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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Aug 31. 2021

온난화는 인간의 영향

&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by 호프 자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 설립한 국제기구이다. 전 세계 과학자가 참여해 발간하는 평가보고서(AR, Assessment Report)를 지금까지 다섯 차례 발간했는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정부 간 논의의 근거자료로 활용된다. 기후변화에 대한 원인 분석과 예측뿐만 아니라 온난화 완화 방법 및 비용, 사회·경제적 영향까지 폭넓게 다룬다. 기후정보 포털에서 발췌한 아래 내용을 보면 IPCC 평가보고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제1차 평가보고서('90) :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채택('92)

제2차 평가보고서('95) : 교토의정서 채택('97)

제4차 평가보고서('07) : 기후변화 심각성 전파 공로로 노벨평화상 수상 (엘 고어 공동 수상)

제5차 평가보고서('14) : 파리협정 채택(‘15)


 지난 8월 초 IPCC 6차 평가보고서의 제1 실무그룹 보고서가 승인되었다. IPCC 보고서는 3개의 실무그룹 보고서와 특별보고서, 그리고 이를 통합한 종합보고서로 구성된다. 제1 실무그룹 보고서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예측이 담겨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취약성 및 적응, 영향 평가 등이 담긴 제2 실무그룹 보고서, 온실가스 배출 방지·제한을 통한 기후변화 완화 및 완화에 따른 비용·편익 및 정책 분석을 담은 제3 실무그룹 보고서가 내년 초에 나오고, 2022년 9월 최종적으로 종합 보고서가 발간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번 6차 평가보고서(AR6)가 심상치 않다. 지난 5차 평가보고서가 '온난화는 명확한 사실'이라고 규정한 것이 큰 특징이라면 이번 6차 평가보고서의 예고편 격인 제1 실무그룹 보고서는 '온난화가 인간의 영향'임을 명백히 밝혀 큰 충격을 주었다. 그동안 쉬쉬 했던 공공연한 비밀에 대해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보고서 이곳저곳에 '인간의 영향(human influence)'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마치 "그것 봐, 내 말이 맞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It is unequivocal that human influence has warmed the atmosphere, ocean and land. Widespread and rapid changes in the atmosphere, ocean, cryosphere and biosphere have occurred. 
(인간의 영향이 대기, 해양, 육지를 온난화시켰다는 것은 명백하다.
대기, 해양, 빙권 및 생물권에서 광범위하고 급격한 변화가 발생했다.)


 보고서는 영문으로만 나와 있어 원문과 국문 번역을 함께 옮겼다(번역본은 10월 이후에나 나온단다). 이런 사실이 이미 누군가에는 당연한 이야기일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충격일 것이다. 나 역시 입버릇처럼 인간(활동)이 온난화의 주범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정작 이렇게 보고서에 명확히 언급된 것을 보자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찔했다. 나쁜 행동을 하다 누군가에게 들킨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불행하게도 나쁜 소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750년 이후 온실가스 농도의 증가 역시 명백히 인간 활동의 영향에 의해 발생했는데, 2011년 제5차 평가보고서 작성을 위해 측정한 이래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꾸준히 증가해 2019년에는 연평균 410ppm에 도달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410ppm이라고 하면 얼마나 심각한지 일반인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이는 지난 2백만 년 동안 도달한 적 없는 매우 위협적인 수치다. 온실가스가 지구를 뜨겁게 만드는 동인(動因) 임을 생각한다면 전례 없이 치솟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1.5℃ 평균 기온 상승이 종전 예측보다 10년 정도 앞당겨진다는 슬픈 소식도 함께 전했다. 


 이밖에도 이번 보고서는 강수량의 패턴 변화, 빙하의 후퇴, 평균 해수면 상승, 생물권 변화, 지구 표면 온도 상승, 세계 곳곳에서 관찰되는 극단적인 폭염·집중호우·가뭄·열대성 저기압 등의 기상이변이 인간의 영향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정책 결정자를 위한 42페이지짜리 보고서에는 온통 암울한 이야기뿐이다. 특히 아래 대목을 읽을 때는 간담이 서늘해지기까지 했다.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지구 온난화의 부정적 결과들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원상태로 되돌 수 없다는 의미다. 그때까지 살 것도 아니면서 괜한 걱정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얼굴도 모르는 후세를 위한 괜한 오지랖일지도. 이 광활한 우주에 인간이 머무를 수 있는 안식처는 지금도 먼 미래에도 지구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아끼고 또 아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순리 아닐까? 측은지심이 인간의 본성 아닐까?

Many changes due to past and future greenhouse gas emissions are irreversible for centuries to millennia,
especially changes in the ocean, ice sheets and global sea level.
(과거와 미래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변화, 특히 바다,
빙하와 지구 해수면의 변화는 수 세기에서 수천 년 동안 되돌릴 수 없다.)

 최근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를 읽었다. 빌 게이츠의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이 기술자&사업가의 관점에서 기후위기에 대해 조망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면, 이 책은 (여성) 과학자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진단하고 우리 일상에서 변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실천 방향을 제시한다. 굳이 여성이라는 성별을 앞에 붙인 이유는 빌 게이츠가 테크닉적인 측면을 강조한데 반해, 호프 자런은 따뜻하고 배려심 가득한 시선으로 기후변화와 불평등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나가 기술서라면, 다른 하나는 에세이에 가깝다고 느꼈다. 두 사람 모두 사실에 기반해 기후 문제를 바라보기에 비슷한 관점도 물론 많다. 하지만 호프 자런은 IPCC 활동이나 국제 사회의 기후 위기 공동 대응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파리 협약 이후에도 여전히 온실가스 그래프가 우상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근본 인식을 바꿔야 하며 (1965년 스위스 수준으로 돌아가자) 너무 풍요로워진 일부 사람들이 (주로 OECD 회원국) '덜 소비하고 더 많이 나눔'으로써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자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점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현재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많은 사람과 공유하며, 궁극적으로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지구를 위해 무언가를 하길 원한다면 그 일이 의미를 가질 동안에 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기후위기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는 건 이제 불가능해졌는지도 모른다. 아니, 솔직히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그 시계를 멈추는 일이다. 당장 지구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목록을 만들고, 지구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연대해 더 좋은 아이디어를 더 많이 발전시켜야 한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전기를 절약하는 것만으로도 지구를 위해서 큰 도움이 된다. 하나는 미약하지만 모두가 함께하면 말이다. 인간이 어디까지 풍요해질 수 있을지는 더 이상 우리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인간이 풍요로워질수록 지구가 피폐해진다는 사실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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