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읽는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사내아이 둘을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돌도 지나지 않은 큰아이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열이 나 응급실로 뛰어갔을 때였을까?
처음 경험한 터라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힘들다고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런 경험 덕분에 이후에는 고열이 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노하우가 쌓였다.
둘째 아이 때는 웬만한 고열에는 놀라지도 않았다. 신속한 처방만 있을 뿐.
세 살 터울인 아이들이 엄청 싸운다.
요건 좀 힘들긴 하다. 눈만 마주치면 티격태격, 별 것 아닌 걸로도 치열하다.
레고 장난감이 트럭으로 하나 가득인데, 부품 하나로 집안을 들었다 놨다 한다.
'무자식이 상팔자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라고 마음을 다잡아 먹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그런데 놀 때는 또 그렇게 죽이 잘 맞는다. 세상 둘도 없는 절친이다.
게다가 아내한테 혼나기라도 하면 둘이 똘똘 뭉친다. 감동의 드라마가 따로 없다.
그 모습을 보면 역시 둘 낳기를 잘했다 싶다.
이건 뫼비우스의 띠 아닌가? 돌고 돌아 원점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힘든 순간은 아이가 '죽음'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였다.
그것도 아직 다섯 살의 어린아이가….
먼저 나서서 죽음이란 이런 거야 설명할 만큼 '빅나댐'은 아니었다.
아이를 재우는데 별안간 "아빠 죽는 게 뭐야?"라는 송곳 같은 질문이 날아와 심장에 꽂혔다.
가슴이 아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할 말을 잊었다. 아니 잃었다.
그냥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답을 기다렸는지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나는 그날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가 어떤 경로로 '죽음'을 알게 되었을까?
유치원에서 아이들끼리 이야기 나누다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면 즐겨 보는 만화에서?
고작 다섯 살이? 아니다. 내 경우에도 죽음과 마주한 게 다섯 살이었다.
어떤 외부 충격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갑자가 깨달았다. 삶이란 시작과 함께 끝도 있다는 것을.
겁쟁이였던 나는 감히 그 말을 입 밖으로도 내지 못했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혼자서 고민했다.
그렇게 죽음은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아이가 나와 똑같은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내와 상의 끝에 내린 결론은 '죽음과 마주하기'였다.
죽음에도 백신이 필요했다.
물론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조금씩, 천천히 스며들어야만 했다.
그러기에는 그림책만 한 게 없었다.
그렇게 몇 권의 죽음과 관련된 그림책이 책장을 채우기 시작했고,
그중 한 권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이었다.
평소였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제목. 아이들 그림책에 '장례식'이라니….
이 작품에는 나, 에스테르, 푸테(에스테르 동생) 이렇게 세 명의 아이가 등장한다.
'나'는 막연하게 죽음을 무서워했지만, 에스테르는 착하고 당찬 아이였다.
무료한 어느 날 우연히 죽은 벌 한 마리를 발견하고 가여운 마음에 묻어주기로 한다.
에스테르는 땅을 파고 나는 불쌍한 벌을 위해 시를 쓴다.
손 안의 어린 생명이
갑자기 사라졌네,
땅속 깊은 곳으로.
이 일을 계기로 아이들은 죽은 동물들의 장례식을 치러준다.
마침 이들과 함께 한 에스테르의 어린 동생 푸테가 죽음에 대해 묻는다.
어린아이는 죽음이라는 단어 조차 몰랐다.
이들의 대화가 재미있으면서도 슬프다.
"나도 죽어?"
"지금 말고.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면, 그때 죽을 거야."
"그럼 엄마 아빠가 슬퍼할 텐데…."
본격적으로 '장례 회사'를 만들고 죽은 동물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을 계획한다.
에스테르는 무덤을 만들고, 나는 시를 쓰고, 푸테는 우는 일을 맡는다.
그들의 사업은 성공할까? (궁금하시면 이 작품을 끝까지 읽어 보세요.)
장례식이 거듭될수록 '나'의 시는 진정성이 담긴 멋진 작품이 된다.
죽음을 무서워하던 아이가 어떻게 죽음에 다가가는지 '詩'를 따라가 보면 알 수 있다.
창문에 부딪혀 죽은 지빠귀를 위한 시에서는 애도와 함께 삶의 일부로서 죽음이 등장한다.
너의 노래는 끝났다네. 삶이 가면 죽음이 오네.
너의 몸은 차가워지고 사방은 어두워지네.
어둠 속에서 넌 밝게 빛나리.
고마워. 널 잊지 않으리.
이 작품에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동물들의 죽음이 등장한다.
죽음이란 어려운 주제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장례식도 일종의 놀이처럼 묘사한다.
덕분에 죽음을 두려워하던 '나'도, 죽음에 생경했던 '푸테'도 조금씩 죽음과 가까워진다.
다양한 죽음과 마주하면서 죽음도 삶의 일부임을 어렴풋하게 깨닫는다.
아이들에게 죽음의 의미를 경쾌하면서도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작품이다.
다섯 살 아이가 벌써 열한 살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죽음과 관련된 그림책을 꺼내 읽어 본다.
물론 다양한 그림책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궁금하다. 아이에게 죽음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인지.
하지만 용기가 없어 묻지 못한다.
늦은 밤 잠에서 깨 소리 없이 우리 방에 와 아내와 나 사이에서 잠드는 아이를 보면 왠지 가슴이 시리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나 조차도 죽음과 마주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익숙해지려고 무던히 노력할 뿐. (그렇다고 매일 죽음을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럴 시간도 없고.)
죽음과 마주하는 책들이 집에 생각보다 많았다. 그중 몇 권을 함께 소개한다.
♥ <나는 여기 있어요> 콘스탄체 외르벡 닐센 글, 아킨 두자킨 그림, 정철우 옮김
♥ <영원한 이별> 카이 뤼프트너 지음, 카트야 게르만 그림, 유혜자 옮김
♥ <나무-죽음과 순환에 대한 작지만 큰 이야기> 글쓴이 대니 파커, 그린이 매트 오틀리, 옮긴이 강이경
♥ <코딱지 할아버지> 신순재 글, 이명애 그림
♥ <할머니 제삿날> 이춘희 글, 김홍모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