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백 년 게임 인생을 정리해 보았다.
게임 인생 Phase 1.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 나이 대 남자들이 모두 그렇듯이 오락실 삼대장 제비우스, 엑스리온 그리고 갤러그가 맨 앞에 놓였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생한 사운드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지금과는 비할 바도 되지 않는 투박한 그래픽이었으나 그 화면 속으로 여지없이 빨려 들어갔다.
우리네 게임 인생 서막은 미약하지만 찬란했다.
50원짜리 동전 하나로 지구를, 은하를, 전 우주를 지배하지 않았던가!
80년대는 오락실의 전성기, 오락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그때는 누구나 한가닥 하는 게이머였다.
올림픽에서 기량을 뽐내기 위해 무려 30센티미터 자를 챙겨 오는 게이머의 근면함과 준비성이라니!
테니스 라켓 줄의 비밀을 아는 자 누구인가? 비밀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이들이여 오늘도 안녕하신지?
화폐 단위상 50원에서 100원으로, 100% 달하는 가격 인상에도 그 시절 게이머는 오락실과 의리를 지켰다.
한 명의 이탈자도 낙오자도 발생하지 않았더랬다.
다만, 사야 할 문제집과 준비물이 하나둘씩 늘어났을 뿐.
어머니는 웬일로 아들이 공부를 다 하느냐며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보글보글로 게이머로서 첫 전성기를 누렸다.
100판에서 최종 보스를 물리치면 게임이 끝나는 줄 아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초보자다.
파란색 공룡은 생명이 있는 한 무한대로 게임이 가능했다. 전무후무한 내 공식 기록은 400판이었다.
물론 이어서 하지 않고 동전 하나만으로.
스트리트 파이터를 시작으로 대전 게임의 시대가 열렸다.
도장깨기 하듯 지역 오락실을 누비며 내로라하는 파이터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게임 인생 최고의 황금기였다.
정상에 오르자 허무함이 찾아왔다. 그렇게 홀연히 오락실을 떠났으나 전설이 되었다.
게임 인생 Phase 1이 끝났다.
게임 인생 Phase 2는 우연히, 아니 어쩌면 필연적으로 찾아왔다.
남들은 하다 하다 지쳐 그만둘 때, 출시된 지 5년도 넘은 구닥다리 게임, 스타 크래프트에 입문했다.
신입사원 때였다. 선배들이 땡땡이치길래 따라간 곳이 PC방이었다.
오후 2시, 강남 근처 PC방에 그토록 많은 직장인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만 빼고 전부 스타 크래프트를 했다. 직장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스타 크래프트를 배워야 했다.
하지만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라고 딱 그 모양새였다.
홀로 사는 자취방에서 밤새워 스타 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헌터 맵. 1 vs. 8.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다. 첫사랑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결혼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그리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게임 시간을 대폭 줄였다.
끊지는 못하겠더라.
일주일에 딱 한 번.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모두가 잠든 밤에만 게임이 허용되었다.
가끔 밤새도록 게임하다 아침을 맞이하면 뒤통수가 서늘했다.
혀를 차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래도 게임을, 스타를 끊지는 못하겠더라.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 건강을 위해 2시간 이내로 게임 시간을 줄일 것을 명령했다.
아내의 명에 따랐다. 게임을 접으라고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러나 운명의 날이 결국 찾아왔다.
사랑의 결실, 아이가 생겼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내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스타 크래프트 CD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물론 컴퓨터에서도 삭제했다.
그날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물 한 방울이 뚝하고 떨어졌다.
게임 인생 Phase 2가 끝났다.
그리고 다시는 내 인생에서 게임은 없으리라 다짐했다.
직장생활 15년 차(40대 초반), 우연한 기회에 모바일 대전 게임 마블 올스타 배틀을 접하게 되었다.
사연이 길다.
아무튼, 의도치 않았던 게임 인생 Phase 3가 시작되었다.
당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던 내게 버스는 유일하게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40명 정원이 꽉 찬 버스에는 나를 포함해 책을 읽는 사람이 서너 명은 있었다. 그때까지는.
대부분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즐겼다.
지적 허영심에 빠져 있었던 시기였다고 해야 할까?
버스 안에서 게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한심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루는 아내와 세종문화회관에 전시회를 보려 가려고 버스를 탄 적이 있었다.
아내의 질문이 훅하고 들어왔다.
"오빠는 버스 안에서 게임 안 하지? 애들도 아니고 정말 별로야."
"응? 그럼…. 안 하지…."
아내를 속이고 나도 속였다. 새빨간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그래도 첫째 아이가 태어날 때 했던 맹세, 아이 앞에서 게임하는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던 그 맹세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만 게임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아내와도 약속했다. "아이들이 게임하는 걸 눈치채거나 들키면 깨끗하게 그만두겠다"라고.
하지만 게임 연합에 가입하면서 단체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수시로 게임에 접속해야만 했다.
그럴 때면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화장실로 뛰어갔다. 아~ 모빌리티의 편리함이라니!
(화장실을 본래 목적 이외의 용도로 사용했던 건 군대에서 건빵 먹을 때가 유일했다. 게임은 두 번째였다.)
연합 멤버가 대부분 직장인이라 모두 화장실을 애용했다.
그렇게 변기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결국 화장실에서 게임하다 아이들에게 들켰다. 벌써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지 오래였다고 한다. 약속대로 게임을 삭제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공들인 시간과 노력(다행히 현질은 하지 않았다. 거의…)을 생각하면 너무 아까웠다.
국내 랭킹도 150위였는데….
아내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아이들에게는 삭제했다고 거짓말하고) 겨우 게임 인생을 연장했다.
40대 후반을 달리는 지금, 게임 인생 Phase 3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아내 때문도 아니요, 아이들 때문도 아니고, 거짓말쟁이가 된다는 자괴감 때문도 아니었다.
게임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바뀌는 룰, 캐릭터 특징이나 버프와 디퍼프 등등 읽어야 할 텍스트가 많았다. 업그레이드라도 하는 날에는 끝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갑자기 찾아온 노안으로 스마트폰 화면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텍스트를 읽기 힘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멀찍이 뒤로 하고 보기 시작했다.
워낙 작은 글씨라 더 안보였다.
평생 좋은 시력으로 살았다. 좌, 우 모두 1.5였다.
그런 내게 노안이라니, 노안 때문에 게임을 접어야 하다니!
물론 게임을 그만하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노안 때문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한창 스타 크래프트를 할 때 꾸던 꿈(소망)이 있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고 결혼해서 손주를 낳게 되면 자란 아이들과 3 vs.3이나 4 vs 4로 스타 크래프트를 하면 어떨까? 엄청나게 재미있지 않을까?
그럼 손주들이 우리 할아버지 멋쟁이, 신세대 할아버지라고 생각해 주지 않을까?
근사한 꿈 아닌가?
하지만 스마트 폰 때문에, 편리함 때문에, 특이점 때문에
신세대 할아버지 꿈은 물 건너간 듯하다. 그때쯤이면 AI와 사물 인터넷, 그리고 AR/VR이 생활을 모두 바꾸어 놓을 테니 아마도 스타 크래프트는 '그땐 그랬지'라는 TV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게 될 테니까.
하긴 스마트폰 안에 있는 기능을 10% 밖에 쓰지 못하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따라가기도 버거우니….
꿈도 약간 수정해야겠다.
아직 엄청 기다려야 하지만, 손주들에게 고전을 읽어주는 클래식한 할아버지가 되어주어야겠다고.
성능 좋은 돋보기안경 하나 준비해 두면 될 터이니.
혹시 그때쯤이면 노화된 세포를 재생시켜주는 치료제가 개발되어 쌩쌩한 시력을 찾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그림은 요즘 아내가 작업 중인 작품 <거문오름에서>이다. (가제)
제주를 좋아하는 아내는 재주가 많다.
제주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