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읽는 그림책 : 7년 동안의 잠 (박완서 그림동화)
최근에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겼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강의>와 <담론>을 읽으며 배움이 늘어 행복했다.
물질 만능주의와 신자유주의 늪에 빠진 작금의 현실에 진심으로 걱정하며 쓴소리를 아까지 않는 시대의 지성이자 (진정한 의미에서) 어른의 가르침은 허투루 들을 말이 하나 없었다.
무엇보다 글쓰기를 하는,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나에게 선생님 문장은 한 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은 교재였다.
선생님 글을 읽으며 비로소 '글'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진심과 공감이 담겨 있기에 아름다운 것인지, 수사적으로 아름다운 문장인지 알 수 없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두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오래전 읽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문득 떠올랐다.
선생님 글의 원형을 찾고 싶었다.
그곳에서 자유를 빼앗긴 자의 진정한 자유를 보았다.
그리고 도처에서 글의 진정(眞情)과 만났다.
한 마리의 연약한 나비가 봄 하늘에 날아오르기까지 겪었을 그 긴 ‘역사’에 대한 깨달음이 겨우내 잠자던 나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습니다. 작은 알이었던 시절부터 한 점의 공간을 우주로 삼고 소중히 생명을 간직해왔던 고독과 적막의 밤을 견디고……, 징그러운 번데기의 옷을 입고도 한시도 자신의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각고의 시절을 이기고……, 이제 꽃잎처럼 나래를 열어 찬란히 솟아오른 나비는, 그것이 비록 연약한 한 마리의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적어도 내게는 우람한 승리의 화신으로 다가옵니다.
<담 넘어 날아든 나비 한 마리>라는 글의 일부였다. 감옥 창살 너머, 담 넘어 날아든 나비 한 마리를 본 선생님의 혜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생명 그 자체의 위대함에 닿았다. 나풀나풀 날아오르는 한 마리 나비를 보고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는 쉽다. 하지만 생명이 잉태되는 과정을 좇으며 미물에 공감하기란 평범한 나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렸다. 글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 글을 읽으며 그림책 한 권이 떠올랐다. 박완서 그림동화 <7년 동안의 잠>이었다.
작가님이 동화집과 장편동화까지 출간하신 줄 알았지만 그림동화까지 있었나 싶었다.
바지런한 아내 덕분에 나도, 아이들도 작가님 그림동화를 만났다.
가슴에 닿는 이야기였다.
마침 1월이 박완서 작가님 타계 10주기다. 작가님 추모도 할 겸 <7년 동안의 잠>을 다시 읽었다.
<7년 동안의 잠> 주인공은 작은 개미다.
대대로 가꾸고 이뤄온 개미 마을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흉년이 계속되었다.
배고픈 개미들은 온종일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만 허탕 치는 게 일이다.
하루는 어린 개미가 '크고 싱싱한' 먹이를 찾는다.
마을에 있는 모든 곳간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먹이를 찾은 어린 개미는 기뻐하며 소식을 전한다.
지혜로운 늙은 개미와 일개미들이 어린 개미를 따라 싱싱한 먹이를 찾아 힘차게 행진한다.
마침내 싱싱한 먹이가 있는 곳에 도착하고, 어린 개미가 거짓말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일개미들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싱싱한 먹이를 한 입 베어 먹을 기세다.
그때 늙은 개미가 소리친다. "매미구나."
싱싱한 먹이를 앞에 둔 배고픈 일개미들은 혼란에 휩싸인다.
자, 여러분이 일개미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왜 매미는 징그러운 번데기 옷을 입고 땅속에서 7년이라는 적막과 고독의 시간을 견뎌야 했을까?
개미 마을은 왜 흉년이 계속될까?
매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개미는 어떻게 살까?
<7년 동안의 잠>을 아이들과 읽으면 생명, 환경, 공존과 같은 어려운 주제에 대해서도 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 그림책이 좋은 점이다.
누구나 하찮게 생각하는 작은 개미의 마음도 넓디넓은 바다와 같은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우기)며 지구의 현재 지배자인 인류가 좀 더 관대해야 하지 않을까?
큐가 아장아장 걷던 아기 때, 남달리 곤충을 좋아하던 큐가 길에 앉아 개미를 쿡쿡 눌러 압살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너무 당황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곤충을 그토록 좋아하던 아이가 어떻게….
물어보니 이유가 너무 간단했다. "재미있어서."
하찮은 생명이란 없다는 것을 아기 큐에게 설명하기 여간 힘들지 않았다.
딱 그럴 때가 그림책이 필요한 순간이다.
이제 큐는 길을 걸을 때 개미가 지나가면 기다리거나 돌아갈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된다.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문장은 박완서 작가님의 글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출처를 밝히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
(아시는 분은 댓글로...^^;;;)
"삶은 누추하기도 하지만 오묘한 것이기도 하여 살다 보면 하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과 만나질 때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