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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05. 2021

사랑해서 돌아서야 할 때

아내는 그리고 남편은 쓰다 <그림 에세이 - 제주를 그리다>

 10월 3일 개천절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개천절을 결혼기념일로 공유하는 지인들이 몇몇 있었는데 또 한 명이 추가되었다. 일곱 번째 조카도 이번 개천절에 결혼했다. 코로나 시대에 결혼한다는 게 참 쉽지 않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단 49명만 참석할 수 있는 결혼식에 누구를 초대하고 누구를 초대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섬뜩했다. 축의금 접수라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운 좋게 참석했지만, 또래 사촌들이 대부분 참석하지 못했다. 오히려 삼촌인 나보다 더 신부(조카)와 각별히 지내는 사이였다.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애써 결혼식장까지 찾아온 많은 하객들 역시 신랑, 신부와 인사를 나누고 예식이 시작되기 전에 발길을 돌렸다. 그분들이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들보다 신랑 신부와 덜 가깝거나 덜 친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카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다른 하객을 배려해 일부러 참석하지 않았단다. 그렇게 각자 사정이 있었다. 그걸 알기에 예식을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하객들 얼굴에서 섭섭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코로나가 만든 이상하고 아름다운 결혼식 풍경이었다.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쓰던 그해 아내와 나는 결혼했다. 결혼식은 춘천의 한적한 변두리 호텔 정원에서 야외식으로 치르기로 했다. 오후 1시 결혼이었는데 오전 11시부터 억수로 비가 왔다.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날씨였는데 마치 영화처럼 갑자기 검은 구름들이 머리 위에 모여들더니 굵은 빗방울을 토해냈다. 강한 바람이 빠지면 섭섭할 뻔했다. 아름답게 꾸며진 야외 식장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결혼식이 불과 두 시간도 남지 않았는데 벌어진 일이었다. 결혼식을 총괄하던 호텔 매니저님이 발 빠르게 실내 예식으로 변경하자고 대안을 제시했다. 사실 대안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결혼식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신랑 입장을 준비하는데 사정없이 내리꽂던 소낙비가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푸른 얼굴을 수줍게 내밀었다. 새 신랑 새 신부한테 조금 미안했는지 일곱 빛깔 무지개를 보내 위로해 주었다.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결혼식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씀하셨다. 


 "결혼하는 날 비 오면 잘 산다더라." 


 결혼식날의 지독한 소나기 덕분에 우리 부부는 여전히 사이좋게 잘 지낸다. 가끔 우리 사이를 시샘하는 2인조 악당의 훼방을 받지만, 둘이 한 마음으로 잘 버텨내고 있다. 결혼 초 아내에게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도덕이나 윤리,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의무감과는 무관하게 봄에 새싹이 돋듯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음 한 편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결혼 이후에 그런 감정이 생기는 사람을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 솔직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사랑하는 아내의 행복을 위해, 마음은 몹시 아프겠지만, 보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더 사랑하기 때문에 돌아설 수 있다고. 아내는 별 실없는 소리를 다한다고 웃어넘겼지만, 그때 나는 무척이나 진지했다. 내가 좀 그랬다. 아내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이 사람 대신 죽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정한다, 20대의 나는 좀 유치했다. 




 지난해 봄 제주도 가족여행을 계획했더랬다. 그동안 제주 여행 대부분은 여름휴가로 떠났다. 가끔 가을에도 갔지만, 봄과 겨울의 제주는 우리 가족에게 아직 탐구해야 할 미지의 세계였다. 사실 나는 매해 봄 제주로 출장 갔다. 일부러 출장 핑계를 만든 건 아니었지만 5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제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벚꽃이 피었다. 벚꽃 개화시기에 맞춰 '왕벚꽃축제'도 열린다. 팝콘처럼 터진 제주의 벚꽃은 유난히 희고 탐스러웠다. 만물의 생명이 태동하는 봄의 제주는 작렬하는 태양 아래 시원한 바다에 몸을 던지는 여름과는 또 다른 묘미가 있었다. 생기 넘치는 봄의 제주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꼭 한 번 보여주고 싶었다. 함께 하고 싶은 일들도 많았다. 제주 한달살이 할 때 계획했다가 미처 가지 못했던 몇몇 오름들도 오르고, 제주 해안선을 따라 자전거로 한 바퀴 돌고도 싶었다. 제주도라면 온 가족이 함께 자전거 일주를 해도 안전할 터였다.

<사진 제공 : 한국관광공사>

 봄에 꼭 걸어야 하는 길도 있었다. 나름 제주 전문가라고 자부했는데 아직도 모르는 곳이 많았다. 그래도 이 길을 몰랐다는 건 좀 심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힌 '녹산로'였다. 사진으로 우연히 이 길을 본 순간 커다란 쇠망치로 머리를 세게 두들겨 맞은 듯했다. 장장 10km에 걸쳐 유채꽃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름답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꽃길이었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도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원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일부러 피해 가는 마니아적 기질이 있지만, 이 길만은 아내와 아이들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싶었다. 꽃(식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꽃(식물)을 좋아하게 되면 나이 든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는데 그럴지도 몰랐다. 차를 타고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만족했던 봄꽃길을 언제부턴가 천천히 걷고 싶었다. 녹산로가 있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는 '시간을 더하는 마을'이라는 운치 있는 이름의 마을로 제주에서도 유채꽃이 가장 많이 피는 곳으로 유명하다. 유채꽃은 쌍떡잎식물 양귀비목 십자화과의 두해살이풀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평지'라는 이름으로, 실학자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운대'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기름을 얻기 위한 작물(유료 작물)로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재배한 것은 1960년대 초부터다. 제주도에 유채꽃이 풍부한 이유는 추위와 습기에 강하고 빨리 자라는 습성이 있어 척박한 제주 땅에 잘 맞기도 하지만 바로 이 기름을 얻기 위해서였다. 메밀이나 땅콩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이 어느새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이 되었다. 유채꽃도 그랬다. 많은 관광객이 봄철에 제주를 찾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만개한 유채꽃을 보기 위해서다. 우리 가족도 모처럼 제주의 벚꽃과 유채꽃을 마음껏 즐기는 상춘객이 되고팠다.


 몇 달 전부터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했다. 제주에 진심인 아내와 아이들은 출발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났다. 제주 출발이 불과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다. 녹산로의 유채꽃길이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코로나 시대에 관광객의 발길을 잡아 끄는 유채꽃에게 죄가 있었나 보다. 축구장 13개 크기라는 유채꽃밭은 4대의 트랙터가 온종일 갈아엎어야 할 만큼 넓었다. 유채꽃밭을 갈아엎기로 한 가시리 마을 주민의 마음 역시 편하지만은 않았을 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코로나 청정지역이던 제주에 관광객과 함께 전염병이 올까 두려웠을 마을 주민의 고심에 찬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녹산로를 걷는 것 말고도 가보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았지만, 아내와 상의 끝에 제주행을 포기하기로 했다. 우리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으로 이어지길 바라지 않았다. 아내는 곧 코로나가 끝날 테니 그때 가서 두 배 더 신나게 제주를 즐기자고 했다. 불행히도 망할 놈의 코로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우리의 제주 앓이도 마찬가지다.  

<안녕, 유채꽃 / 오일 파스텔, 35 x 12>

 올 봄 아내를 설득해 지난 1년 여간 완성한 작품들로 그림책을 만들어 한 출판사의 그림책 공모전에 도전했더랬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 가족처럼 차마 제주에 가지 못하는 여행객의 마음을 담아 <제주를 그리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다'는 '그리워하다'와 '그림을 그리다'의 중의적 표현이었다. 내가 브런치북으로 만든 <랜선 제주 여행 - 제주에 가고 싶다>의 그림책 버전이기도 했다. 아내는 제주에 가지 못한 마음을 <안녕, 유채꽃>이라는 작품에 담았고 이를 그림책의 첫 번째 장으로 구성했다. 프롤로그인 셈이었다. 그림책 공모전 마감에 쫓겨 아내는 이 작품을 다소 짧은 시간에 마무리해야만 했다.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지 얼마 전부터 이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아직 미완성작이고 아내는 갈길이 멀다고 하지만, 이른 아침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넘실대는 파도와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그리고 노오란 유채꽃밭이 제주에 온 듯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내 그림을 보고 "그림 참 괜찮은 것 같아. 진짜 제주에 와 있는 기분이야."라고 말하면 아내는 "이제 그만 콩깍지 좀 벗어라!"라고 말은 하지만 싫지 않은 얼굴이다. 미각을 잃고 행복을 찾았지만 '시각'마저 잃지는 않았다. 아내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말 그런 느낌이 든다. 정말 다행이다, 아내에게 다른 사랑이 생기지 않아서…. 

<안녕, 유채꽃 2 / 장지에 콜라주, 분채 / 130 x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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