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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06. 2021

태초의 인간

한뼘소설

푸루샤는 최초의 존재였다. 

아직 푸루샤를 지칭할만한 언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이름을 갖게 된 건 아주 먼 훗날의 일이었다.


푸루샤가 처음 눈을 떴을 때 그가 느낀 감정을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공허(空虛)나 고독(孤獨)이라고 유추할 뿐이었다.

가장 먼저 창조되었다는 것, 그것이 그의 업(業)이었다.

왜 그래냐 했는지, 왜 자신이어야 했는지 질문할 수 없었다.   

셀 수 없는 많은 겁(劫)이 그에게로 흘러갔고, 또 흘러나왔다.  

어느 날 문득 내가 눈을 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름과 함께 세상에 태어났다.

때로는 죽음, 때로는 희생, 그것이 내 이름이었다.  


내가 먼저 푸루샤에게 말을 걸었다. 

외로움에 지친 그의 흐느낌이 나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만나기 전부터 서로의 존재에 대해 어렴풋하게 느꼈다. 

세상의 이쪽 끝과 저쪽 끝에 존재했지만, 그것은 곧 곁에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광활한 세계에 오직 둘만 존재하였으므로 우리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내가 말했다. 

"외롭니? 나와 하나가 되자. 그럼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야." 

푸루샤는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뭔가를 결심한 듯 나를 삼켰다. 나는 그의 일부가 되었다. 


푸루샤가 죽자 세상이 요동쳤다. 

태양이 하늘을 가로질렀고 계절이 순환했다. 

비가 내렸고 꽃이 피었다.  

마침내 희생된 푸루샤의 주검에서 생명이 태동했다. 

푸류샤의 몸을 빌어 탄생한 존재들은 우리를 그대로 닮았다. 

찬란했으나 유한했다. 

떠들석했지만 외로웠다.  

그래서 그들은 깨달았다. 

서로에게 기대야 함을, 그래야 외롭지 않음을. 그래야 살 수 있음을. 

그들은 스스로를 인간(人間)이라고 불렀다. 

인간은 그들에게 생명을 준 존재를 푸루샤, 즉 '태초의 인간'이라고 불렀다. 




요즘 짬짬이 카렌 암스트롱의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 - 축의 시대>를 읽고 있습니다. 푸루샤(Purusha)는 산스크리트어로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이 생겨나도록 하기 위해 신들 앞에서 스스로 희생한 태초의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리아인은 '희생'을 이용해 세계와 자신들의 사회를 설명했습니다. 우주 자체가 희생을 통해 창조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신들은 땅에 식물, 황소,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생명도 없고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신들이 식물, 황소, 인간을 희생시키자 비로소 생명이 싹텄다고 합니다. 이번 한뼘소설은 고대 아리아인의 신화에서 영감을 빌려 이야기로 꾸며 보았습니다. 인간은 본디 죽음과 마주쳐야 하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런 사실이 인간을 더욱 외롭게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불멸의 존재였던 푸루샤는 기꺼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생명을 탄생시켰습니다. 희생을 통해 인간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를 보듬어 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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