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소설) 너와 나의 연애소설
두 사람이 일상에 필요한 최소한의 대화로만 지낸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몸도 마음도 불편했지만, 어느 쪽도 사과할 의사가 없었다. 당연했다. 불화의 씨앗을 뿌린 건 전적으로 상대방이었으니까! 합리적인 인간의 전형인 지민도, 그녀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다던 준규도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차라리 연애할 때 한 번이라도 티격태격한 경험이 있었다면 슬기롭게 이번 사태를 해결했을지도 모른다. 장난꾸러기 사랑의 신 에로스(Eros)에게 지독한 편애를 받은 덕분에 말다툼 한번 안 해본 두 사람은 이번에는 한 치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소통의 부재는 또 다른 재앙의 불씨를 낳았다.
“오빠, 소변볼 때 변기 커버 좀 올리고 봐줄래? 소변이 사방으로 튀어서 지저분해지잖아. 자신 없으면 차라리 앉아서 일 보던가!”
자신이 만든 철옹성 안 깊숙이 갇혀 있던 준규는 이성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우뇌 기능을 잠시 멈춰 세우고, 그 대신 작은 자극에도 언제나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좌뇌 기능을 화약고로 만들어 둔 참이었다. 그런 그에게 지민의 발언은 치욕적인 도발이었다. 항상 변기 커버를 올려 볼일을 보았고, 행여 실수하지 않을까 각별히 신경 썼다는 사실을 설명할 마음도 없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었다. 적의 약점을 찾아내 반격해야 했다.
“욕실에 샴푸 떨어진 지 한 달이 넘었어! 네가 쓰는 샴푸는 특별한 거라 직접 사 오겠다며? 이제 좀 사 올 때도 되지 않았어? 너도 샤워하고 나오면 수챗구멍이 막힐 정도로 머리카락이 한가득이야!”
조금 미래의 일이지만, 두 사람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정상화되었을 때, 그는 방금 자신이 뱉어낸 말을 지민이 제발 잊어 주기를 바랐다. 만약 타임머신이 개발된다면 억만금을 지불하고서라도 첫 번째 탑승자가 되어 과거의 자신에게 돌아가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였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는 뒤로 물러날 곳이 없었다. 자기 방어는 인간의 순수한 본능이었다. 지민도 욕실 샴푸가 다 떨어졌다는 사실을 벌써 몇 주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일하는 영화사 근처 친환경 매장에서 화학 성분이 들어 있지 않은 제품을 구입하기로 해놓고 매번 깜빡 잊었다. 준규와의 관계가 엉망이라 출근할 때 오늘은 꼭 사야지 하다가도 퇴근 시간만 되면 까맣게 잊었다. 갑갑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언제나 솔직한 지민도 팽팽한 대치 상황에서 그에게 작은 약점이라도 보이면 안 되리라는 걸 직감했다. 인정하는 순간 패배는 그녀 몫이 될게 뻔했다. 감각이라는 측면에서 준규는 지민을 따라올 수 없었다. 그녀는 쇳소리 가득 섞인 날카로운 목소리를 담아 사자후를 날렸다.
“뭔 소리래! 나는 오늘 아침에도 샴푸로 머리 감았거든. 그리고 언제 오빠가 화장실 청소 한 번 했어?”
두 사람 싸움을 누군가 지켜보았다면 이들이 얼마나 유치하게 구는지 조언해 주었으리라. 두 사람은 국민학교에 다닐 때조차 이런 유치한 말싸움은 하지 않았다. 하물며 성인이 되어 졸렬한 말장난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싸우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만약 부부싸움을 한다면 뭔가 더 거창하고 명분 있는 것일 줄 알았다. 현실은 변기에 묻은 소변 자국과 샴푸 따위가 전부였다. 하찮은 이유라서, 아니 문제는 변기나 샴푸가 아니라 두 사람의 뒤틀린 감정 때문이라서 애증의 전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훗날 두 사람에게 ‘유치 짬뽕 전쟁’으로 회자될 이 싸움에는 명절에 누구네 집부터 가느냐, 너희 집에 며칠 있으면 우리 집에서도 똑같이 있어야 한다 등의 문제를 비롯해 분리수거, 화장실 청소, 음식물 쓰레기 처리 등 사소한 문제들까지 전부 소환되었다. 유치한 말싸움은 두 달이나 계속되었다. 이제 두 사람은 싸울 때를 제외하고는 서로 말도 하지 않았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대화는 문명의 정점에 있던 휴대폰이 대신해 주었다. 휴대폰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휴대폰은 참으로 스마트한 도구였다. 아담한 집에서 잠도 따로 잤다.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에 잠들지 못했던 강원도의 밤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되었다. 두 사람을 이어주는 건 0과 1이 만들어낸 디지털 기호뿐이었다. 하루하루가 행복했던 날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결코 원한적 없었던 삶이 어느새 그들의 일상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