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 신혼의 유통 기한

(주말의 소설) 너와 나의 연애소설

by 조이홍

달콤했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꿈에서 깨어나니 현실은 물도 마시지 않고 꾸역꾸역 삼키는 고구마 같았다. 바라만 보아도 세상 근심을 반쯤은 날려주는 이,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이가 있으니 다행이었다. 준규와 지민은 신혼여행 동안 맡은 일에 공백이 생기지 않게 꼼꼼하게 준비했더랬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두 주나 자리를 비우고 복귀했더니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점심은 건너뛰고 야근은 밥 먹듯 했다. 잠은 집에서 잘 수 있다는 사실로 그나마 위안을 삼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출근하는 첫날 지민은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준규에게 손수 지은 따뜻한 아침을 차려주기 위해서였다. 생각지도 못한 5첩 반상을 받은 준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을 위해 아침상을 차려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 나게 행복했다. 사실 준규는 신혼 초에 아직 여물지 않은 그녀의 음식 솜씨에 미각을 잃었다고 농담 같은 진담을 하곤 했다. 그 덕에 평생 지민이 만든 음식은 맛있다는 신기루 속에서 살았다. 과연 이것이 축복인가 저주인가를 놓고 가끔 두 사람 사이에 진지한 논쟁이 일기도 했다. 물론 논쟁 다음 날 그를 위한 밥상은 없었다. 아직 먼 훗날의 일이리라. 지금 준규는 자신과 똑같이 일하는 그녀가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지민아, 아침 준비해 준 거 정말 고마운데 내일부터 하지 않아도 돼. 너도 회사 일로 피곤할 텐데 아침 식사 준비할 시간에 조금 더 자. 나 학교 다닐 때부터 아침밥 안 먹어서 이제는 안 먹는 게 더 익숙해, 속도 편하고.”

"난 아침 꼭 먹어야 하는데?"

"그런 거였어?"

“농담이야. 하하하. 우리 결혼하고 첫 출근하는 날이라 오빠 아침밥은 꼭 챙겨주고 싶었어. 맛은 좀 별로지? 요리해 본 적이 거의 없거든. 어젯밤에 인터넷 보고 벼락치기 공부 좀 했는데 별로 도움은 안 되더라고. 매일 이렇게 차리는 건 자신 없지만 최선을 다해 볼게.”


준규는 지민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와 결혼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백만 스물일곱 번째 들던 참이었다. 자꾸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지민이 말하는 동안 그녀가 정말 천사가 아닐까 상상했던 자신도 우스웠다. 이토록 푸짐한 밥상은 그날 이후 한동안 구경하지 못했지만, 준규는 수라상 받는 임금보다 훨씬 행복했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 모든 게 꿈이라면 부디 깨지 않기를 바랐다.


“오빠 아무리 피곤하고 귀찮더라도 옷 갈아입고 샤워는 하고 자야지.”


준규는 자신의 팀이 모기업 계열사 중에서 광고비 지출이 가장 높은 OO건설의 경쟁 PT에 참여하게 되어 사흘 만에 집에 돌아왔다. 자료를 찾는 역할이라 팀 내 비중이 적은 데다 신혼이라는 점이 인정되어 그는 퇴근이라도 했지만, 선배들은 입시 치르는 고사장 교문에 누군가 붙여놓은 엿가락처럼 여전히 회사에 찰싹 붙어 빠져나오지 못했다. 준규는 땅과 자신의 육체가 원래 한 덩어리였으리라 느낄 만큼 피곤함에 절어 집에 왔다. 지민 얼굴을 보고 잠깐 손을 흔들며 미소를 보였지만 옷 벗을 사이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잠들었다. 지민은 그런 준규를 흔들어 깨웠지만 일어나지 못하리란 걸 알았다. 한 번 더 흔들어 깨울까 하다가 그만두고 담요를 한 장 가지고 와 덮어 주었다. 불을 꺼주고 홀로 침대에 누웠다.


“오빠, 속옷은 매일 갈아입어야 해요.”

“오빠, 샤워가 끝나면 샤워기 꼭지는 찬 물 쪽으로 돌려놓아야 해.”

“오빠, 샤워는 하루에 두 번이 기본이에요. 저녁에 퇴근해서 샤워 안 하면 내 옆에서 잘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오빠, 외출하고 돌아오면 손부터 씻고 집에서 입는 옷으로 바로 갈아입어요.”

“오빠, 오빠, 오빠……”


준규는 자신이 살아오던 방식과는 다른 지민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지민의 인생 법칙’이라고 불렀다. 지민의 인생 법칙이 하나둘씩 늘어나자 메모를 해 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마도 처음부터 번호를 매겨 두었다면 백 번은 족히 넘길 터였다. 준규는 지금까지 서로 다른 삶을 살던 두 사람이 한집에서 함께 산다는 게 쉽지만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극복하지 못할 일은 없으리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차이는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지민의 인생 법칙은 옛 준규는 훌훌 털어 버리고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은근히 요구했다. 변해야 하는 건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지민이 요구하는 것들이 어렵거나 힘든 일들은 아니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사랑하는 지민이 원하는 일인데 못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는 지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준규가 내린 사랑에 관한 정의의 결론이었다. 지민의 인생 법칙이 늘어날수록 그의 사랑도 점점 커졌다.


“지민아, 혹시 내 넥타이 봤어?”


준규는 평소 편안한 복장으로 회사에 갔다. 개방적인 광고대행사의 복장 규정이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1년에 한 번 있는 회사의 요식행위인 CEO와의 대화에 사원대표로 참석하게 되어 오랜만에 정장을 입는 날이다. 넥타이를 넣어 둔 서랍장 안을 아무리 뒤져도 차곡차곡 모아 둔 넥타이가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속옷들이 차분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넥타이 보관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긴 건지 지민에게 물었다.


“오빠 넥타이 너무 낡고 지저분해서 버렸어. 세탁소에 갔는데 세탁해도 안된다고 해서. 그나마 괜찮은 건 이쪽에 있어. 오빠네 회사 정장 입을 일이 없어서 정리 좀 했어.”


넥타이가 무려 서른 개였다. 그런데 고작 3개밖에 남지 않았다. 준규는 당혹스러웠다. 길거리에서 구입한 싸구려 넥타이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 생일선물로 받았던 넥타이도 사라졌다. 첫 월급을 받고 자신에게 주는 유일한 선물로 샀던 나름 명품 넥타이도 보이지 않았다. 자주 매던 넥타이가 아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 의미 있을지도 모를 물건을 그녀가 상의 한 마디 없이 버렸다니! '버렸다'는 사실 말고 다른 생각은 머릿속에서 빨리 지워나갔다. 남아 있던 넥타이 하나를 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찔러 넣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언제나 두 사람이 나란히 출근했는데 오늘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문을 나서는 준규를 보고 지민은 한참이나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방금 일어난 상황을 해석해야 할 사색의 시간이 필요했다.


준규가 정신없이 바빠 며칠이나 집을 비웠기에 지민은 혼자 집안 정리를 해나갔다. 그가 혼자 살던 집에 그녀가 들어왔기 때문에 살림이 아무리 없다고 해도 집이 꽤 어수선했다. 신혼여행 후 밀린 회사 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고, 주말에도 출근하느라 집 정리를 차일피일 미뤘다. 작은 티끌 하나도 참지 못하는 그녀가 용납할 수 없는 무질서였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하루빨리 밀린 숙제를 끝내고 싶었다. 큰 여행 가방 두 개에 담겨온 지민의 짐 중 일부는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했다. 아직 낯선 그의 집이 진정으로 두 사람의 보금자리가 되려면 한시라도 빨리 그녀의 짐들이 제 자리를 찾아야 했다. 원주인 물건 정리는 피할 수 없었다. 오래되어 낡고 헤진 것들이 첫 번째 대상이었다. 준규의 속옷과 넥타이, 와이셔츠, 운동복과 겨울옷 중에서 낡고 헤진 것부터 골라냈다. 준규에게 미리 말해두리라 다짐했지만 회사 일로 바쁜 준규는 얼굴 마주치기도 힘들었다. 마침 그녀도 새 영화가 개봉해 홍보 업무에 치여 그만 깜박하고 말았다. 상황을 설명하면 그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에서 낯선 타인의 향기가 느껴졌다.


준규도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꺼내어 손위에 올려놓고 찬찬히 살폈다. 이번 일은 다름의 문제라기보다 상대를 향한 예의 문제였다. 물건을 정리하려면 먼저 자신과 상의부터 하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그는 매우 합리적인 자신의 사고방식에 만족했다. 그때 합리적 사고와 등을 맞대고 있던 사랑이라는 감성이 고개를 돌리며 손짓했다. 나도 여기 있어! 그러자 지민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집을 나선 게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떠난 자리에서 지민이 느낄 감정들을 떠올려 보았다. 잘 매지도 않는 넥타이 때문에 둘 사이에 분자 크기만큼이라도 균열이 생기는 건 결고 그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어느새 넥타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추억은 지나간 흔적일 뿐이고, 지민은 현재이자 미래였다. 사랑하는 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이제 막 현실이 자각되는 순간이었다. 준규는 집을 나설 때 현관문을 쾅하고 세게 닫은 건 아닌지 걱정됐다. 휴대폰을 꺼내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문자를 보냈다.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한참 고민하다 'ㅠ ㅠ'를 문장 끝에 함께 보냈다. 반성해서 울고 있다는 의미였다. 광고 대행사 AE 센스 덕분인지 다행히 지민에게서 답장이 왔다. 마지막 모음이 무엇을 의미하냐는 질문도 따라왔다. 답장과 답장이 이어지면서 균열의 흔적은 금방 사라졌다. 그는 휴대폰을 움켜잡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마침내 역사에 기록될 첫 번째 전쟁이 발발했다. 준규가 가끔 하는 컴퓨터 게임 스타 크래프트 (Star Craft)가 원인이었다. 야근이 일상인 두 사람은 어쩌다 한번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회사 이야기나 친한 동료 이야기, 자신을 괴롭히는 선배와 상사 뒷담화로 끈끈한 연대를 확인했다. 맥주 한 캔씩 들고 지민이 새로 시작한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함께 꾸미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준규가 노트북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게임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7화 그림.jpg <일러스트 by 사비연필>

지민은 게임을 싫어했다. 학교 다닐 때도 게임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 앞에서 용맹하게도 게임을 했다. 처음에는 눈치 보며 잠깐씩 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아예 대놓고 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적당히 하는 건 눈감아 준 그녀였다. 그녀가 발휘할 수 있는 인지적 유연성의 최대치였다. '적당하다'의 범위가 서로 다르다는 게 문제였다. 어떤 날 그는 늦은 새벽까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몇 시간씩 게임에 빠졌다. 회사 일에 치여 잠자는 시간도 턱없이 부족한데 그 시간을 쪼개 게임하는 모습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토요일 저녁 10시에 시작해 일요일 새벽 5시까지 쉬지 않고 게임하던 날, 마침내 지민은 작정한 듯 준규에게 날 선 충고를 쏟아냈다. 물론 그 언어의 폭풍 안에는 준규의 건강과 수면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겼다. 문제는 지민의 선의가 그녀의 의도만큼 준규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준규는 몹시 언짢았다. 다른 날과 딜리 유독 오래 게임했다는 건 인정했다. 하지만 자주 그러는 것도 아니고, 잠자는 지민에게 방해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그런 것도 몰라주고…. 보호필름을 부착해 화려한 그래픽이 생명인 컴퓨터 게임의 참맛도 포기했다. 헤드셋을 착용하고 잡음 하나 새지 않도록 숨죽이며 게임했다. 그토록 노력했건만, 자신을 게임 중독자와 동일시하는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다. 게다가 가끔 그녀도 일촌 파도타기인지 뭔지를 하느라 밤늦게까지 싸이월드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던가! 죄인처럼 심판받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에게 날카로운 언어의 화살을 겨냥했다.


서로의 감정에 상처 줄 수 있는 화살들이 몇 번이고 자신들을 관통하자 두 사람은 잠깐 멈췄다. 처음 맞닥뜨린 상황이 몹시 당황스러웠으리라. 자신들도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둘은 서로를 향한 활시위에서 조용히 손을 뗐다. 아직은 사랑이 전부인 신혼 기간이었다. 유통 기한이 한참 남았다. 두 사람도 다른 부부와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애증의 전장에 소환될 수 있음을 실감한 것이 교훈이라면 교훈이었다. 모든 순간이 행복했던 신혼 기간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음을 아직 두 사람은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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