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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20. 2021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쇠소깍

신비한 숲에 둘러 싸인 쇠소깍과 낭만의 하효항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방망이를 두드리면 무엇이 될까

 금 나와라 와라 뚝딱

 은 나와라 와라 뚝딱


 제주의 쇠소깍을 생각할 때면 이상하게 어릴 적에 많이 불렀던 동요 '도깨비 나라'가 떠오른다. 온갖 화려한 볼거리가 오감을 자극하는 요즘과 달리, 그 시절에는 단 몇 소절의 동요에서 싹튼 무한한 상상력이 궁한 자극을 대신해 주었다. 공유처럼 잘 생긴 도깨비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방망이와 감투(머리에 쓰던 관)만 있으면 착한 이들에게는 복을 주고 나쁜 이들에게는 벌을 내렸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토르의 '묠리르' 못지않게 강력한 마법의 무기였던 셈이다. 어릴 적 도깨비방망이나 감투를 찾아 모험을 떠나보지 않은 어린아이가 있었을까? 나 역시 친구들과 함께 동네 뒷산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모험을 떠났더랬다. 아침밥을 먹고 뛰쳐나가 어스름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폰이 없이도 신나게 놀던 시절이었다. 덕분에 도깨비는 무섭고 괴팍한 생김새와는 달리 친근한 이미지로 기억 속에 새겨졌고, 환상과 현실의 경계 어디쯤에서 언제나 우리를 기다렸다.  


 쇠소깍의 첫인상이 그랬다. '아, 이곳이라면 도깨비가 나와 안녕이라고 인사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겠구나!' 싶은. 쇠소깍은 서귀포시 하효동에 위치한 효돈천 하구다.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하여 바닷물과 만나 깊은 웅덩이를 형성한 곳이다. 물 빛깔이 특이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영롱(玲瓏)하다는 말이 쇠소깍의 물 색깔을 지칭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왜 이런 하천에 다소 거친 느낌인 쇠소깍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제주 방언으로 ‘쇠소’는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의 연못을 말하고, ‘깍’은 마지막 끝을 말한다. 즉, 쇠소깍이란 명칭은 '누운 소 모습을 한 연못으로 하천과 바다가 연결된 지점'을 의미한다. 뭍사람에게는 낯설어도 참으로 솔직 담백한 명칭이 아닐 수 없다. 하천 양쪽으로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고 그 위로 숲이 우거져 있어 신비함은 한 층 배가된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이곳이 이토록 신비로운 풍경을 품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예전에는 기우제를 지내는 신성한 땅이라고 해서 주민들도 함부로 출입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는 올레 5코스와 6코스가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고, 신비로운 쇠소깍을 보고 싶어 하는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 서귀포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한때 제주 전통 고깃배 테우를 체험하거나 카약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자연 보존을 위해 제한되었다. 아쉽지만 아름다운 제주를 더 오래 보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했다.   

<저런 빛깔이 어떻게 가능할까? 뭍사람에게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지 않아도 신비감에 싸인 쇠소깍을 더욱 몽환적으로 만든 계기가 있었다. 태풍의 영향이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에 비밀스러운 문을 열고 마침내 한 발 디딘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공기의 밀도가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바람 끝에서 낯선 이국땅의 항구 냄새가 났다. 구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황홀한 춤을 추었다. 구름은 훌륭한 춤꾼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였다. 만약 달이 뜨는 시간이었다면 1Q84처럼 두 개의 달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시간과 공간에 균열이 생기고 다른 차원의 낯선 대기가 우리 세계로 밀려 들어왔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본능적인 행위조차 낯설었다. 그리고 눈앞에 쇠소깍 해변이 펼쳐졌다. 

<태풍이 남기고 간 선물에 한참 동안 넋이 나갔다>

 태풍 프란시스코가 제주와 한반도를 통과하리라는 뉴스가 연신 속보로 나왔다. 일분일초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제주에서 태풍이라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아침부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굵은 비가 내렸다. 꼼짝없이 하루를 집에서 보내야 할 판이었다. 날씨 요정이 두 명이나 있었는데 태풍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에너지 넘치는 아내가 가까운 박물관이라도 가자며 외출 준비를 했다. 제주의 비는 육지의 비와는 달랐다. 내리는 것이 아니라 퍼붓는 것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운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아쉽지만 집에 머물자고 했다. 아내는 비 올 때마다 집에 있으면 제주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며 엉또폭포라도 보러 가자고 채근했다. 좀이 쑤신 아이들도 아내 편을 들었다. 불편한 심기로 집을 나서는데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온통 검은 구름뿐이더니 어느새 파란 하늘이 수줍은 얼굴을 내밀었다. 아내는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위미리 집에서 가까운 쇠소깍부터 가보자고 했다. 다행히 세력이 약해진 태풍은 제주도를 비껴갔다. 태풍이 남기고 간 여운 덕분에 쇠소깍 해변은 평생 다시 보기 힘든 환상적인 풍경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수백 장 사진을 찍었지만 그날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은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컴퓨터가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그래픽을 구현한다고 해도 그날 쇠소깍 해변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절대 재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마주 보고 있는 하효항>

 쇠소깍을 나와 10분 정도 걷다 보면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마주 보고 있는 하효항이 나온다. 올레 6코스를 통과한다지만 볼거리가 많은 관광지는 아니다. 트릭아트 포토 존이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하효항을 무척 좋아했다.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조용한 하효항을 아이들과 함께 걸으면 나름 운치가 있었다. 이곳 만큼은 혼자 걸어도 좋을 성싶었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것에 행복을 느끼지만,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은가? 그런 날 하효항을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때로는 고독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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