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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May 20. 2021

올해도 심상치 않다!

매미나방 애벌레의 역습, 지구 온난화는 계속된다.

 부처님 오신 날 늦은 아침, 부스스 잠에서 깨 텃밭에 올라갔다. 오랜만에 날이 좋아 물 주러 갈 참이었다. 새벽부터 텃밭에서 일과를 시작하신 '대지주 사대천왕'께서 마침 사이좋게 내려오셨다.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텃밭으로 올라가는 계단 끝자락에 옷이나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주는, 강력한 바람이 나오는 '총' 한 자루가 마련되어 있다. 사대천왕 중 한 분이 동료 등에 바람을 쏘아주다가 깜짝 놀란다. 큼지막한 송충이 한 마리가 등을 꾸물꾸물 기어가더란다. 정작 본인 다리에도 한 마리가 기어가는 걸 보지 못하셨나 보다. 뒤늦게 발견하고는 작은 소동이 일었다. 송충이와 내외하는 사이라 행여나 하는 마음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만날 인연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 건가?   

<사진은 지난해 찍은 매미나방 애벌레다. 휴대폰을 두고 가 사진을 못 찍었다>

 한 평 남짓한 우리 텃밭에도 송충이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화려한 색깔의 녀석들은 상추나 루꼴라 같은 쌈 채소를 놀이터 삼아 열심히 꿈틀댔다. 4월 말에도 눈이 내리는 이상 기후를 보여 모종이 예년에 비해 1~2주 정도 늦게 나왔다. 이런 날씨라면 올해는 매미나방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안심하던 차에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매미나방이 역습했던 지난해에도 텃밭에서 애벌레를 발견한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남방한계선이 무너졌다! 이대로라면 올해도 동네 뒷산을 안심하고 오르기는 틀린 듯하다. 정말 심상치가 않다. 


 지난해에도 매미나방 관련해서 두 편의 글을 브런치에 올렸더랬다. 하나는 동네 뒷산 산책 중에 매미나방 애벌레를 사정없이 응징(?)하는 아내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칭송한 글이었고, 다른 하나는 매미나방의 개체수 증가를 기후 온난화의 실체적 증거로 지목해 경종을 울리고자 쓴 글이었다. 

 

 매미나방은 전 세계에 고루 분포하는 나비목 독나방과 곤충이다. 집시 나방이라고도 불린다. 가을에 암컷이 알을 낳으면 약 9개월 동안 알 상태로 있다가 4월~5월경 부화한다. 유충(송충이)으로 약 2개월을 살다가 번데기가 되고, 약 15일간 번데기 생활을 끝내면 성충이 된다. 성충의 수명은 7~8일이며 이 기간 동안 암컷은 500여 개의 알을 낳는다. 산림이나 과수의 해충으로 악명 높다. 


 매미나방의 개체수 증가 원인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지구 온난화'도 설득력 있는 가설 중 하나일 뿐이다. 알 상태로 겨울을 보내야 하는 매미나방 입장에서 혹한의 날씨는 생존율을 저하시킨다. 그러니 비교적 따뜻한 한반도의 겨울은 매미나방에게 로또에 당첨된 것보다 더 큰 행운이다. 게다가 천적인 금개구리는 무분별한 개발로 서식지가 사라지면서 멸종위기에 처했다. 생태 피라미드의 제일 하단에 있는 매미나방에게 '태평성대'가 도래한 것이다. 지구 온난화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코로나로 소위 지구가 멈췄다는 지난해,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감축했을까?


 요즘 색다른 이유(?)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빌 게이츠의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을 읽고 있다. 1/3 정도 읽고 있는데 지구 온난화와 코로나 19 상황을 비교한 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1918년 스페인 독감과 코로나 19 팬데믹의 데이터를 사용해 평균을 내면, 글로벌 팬데믹이 세계 사망률을 얼마만큼 증가시키는지 추정할 수 있다. 분석 결과, 팬데믹으로 인해 매년 10만 명당 14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냈다. 기후변화와 비교하면 어떨까? 21세기 중반이 되면 기온 상승으로 인한 세계 사망률은 10만 명당 14명으로 팬데믹과 같은 수준으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21세가 말에 탄소 배출량 증가율이 계속 높게 유지된다면, 기후변화로 인한 추가 사망률은 10만 명당 75명에 이를 것이다. 

 경제전망 역시 암울하다. 앞으로 10년이나 20년 내로 기후변화가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코로나 19 규모의 팬데믹이 10년마다 발생하는 것만큼이나 심각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배출량을 계속 유지한다면 훨씬 나빠질 것이다. 

 2020년, 코로나 19로 인류의 경제활동이 크게 줄어들었다. 일부 공장이 멈추었고, 자동차와 비행기도 멈추었다. 그렇다면 온실가스 배출량은 얼마나 줄어들었을까? 5퍼센트란다. 단, 5퍼센트! 3백만 명 이상 사망했고 수천만 명이 실직했다. 여전히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인들이 고통받고 있다. '코로나의 역설'이라며 자연이 우리에게 돌아왔다고 설레었는데 온실가스는 고작 5퍼센트 만을 감소시켰을 뿐이다. 이 대목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몸이 으스스했다. 아직은 조금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기후위기(재앙, 변화)를 코로나와 비교해 설명하니 바로 눈앞에 보듯 선명하게 그려졌다. 


 불행히도 매미나방은 시작일뿐이다. 당장 등산은 가지 않으면 그만이고, 과수원을 운영하지 않으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일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산에 사는 매미나방이 텃밭을 침범했듯이 우리 삶에 더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문제는 매미나방의 피해가 가장 경미한 사례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미 이상 기후의 징후가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잦은 산불, 폭설, 폭우, 가뭄, 홍수 등 그 사례는 차고 넘친다. 지정학적으로 비교적 운이 좋은 우리나라는 이제 매미나방으로 시작하지만, 다음에는 무엇이 올지 모른다. 이것은 재난영화의 예고편이 아니다. 현실이다. 영화는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내지만, 자연은 언제나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한다. 


 빌 게이츠는 '소비자'로서 우리가 할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청정 전기를 신청하라 (이건 미국 사례인데, 우리나라에도 도입이 시급하다!)

집 안 배출량을 감축하라 (LED 등 교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 사용, 단열창 등)

전기차를 구매하라 

인공 고기를 먹어라

우리 집도 LED 등으로 일부 교체했고, 육류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 타고 있는 차가 노후되면 (앞으로 3~4년은 더 탈 수 있을 듯 하지만) 다음에는 전기차로 구매할 예정이다. 1회용 제품 사용을 자제하고, 텀블러를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기후'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정당'을 지지하려고 한다. 오늘 인류가 직면한 과제는 코로나지만, 내일은 기후재앙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사실 매미나방은 잘못이 없다. 그렇다면 누가 또 잘못했을까?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 나온 문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세계는 인간의 실존을 모든 단순한 동물적 환경으로부터 분리시키지만, 생명 자체는 이러한 인위적 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며, 인간은 생명을 통해 모든 다른 살아 있는 유기체와 관계를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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