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읽는 그램책:엄마는 해녀입니다 (글 고희영, 그림 에바 알머슨)
우리 가족은 제주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차마 떠날 수 없던 지난해를 제외하면 거의 매 해 제주에 갔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편리함을 좇아 유명 관광지 위주로 다녔지만, 어느 정도 자란 후에는 사람 많은 곳은 피하게 되었다. 제주 곳곳이 절경 아닌 곳이 없기에 어디에 가든 별 문제 될 게 없었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컵라면 하나 먹으며 온종일 뒹굴거리기만 해도 행복했다. 통상 4박 5일이나 길어봤자 5박 6일 여행은 그래서 언제나 2% 부족했다. 제주를 떠나는 날 아침이면 약속한 것처럼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 하루만 더 있으면 좋겠다!' 말은 안 해도 모두 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던 차에 제주 한달살이를 결심했다.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꿈이었다. 하지만 딱 요맘때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기도 했다. 왜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하나씩 실천했다. 그간 짧은 일정으로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온종일 올레 걷기, 생애 첫 바다낚시 도전하기, 거문 오름 트레킹, 한라산 등반과 4.3 평화공원 둘러보기 등 하루하루가 행복했고 의미 있는 날들이었다.
하지만 가장 해보고 싶었던 해녀 체험만은 유독 하지 못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이상하게 자꾸 일정이 어긋났다. 아이들도 해녀 체험이 몹시 궁금한 눈치였지만, 나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했더랬다. 물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지만, 오직 숨 하나에 의지해 거친 바다를 삶의 터전 삼는 할머니들과 어머니들, 제주 해녀의 삶이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반나절 체험으로 뭘 알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그저 허락된 만큼만 그녀들의 삶을 엿보고 싶었다.
"우리들은 바다를 바다밭이라고 부른단다.
그 밭에 전복 씨도 뿌리고 소라 씨도 뿌린단다.
아기 전복이나 아기 소라는 절대로 잡지 않는단다.
해산물을 먹어치우는 불가사리는 싹 다 치운단다.
바다밭을 저마다의 꽃밭처럼 아름답게 가꾼단다.
그 꽃밭에 자기 숨만큼 머물면서 바다가 주는 만큼만 가져오자는 것이 해녀들만의 약속이란다."
제주가 고향인 고희영 작가님의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를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가님은 사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다. 감독으로서 대표작이 바로 7년간 우도에서 해녀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녀들의 삶과 숨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물숨>이다. 2016년에 개봉했다는데 영화는 보지 못했다. 사실 존재도 몰랐다. 한달살이를 준비할 때 제주 관련 책을 찾아보던 아내가 우연히 이 그림책을 발견했다. 힐링이 한달살이의 주된 목적이었지만, 고립된 공간으로서 섬이라는 독특한 지역적·문화적 특성을 가진 제주를 아이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당시 아이들에게 해녀는 맛있는 전복죽을 먹을 수 있는 식당 이름, 또는 식당 사장님이었다. (우리 가족 최애 식당 중 하나가 섭지코지 앞에 있는 '해녀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좀 아니지 싶었다.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우도의 해녀들이 온종일 숨을 참은 대가는 가족의 밥이 되고, 남편의 술이 되고, 자식들의 공책과 연필이 되었다. 하지만 해녀들은 안다. 욕심에 사로잡히는 순간 바다는 무덤으로 변하고, 욕망을 다스리면 아낌없이 주는 어머니의 품이 된다는 것을…. 삶이라는 거친 파도를 넘으며 바다와 함께 울고 웃었던 해녀들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
다큐멘터리 <물숨>을 녹색창에 검색해 보니 이런 설명이 달려 있었다. 한 평생을 바다와 함께한 해녀들의 다양한 사연이 담겨있는 영화였다. 어린 딸을 잃고, 어머니를 잃고 심지어 자신이 목숨을 잃어도 바다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해녀들의 고달픈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림책은 도시로 나간 젊은 여인이 다시 제주 바다로 돌아와 해녀가 된 사연을 소개하고 있지만, 다큐멘터리에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꽤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사랑하는 그녀들은 오늘도 바다로 향한다.
사실 해녀 사회에도 계급이 있다. 상군(上軍), 중군(中軍), 하군(下軍)이다. 이름만 들으면 무슨 군대 조직 같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 물질을 했다거나 나이가 많다고 상군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능력, 즉 숨에 따라 정해진다. 물속에서 얼마나 숨을 오래 참느냐에 따라 계급이 정해진다. 가장 오래 숨을 참는 상군은 깊은 바다에서 일하며 전복 같은 고급 해산물을 거둬들인다. 위험한만큼 더 많은 돈을 번다. 해녀들의 숨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어 중군, 하군이 아무리 노력해도 상군이 되기 힘들다고 한다. 철저하게 능력에 기반한 공동체다. 계급을 막론하고 해녀들은 자신의 숨의 길이를 알고 있다. 마지막 숨에 이르기 전에 물 밖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욕심을 부리면 그 마지막 숨을 넘어서게 된다. 이 순간 먹게 되는 것이 바로 '물숨'이다.
"바다는 절대로 인간의 욕심을 허락하지 않는단다. 바닷속에서 욕심을 부렸다간 숨을 먹게 되어 있단다. 물속에서 숨을 먹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물숨은 우리를 죽음으로 데려간단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너라."
가진 숨(능력)만큼만 머무르고 (이익을) 가져가는 이치가 어디 해녀에게만 해당하겠는가? 하지만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다. 누구는 능력이 넘쳐서 더 가져가고, 누구는 능력이 없어서 남의 것을 빼앗아 간다. 해녀의 물숨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일까? 그림책 한 권만 읽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을 똑똑한 어른들이 모른다. 그런 어른들에게 <엄마는 해녀입니다>를 세 번 읽기를 조심스레 권해 본다. 시간이 허락하면 <물숨>도.
<엄마는 해녀입니다>의 그림을 그린 작가는 '행복을 그리는' 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이 맡았다. 이분 역시 우연히 집어 든 잡지에서 해녀 사진을 보고 피사체의 강렬함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주에 왔고 해녀를 그리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고희영 작가님이 쓴 글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두 분을 제주로 이끈 힘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물러나면 올여름에는 제주에 가서 만사 제쳐두고 해녀 체험부터 해 볼 참이다. 그날이 몹시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