서 멈춰버린 후 1분도 흘러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물론 기분학상으로.


 이런 젼차로 이 글을 쓰는 순간부터 올해 브런치 글쓰기 계획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얼마나 실천에 옮길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 함정!


 미처가 (美妻歌)


 '미처가 (美妻歌)'는 우리 집 절대군주이자 철권통치자로서의 아내를 궁궐에서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차갑고 강직한 붓으로 옮기는 사관(史官)의 마음으로 연재하는 글이다. 모두 7편의 글을 발행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붓이 휨을 목격할 수 있다. 넘버 2가 가질 수밖에 없는 자기 검열의 증거다. 총 12편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나머지 5편은 전반부의 발랄함과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문장력으로 아내의 일상을 생생하게 그려나가 볼 예정이다. 연재를 끝내고도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내가 같은 사람이기를 바란다. 


 고전의 재味발견


 '고전의 재味발견'은 세계문학 고전을 읽고 쓴 독후감이다. 내게 고전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글쓰기가 힘들 때나 삶이 팍팍하다고 느껴질 때 고전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20대의 정서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읽는다. 순수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면 고전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가장 값싼 타임 슬립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노르웨이의 숲,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위대한 개츠비, 콜레라 시대의 사랑, 이방인, 오만과 편견, 페스트,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변신,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금오신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인간실격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설국, 수레바퀴 아래서, 불멸도 지난해에 읽었지만 아직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의 방향을 잡지 못했다. 특히 설국과 불멸은 흠뻑 빠져 있었는데 막상 책을 덮고 나니 한 글자도 쓰기 힘들었다. 올 해의 첫 고전으로 선택한 죄와 벌까지 앞으로 첩첩산중이지만, 지치지 않고 읽고 쓰고 공유해 보려고 한다. 고전은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 막 나온 에그 타르트 같다.(아내식 표현이다.) 고전의 재味발견은 올해도 계속될 예정이다. 


 세 번 읽는 그림책


 '세 번 읽는 그림책'은 지난해 말부터 연재를 시작해서 아직 갈 길이 멀다. 책상 옆에 쌓여 있는 책탑이 아직 그대로다. 신영복 선생님의 '서삼독(書三讀)'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한 글쓰기로 '그림책이란 아이들만 보는 책'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시간에 쫓겨 독서할 여유가 없는 성인들에게 대안으로써 그림책을 소개하고자 하는 야심 찬 바람이 그 출발점이다. 물론 아이들이 읽으면 좋은 그림책, 성인이 읽으면 좋은 그림책 그리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 좋은 그림책이라는 생각도 담고 있기에 '세 번 읽는 그림책'이라고 명명했다. 이미 그림책이 하나의 문학 장르로 소비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그림책의 위상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해 다양한 연령대가 즐길만한 그림책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소개해 보고자 한다.  


 가제) 주말의 소설


 '주말의 소설'은 올해 야심 차게 기획한 새로운 시도다. 나이가 좀 있으신 독자분들은 금방 '주말의 명화'를 떠올리셨으리라. 이 도전을 할 것인지 한참이나 고민했다. 사실 지금도 고민 중이다. '소설'이라는 장르 때문이다. 브런치와 소설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브런치 작가, 독자분들 중 상당수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얼마 전 다른 작가님의 글에서 '엉뚱하게 브런치에 왜 소설을?'이라는 문구를 봤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말이다. 지난해 단편소설을 한 편 썼다. 누군가 소설이라고 불러준다면 얼른 뛰어가 큰절이라도 올릴 만큼 부끄러운 글이다. 그 작품의 90년대 정서는 살리고 캐릭터를 입체화해 다시 써보고 싶었다. 그 과정을 브런치에 소개하고 싶었는데 하필 그때 그 작가님의 글을 보고 말았으니…. 실망감으로 기운이 살짝 빠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작가님이 브런치 글이 너무 다양하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글을 보았다. 다양성에는 소설도 포함되었다. 오호, 그래도 괜찮을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그래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문장력이 부끄러울 순 있지만, 소설이라는 장르여서 부끄러울 것은 없지 않겠는가? 뭐 그런 심정이다. 만약 시작한다면 매주 토요일 발행을 목표로 써볼 생각이다. 


  열심히 운동을 하면 근육이 붙는데, 열심히 글쓰기를 해도 문장력이 좋아지지 않는다. 이런 경우 문제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열심히' 하지 않거나, 지금 하는 게 제대로 된 '글쓰기'가 아니거나. 과연 어디에 해당하는 걸까? 


 숨을 못 쉴 정도로 웃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독자분들과도 나누어도 좋겠다. '콩쥐 팥쥐' 패러디물이다.

 

 원님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관아로 향했다. 단 한 명, 콩쥐만 제외하고는. 계모는 콩쥐에게 너른 밭을 다 갈아야만 원님 생일잔치에 올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는 달랑 나무 호미 하나만 던져주었을 뿐이다. 생일잔치에 너무나 가고 싶던 콩쥐는 나무 호미로라도 밭을 갈아볼까 했지만, 웬걸 한 자도 갈지 못하고 그만 호미가 부러지고 말았다. 서럽게 울던 콩쥐 앞에 집채 만한 황소가 한 마리 나타났다. 


 "마음씨 착한 콩쥐님, 밭 갈 일이랑 염려치 마시고 쉬고 계세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마음이 놓인 콩쥐는 그늘에서 잠깐 쉰다는 게 그만 깜빡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 밭이 얼마나 갈아졌을까 궁금했는데 아까와 달라진 게 없었다. 다급해진 콩쥐는 황소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황소가 하는 짓을 보고 그만 깜짝 놀랐다. 여태껏 황소는 나무 호미를 붙이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왜 이리 안 붙지?" 


 부디 지금의 행동이 황소의 어리석음이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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