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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Feb 18. 2021

SNS에 웃고 울다

전화카드 한 장과 SNS 시대유감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내 손에 꼭 쥐어준 너의 전화카드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맙다는 말 그 말 한마디 다 못하고 돌아섰네

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동지라 말했는데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전화카드도 사야겠어

그리곤 네게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이 노래를 아시나요? 

민중 노래패 꽃다지의 '전화카드 한 장'입니다. 

학창 시절 열성적인 운동가는 아니었지만, 나름 열심히 따라다닌 이유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였기에, 

그리고 꽃다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민중가요 때문이었습니다. 

그중 이곡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었습니다.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에 그만 홀딱 빠져버렸습니다. 

웬만한 대중가요보다 더 많이 부르고, 더 많이 읊조리던 곡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게다가 가사, 가슴을 후벼 파는 가사가 어찌나 마음에 와 닿던지요. 

전화카드 좀 뿌렸더랬습니다. 


코로나로(갑자기?) 비대면 시대가 10년은 앞당겨졌다고 합니다.  

단절되고 고립된 우리는 (저도 마찬가지로) SNS에서 희망을 발견한 듯합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의 좋아요와 하트가 기쁨이 됩니다. 

숫자가 올라갈수록 입꼬리도 저절로 올라갑니다. 

누구에게 그런 온화한 미소를 보인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관심의 댓글이라도 달리면 어찌나 큰 위안이 되던지요.   

집단생활이 생존을 가능성을 높여주기에 그에 맞게 진화한 인간에게 타인의 영향은 매우 중요합니다.

고립된 우리가 스스로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도 좀 생깁니다. 

남들이 좋아할 만한 사진, 글, 영상을 올리기 위해 좋아하던 취미활동이 '일'이 되기도 합니다. 

좋아요와 하트가 평소보다 적어지면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남들은 잘만하는데 나는 왜 이럴까?

비교하게 되고 그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됩니다. 

SNS에 의지할수록 SNS는 더 많은 것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지쳐서 포기하고 싶습니다. 물론 포기해도 그만입니다. 

하지만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도록 진화한 인간이기에 포기도 어렵습니다. 


이와는 다른 방향의 문제, 어찌 보면 다소 심각한 문제도 발생합니다. 

SNS의 알고리즘이 내 관계를 한쪽으로만 몰아붙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브런치는 무색, 무취니까 아주 자유로운 편이죠?)

과거의 선택(들)에 의해 내 기호에 맞는, 내 정치적 성향에 맞는, 내가 좋아하리라 예상되는

콘텐츠들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SNS의 알고리즘이 나보다 더 나를 잘 압니다. 

만약 내가 페이스북 '좋아요'를 200번 정도 누른 경험이 있다면 내 가족이나 절친보다 

나를 더 정확히 알게 된다고 합니다. 

심지어 '좋아요'를 300번 눌렀다면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항상 최선을 다해 좋아요를 누르지는 않습니다. 

팔로워니까, 팔로잉하니까 별생각 없이 누르기도 합니다.

게다가 사람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과거에 얽매여 있지만은 않은 존재라는 거죠. 

따라서 과거의 결정들로 미래를 결정할 만큼 우리는 단편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에고 네트워크란 게 있다고 합니다. (출처 : 사회성이 고민입니다. 저자 : 장대익 교수)

좋은 기회로 저자인 장 교수님과 함께 이 책으로 진행하는 북 토크에 참가했습니다. 

에고 네트워크란 자기 절친 이름 다섯 명을 적게 하고 그들 간의 관계를 표시한 것입니다. 

그 절친 다섯 명이 서로 다 아는 사이라면 밀도는 최고치입니다. 

물론 그 절친이 나와는 알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라면 밀도는 최저치입니다. 

밀도가 낮을수록 어떤 일을 예측할 때 맞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친하면 어떤 판단을 할 때 틀린 확률이 높다는 것이죠. 

사실상 이 경우에 한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어야 

좋은 결정, 맞는 판단을 내릴 확률이 높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오늘 아침에 문득 '전화카드 한 장'이 떠오른 이유입니다. 

SNS에 너무 매달리지 말자. 

그 대신 오랜 친구들, 특히 나와 항상 죽이 잘 맞던 친구가 아니더라도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 한 통해서 안부나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다면, 그들에게서 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위로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습니다. 


최첨단 기기라 불리는 스마트폰의 '전화 기능'이 이제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도구가 되었습니다. 

쏜살같이 달라가는 시대의 변화를 좀 불러 세우고 싶습니다. 

"천천히, 같이 좀 가자고!"



이번 글의 페이스북과 에고 네트워크 사례는 '사회성이 고민입니다'에서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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