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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20. 2021

제주 붉은 노을 맛집 판포포구

그깟 노을이 뭐라고 눈물까지 흘리나

 우리나라에는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 참 많다. 대한민국 3대 일몰 명소, 전국 10대 일몰 명소, 제주 7대 일몰 명소 등 이름도 다양하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석양(해가 질 무렵의 해)과 낙조(지는 햇빛)를 애써 찾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우리 인간은 참으로 낭만적인 존재이다. 어스름 저녁, 지는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면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그깟 붉은 노을이 뭐라고 몇몇 사람들은 감동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눈물까지 흘리곤 한다. 그저 매일 보는 하늘, 매일 보는 태양인데도 말이다. 가끔 아름다움이란 대상이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하곤 한다. 다행히 정말 소중한 것들은 공짜다. 태양, 공기, 시간 모두가 그렇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이들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인간이 만든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서 이토록 귀한 것들은 모두에게 공평하니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고 믿는다. 


 제주 서쪽 해안 역시 일몰이 아름답기로는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해질 무렵 제주 서쪽 바다에 있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이런 장관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어?'라고 작심한 석양이 파란 캔버스에 미친 듯이 그려나간 수채화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에 이끌려 정신없이 발걸음을 옮기다 다다른 곳이 바로 '판포포구'였다. 

<붉은 노을 주연, 신창리 풍력발전소는 단지 거들뿐>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다면 이미 축복받은 것이다>

 판포포구는 한경면 판포리에 있는 작은 포구로 협재 해수욕장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어민들이 포구로 사용하던 장소를 물놀이할 수 있도록 개방했는데 풍경 역시 예사롭지 않다. 이름난 해수욕장들과는 다른 정취가 느껴진다. 옥색과 에메랄드빛 바다의 조화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편의시설 (탈의실, 샤워장)은 갖추지 못했지만, 현지인과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일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스노클링 명소다. 피서철이 되면 안전요원이 상주하고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매점에서 구명조끼나 튜브 등 스노클링 장비를 구입하거나 대여할 수 있다. 물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어린아이들이 놀기에는 수심이 다소 깊기에 튜브나 구명조끼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아기 때부터 수영을 시작한 우리 아이들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판포포구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즐겼다. 나도 어린 시절 물에서 좀 놀아본 아이였는데, 제대로 수영을 배운 아이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물속에서 돌고래처럼 유영하는 아이들을 보니 은근히 셈도 났다. "열 살만 젊었어도"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걸 억지로 밀어 넣었더랬다.  

<수영실력이 없어도 마음껏 즐길 수 있지만, 수영을 잘하면 뽐내기에도 이만한 곳이 없다>

 물놀이하기에도 그만이지만 사실 이곳은 더 큰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제주에서 가장 매력적인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핫플레이스이다. 일몰이 아름답다는 공공연한 비밀로 늦은 오후가 되면 삼삼오오 모여드는 사람들로 판포포구 거리는 벌써 붐빈다. 해상풍력단지를 배경으로 수면 아래로 얼굴을 감추는 태양과 그 여운이 하늘에 뿌려놓은 붉은 기운은 이 세상 경치가 아닌 듯하다. 10분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도 황홀경에 빠져 가만히 앉아 오래도록 그 풍광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물론 약간의 당근이 필요했다. 물놀이에 지친 아이들 손에 핫도그를 하나씩 쥐여 주었다. 판포포구에서 맛난 핫도그는 아이들을 단숨에 핫도그 애호가로 만들었다. 오죽하면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핫도그를 먹으며 석양빛이 하늘에 그린 그림에 흠뻑 취해 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행복에 닿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노래했을까! 석양이 아내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아내뿐만 아니라 이곳에 오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붉은 노을 아래서 핫도그 하나만 먹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그거면 됐다.>

 판포포구 석양 앞에서 행복이란 참으로 소박한 것임을 깨달았다. 40대의 터널을 지나고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삶에 대해, 행복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성공, 돈, 건강 중요하지 않은 건 하나도 없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 고민하다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판포포구 석양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감동을 선사할 리 없다. 핫도그 역시 마찬가지다. 마침 비 온 후라 날씨가 쾌청했더랬다. 초원에 놀러 나온 한 무리의 양 떼처럼 아기자기한 구름이 하늘을 놀이터 삼아 마음껏 뛰어다녔다. 미지근한 제주의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일렁이는 바다는 숨죽여 이 모두 관경을 지켜보았다. 그때 붉은 하늘을 보는 눈에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내 행복의 반경은 사랑하는 가족과 바닷가에서 일몰을 감상하며 맛있는 핫도그를 한 입 베어 무는 정도로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파랑새를 찾아 모험을 떠난 남매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파랑새를 발견한 곳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집이었다. 허상(虛想)을 좇아 헤매는 삶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이날 먹은 핫도그는 짭조름했고 석양빛은 유난히 붉었다. 혹여 아이들이 볼까 얼른 눈물을 닦았다. 석양 맛집 판포포구에서 큰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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