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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May 02. 2021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텃밭이 필요한가

텃밭 가꾸기

 톨스토이 단편선에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작품이 있다. 근면하고 착한, 동시에 우직한 농부가 그의 땅을 갖게 되는 이야기다. 주인공 바흠은 소작농이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지만 일한 만큼 내어주는 땅에 불만 없는 삶을 살았다. "지금 이 생활에서 땅만 여유가 있다면 난 겁날 게 없어. 악마도 무섭지 않아."라고 말한 게 화근이 되었다. 우연히 그 말을 들은 악마가 그를 시험에 들게 했다. 


 바흠은 처음 약 4만 5천 평 (15 데샤티나)의 땅을 사들인다. 소작농에서 지주가 된 것이다. 돈을 빌려 땅을 샀지만 농사가 잘되어 빚을 금방 갚는다. 하지만 자신의 땅에서 문제가 발생해 마을 주민과 재판까지 벌이게 된다. 그는 좀 더 큰 땅을 원하게 된다. 나그네로 위장한 악마의 꾐에 빠져 새 고장에 이르고 그곳에서 약 십오만 평 (50 데샤티나)의 땅을 갖는다. 그곳에서도 농사는 대성공이었다. 더 부자가 되었지만 더 넓은 땅을 원했다. 그때 어떤 상인(역시 악마)이 '바시키르'라는 지역에서 1,000 루블에 천오백만 평(5,000 데샤티나)이나 되는 땅을 얻었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하인과 함께 바시키르로 향한다. 


 바시키르 지역에서 땅을 거래하는 방법은 남달랐다. 일정 넓이에 얼마 하는 식이 아니고, 하루에 걸을 수 있는 만큼의 넓이를 모두 소유할 수 있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출발지점으로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하루치 비용이 1,000 루블 (바흠의 전 재산)이었다. 그는 곡괭이를 들고 온종일 열심히 걸었다. 잠시 쉬지 않았다. 빵도 걸으면서 먹었다. 걷다 보니 자꾸 마음에 드는 땅이 눈에 들어왔다. 멈출 수 없었다. 해가 지기 직전 그는 출발지점에 되돌아오기 위해 언덕을 뛰어올랐다. 포기하려고 해도 촌장(악마)이 쉴 새 없이 재촉했다. 결국 바흠은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그는 한 평도 안 되는 무덤에 묻혔다. 그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의 전부였다. 


 우리 아파트에는 집집마다 1평 남짓한 텃밭이 딸려 있다. 해마다 그 텃밭에서 호박, 오이, 방울토마토, 쌈채소를 길렀다. 1평인데도 매년 농사가 잘돼 우리 집에서 다 먹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층간 소음으로 언제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뿐인 아래층에는 제일 먼저 싱싱하고 모양도 제대로인 녀석들만 골라 나누어 드렸다. 쌈채소는 이웃집이나 가까이 사는 지인과도 나누어 먹었다. 잘 자란 호박이나 오이는 고향집, 처갓집에도 몇 개씩은 꼭 갖다 드렸다. 1평이면 정말 충분했다. 


 몇 해 전부터 텃밭에 대지주가 등장했다. 집집마다 1평씩 배분된 텃밭인데 어떻게 대지주가 등장할 수 있었을까?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모든 세대가 텃밭을 가꾸는 일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두세 해 지나니 노는 텃밭이 생겼다. 그 텃밭을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대지주가 탄생했다. 원래 주인의 허락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가끔 소유권을 주장하는 푯말('이 밭은 집주인이 경작합니다.')이 일부 텃밭에 세워지기도 했다. 그런 걸 보면 꼭 허락을 득한 것은 아닌가 보다. 물론 일부는 허락을 받고 경작했다. 시간도 관심도 없는 원래 주인에게 나쁘지만은 않은 협상이었다. 대지주는 텃밭에서 나오는 각종 농산물을 원래 텃밭 주인과 나누었다.  


 두 번째 방법은 '개간'이었다. 텃밭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공간에는 공유지가 제법 있었다. 그 공간을 언제부턴가 사유화했다. 텃밭으로 활용하기에는 거친 땅이었기에 품을 들여 말 그대로 개간했다. 처음에는 어차피 빈 땅인데 활용하면 좋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아주 좁은 공간까지 텃밭으로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지만은 않았다. 통로로 사용하는 길도 자꾸만 좁아졌다. 혹시 농사지어서 내다 파나 싶기도 했다. 이제 여백이라고는 조금도 찾기 힘든 그곳을 보며 톨스토이의 작품이 떠올랐다.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언젠가 Q가 옆 텃밭 (경작하지 않는)을 우리가 농사지으면 안 되냐고 물었다. 1평에서 나오는 채소도 다 먹지 못하는데 무엇하러 남의 텃밭까지 경작하냐고 물었더니 '남들도 다 하니까'라고 대답했다. 욕심이 욕심을 낳았다. 이 자그마한 1평도 농사지으려면 물 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벌레도 잡고 신경 써야 할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1평이 더 생기면 일은 곱절이 되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에겐 딱 요만큼이면 충분해." 


 올해는 그 1평에 케일, 샐러리, 청양고추, 깻잎까지 심었다. 널찍한 화분 하나를 갖다 두고 대파도 심었다. 일요일 아침이라 잘 있는지 살펴보러 갔는데 먼저 심은 케일이 부쩍 자랐다. 씨앗으로 심은 대파도 싹을 틔웠다. 딱 노력한 만큼만 내어주니 이렇게 공평할 수 있을까? 세상 일도 이와 같으면 좋겠구나 싶다.  

<왼쪽부터 쌈채소, 샐러리와 케일, 오이와 가지, 방울토마토와 고추, 호박, 깻잎...1평도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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