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읽는 그림책 : 빨간 호수 (글, 그림 박종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계간 문예비평 전문지 <창작과 비평>을 2년째 구독 중이다.
학생 때도 가끔 빌려보긴 했지만, '내돈내산'은 처음이었다.
영화 주간지나 시사 주간지를 오래 구독했는데 문예지는 꽤 늦은 편이었다.
정작 <창작과 비평>에서 가장 주의 깊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읽는 건 '특집'이었다.
전 지구적 화두를 꼼꼼하게 분석한 글들은 좁디좁은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기에 충분했다.
상대적으로 연재소설이나 시는 헐렁하게 읽었고, 문학평론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호빵을 사서 가장 맛 좋은 팥은 먹지 않고 흰 빵(밀가루)만 먹은 셈이었다.
이번 호에는 유난히 눈에 걸리는 시 한 편이 있었다.
'거리의 시인'이라 불리는 송경동 시인의 <비대면의 세계>라는 작품이다.
평소 관심이 많은 '기후위기'를 다룬 작품이기에 더욱 그랬나 보다.
시인은 '기후위기'를 모든 재난의 주범으로 낙인찍는 작금의 상황을 경계했다.
그 이면에 있는 '침묵의 동의'를 호되게 질타한다.
작품 후반부(전반부는 자연재해 원인을 기후위기 때문이라 변명하는 현실에 대한 탄식이다)를 옮겨본다.
(맞춤법은 작품에 표기된 그대로를 따랐다.)
너무들 한다
아마존 우림이 파괴되는 것이
다국적 식량자본과 소고기 문명을 위한 목축자본
그리고 다국적 광산업을 위해 무차별 개발을 밀어붙이는
브라질의 신종 독재자 보우소나루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않고
너무들 한다
기후위기 기후재난의 원인이
전세계 석유자본 산업자본의 무한 탐욕 때문이라는 것은
과잉생산 과잉소비를 부추기는 상품 문화 때문이라는 것은
자동차 문명 플라스틱 문명 때문이라는 것은, 그 잘난
개발과 발전의 신화 때문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고
전세계 0.1퍼센트 자본가의 무한한 독점과 축적
1세계 부르주아들의 무한한 안락과 풍요를 위한
약탈과 탐욕의 문명 때문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는
교육도 언론도 문화도 정치도 너무하다
이 모든 종말과 파멸의 주범은
산불도 폭염도 미세먼지도 오존층도 아닌
태풍과 토네이도와 사라져가는 종다양성도 녹아가는 빙하도 아닌
박쥐도 천산갑도 멧돼지도 고양이도 아닌
사스도 메르스도 에볼라도 코로나19도 아닌
진실과 오랫동안 비대면해온
인간 그 스스로이다
우리가 끝내 우리의 유한한 삶과
무한한 세계에 대한 무한한 무지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한 도미노처럼 쓰러져가는
세계의 재난은 끊이지 않을 것이며
파국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당문학상'을 거부하고 슈퍼에 들러 3천 원짜리 청하 한 병 사 마셔야겠다는 그에게 현실이란, 시란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상금이 3천만 원이었다.)
시인인 그는 왜 거리로 나갔을까?
약한 자, 가지지 못한 자의 편에서 오늘도 그는 투쟁의 시를 쓴다.
누군가는 그의 시가, 심지어 이 글도 불편할지 모르겠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고개를 돌리고 눈 감으면 그만인 일이다.
왜 그는 그렇게 필사(必死)적일까?
나는 고작 그의 시집 몇 권 사는 게 전부인데….
아이들 손을 잡고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갔더랬다.
어린아이들이 세상에 대해, 정치에 대해 무얼 안다고 혹한을 뚫고 그곳까지 갔을까?
부모의 정치적 편향성에 동조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 사건은 우리 시대에 가장 큰 삶의, 역사의 전환점이 되리라 믿었다.
그 공간에서 수 백만의 열기와 숨결을 직접 느껴보기를 원했다.
그 함성과 공명은 책으로는 뉴스로는 사진 몇 장으로는 결코 경험할 수 없으리라 여겼다.
촛불 하나의 힘은 미약하지만, 수 백만이 모이면 무엇이 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 기억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편집되었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저 씨 뿌리고 흙을 덮고 물을 뿌렸으니 어떤 새싹이 돋을지는 오롯이 아이들 몫이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빨간 호수>라는 그림책이 나왔다.
첫 장을 넘기면 "잘못된 것을 느꼈을 때 우리는 어떡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나온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우화다.
사자 왕의 탈을 쓴 여우가 숲을 멋대로 기만하자 토끼는 동물들을 모아 거짓말쟁이가 누군지 폭로한다.
하지만 여우가 꾀를 부려 모였던 동물들이 다시 흩어지려던 찰나 토끼가 외친다.
힘들다고, 귀찮다고 모른 체하면 다 빼앗길 거예요.
다람쥐들처럼 집도 빼앗기고, 늘 마시던 옹달샘도 빼앗기고,
우리 아이들의 놀이터도 빼앗길 거예요!
동물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기 위해, 어두운 밤을 밝히기 위해 촛불을 든다.
그러자 숲 한가운데에 빨간 호수가 생겨난다.
아이들도 <빨간 호수>를 읽고 대번에 그림책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
진실은 가릴 수 없는 법이다.
아직 아이들의 새싹은 다 자라나지 않았다.
그 새싹이 어떤 색이어야 한다고 섣부른 규정은 하지 않을 셈이다.
다만 약자, 소외된 자, 가지지 못한 자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큰 시련과 부딪치더라도 기꺼이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