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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May 05. 2021

중년을 재정의하라!

중년보고서

 '중년'이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이미지는 중후함, 안정감, 배려심, 리더십 등등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이런 이미지들은 내게 개미 눈곱만큼만 있어 발견하기 쉽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 나 자신을 중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결코 중년이었던 적이 없었다. '피터팬 신드롬(증후군)'의 영향도 다소 있을 터였다. 육체적으로는 성숙한 어른이 됐지만, 어린이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심리 말이다. 그 말에는 '어린이로 대우받고 보호받기'를 원하는 심리도 내포되어 있지만 거기까지는 아니었다. 어린아이처럼 놀기 좋아하고, 좋아하는 장난감(피규어, 총, 만화책)을 보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정도의 다소 가벼운 증상의 피터팬이었다. 주위 친구들, 동료들 모두 비슷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전에서 우연히 '중년'을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무 놀라 뒤로 자빠질 정도였다. 


중년(中年)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마흔 살 안팎의 나이가 중년이라고? 그럼 한참 지났잖아!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중년의 정의다. 호모 헌드레드 시대(100세 시대)에 이 말은 다시 정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말 40대를 중년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이른 감이 있다. 40대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청년에 가깝다. 딴지 거는 게 아니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표준 진단 매뉴얼인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은 과거에 중년을 40~59세 사이로 정의했지만, 4차 개정판(1994년)에서는 최대 50~64세로 정의를 개정했다고 한다. 백세 시대를 맞아 중년을 50세~64세로 재정의하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도입이 시급하다!


 독일 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릭 에릭슨은 그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에서 인간에게는 미리 정해진 8개의 발달 단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일곱 번째 단계인 중년기는 ‘생산성 대 침체성’의 시기다. 자기가 무언가를 직접 성취하는 것보다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이를 통해 후배들의 감사를 받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기라는 것이다. 이때 자기에게 물려줄 만한 레가시(legacy)가 없다고 느끼면 침체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위키백과, 네이버 참고)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 / 출처 : NAVER>

 40대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자신의 성취를 이루어야 하는, 성취를 강요당하는 나이가 아니었던가? 40대 중·후반이면 대략 15년~20년 차 직장인이다. 짧아진 직장인의 라이프 사이클로 보통 이 정도면 가장 연차가 높은 축에 든다. 그리고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부를만한 업무 숙련도를 가졌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서 성취감을 느끼리라 생각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들의 내면을 이루는 가장 큰 감정은 소외감(외로움)에 가깝다고 본다.  


 다소 극단적 일지 모르지만 '회식문화'를 예로 들어보자. (선배가 주면 주는 대로 받아 마시던 회식 문화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는 관행은 잘못되었음을 전제로 한다.)    


 이들이 처음 직장에 들어갔을 때는 회식을 통해 팀워크를 다졌다. 과장님, 차장님을 형이라 부르며 사무실에서는 못하는 속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술 마시기 싫어 억지로 '끌려가는' 날도 더러 있다. 그런 날에는 "저 요즘 한약 먹어요."라고 핑곗거리를 찾아 둘러댄다. "몸 좋아졌겠네. 그럼 마셔도 돼." 하며 벌써 술 따르는 선배가 있다. "오늘 치과 다녀왔어요." 하면, "알코올로 소독해야지." 하며 술 권하는 선배도 하나쯤 꼭 있다. 마지못해 마시지만, 그리 싫지만도 않다. 회사 생활의 일부였고 피할 수 없으니 즐기는 쪽을 택했다. 


 이제 이들이 40대가 되고 최고참(팀장)이 되었다. 젊은 친구들은 "회식 끝나면 여자 친구랑 데이트가 있어서요.", "술을 잘 못 마셔요."라며 술 마시기 싫다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한다. 표현의 자유, 부럽다! 이들은 후배들한테 술을 권하지 않는다.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 2차, 3차는 사라진 지 오래다. 저녁을 먹으며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고 사무실에서는 못하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싶을 뿐이다. 이들(팀장)의 착각일 뿐이다. 밖에 나와서까지 회사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회식이라면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회식'은 사라지게 될 운명이었다. 


 영어 실력은 또 어떤가? 이들은 '서바이벌 잉글리시'로 새벽과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영어학원에 다녔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정 실력 이상 늘기가 쉽지 않았다. 짬밥과 눈치, 그리고 노력의 대가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요즘 친구들은 영어는 기본에 중국어나 일본어, 스페인어까지 화려한 스펙을 자랑한다. 이들은 모두 동료이며 경쟁자다. 한쪽은 노련미로 한쪽은 열정과 외국어로 중무장했다. 겉으로는 달라 보여도 사실, 둘 모두 외롭다.  


 이런 상황은 에릭슨의 이론에서 여섯 번째 단계인 초기 성인기에 가깝다. 이 시기의 특징은 ‘친밀감 대 고립감으로 나타난다. 40대는 여전히 친밀감을 형성하고 싶고 고립되는 게 무서운 나이다. 이들을 중년이라 명명하고 멘토나 조언자의 영역으로 밀어내는 것은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청년을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것만큼 잔인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샌드위치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위에서는 누르고 아래서는 치고 올라오는…. 그래서 40대는 더 외롭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20대만 되면 세상을 짊어지고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믿었다. 지금 20대는 어떤가? 아프고 방황하는 나이가 되었다. 청소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육체적 발달과 사회, 심리적 발달의 균형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어긋났다'라는 건 사회 통념이나 기준이 오래되었기 때문이지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발달이론, 새로운 정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중년은 60세부터, 노년은 80세부터면 좀 어떤가! 무엇보다,


 이렇게 엉터리 논리로라도 나는 아직 중년이 되고 싶지 않다! 중년은 재정의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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