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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20. 2021

소금 빌레 위의 산책 구엄리 돌염전

제주 자전거 일주를 꿈꾸다

<찰흙으로 만든 길을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으며 걸어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그때는 누구나 그랬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아이 걸음으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입학식 날 어머니 손을 잡고 딱 한번 학교에 함께 간 이후로는 쭉 혼자 걸어갔다. 중학교도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를 지나 한참 더 가야 했다. 빨라진 걸음걸이 덕분인지 한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했다. 물론 국민학생 때처럼 이곳저곳 한눈팔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는 천천히 걸어가면 15분, 급하게 뛰어가면 8분 거리에 있었다. 당시 7시까지 등교였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 6시 50분에 일어나도 7시면 학교에 도착했다. 거리상으로는 중학교가 가장 멀리 있었다. 걸어 다니기에는 꽤나 먼 거리였다. 물론 처음부터 걸어 다닌 건 아니었다. 어머니가 회수권 사라고 준 용돈을 꼬박 1년 동안 모아 중고 자전거를 장만했다. 한 학기는 자전거 덕분에 등·하굣길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아침에 눈뜨면 학교에 가고 싶어 몸이 들썩거렸다. 그런데 별로 좋지도 않은 자전거를 누군가 홀랑 훔쳐가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수업을 마치고 자전거 보관대에 갔는데 아침에 세워둔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한 달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학교 근처를 샅샅이 뒤졌다. 저 멀리 비슷한 자전거가 보이면 숨도 쉬지 않고 달려갔다. 꼭 찾고 말리라는 희망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시 돈을 모으려고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국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새 자전거를 장만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 중학교 때 잃어버린 자전거가 생각났다. 내 인생의 첫 자전거는 아직도 이 세상 어딘가를 달리고 있을까? 매일 아내가 태워주는 편안한 차로 등하교하는 아이들은 이런 아련함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그래서인지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하고픈 바람이 있었다. 첫째 아이가 6학년이 되었을 때 첫 거리 라이딩에 도전했다. 집에서 에버랜드까지 왕복 두 시간 거리였다. 단지 내에서는 두 손 놓고 타던 아이도 첫 거리 라이딩에서는 무척이나 긴장했다. 뒤따르던 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 사고 없이 집에 도착하자 아이는 거리 라이딩에 자신감을 가졌고 그때 졸업 기념으로 단 둘이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약속했더랬다. 그 약속은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못했다. 코로나로 소중한 일상을 빼앗긴 탓이었다. 


 제주에는 교통량이 적은 해안도로와 일주도로를 따라 자전거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름도 '제주 환상 자전거길'이다. 첫째 아이와 제주도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로 한 이유도 이 길 때문이었다. 천혜의 아름다운 섬 제주의 해안을 따라가는 길인 만큼 환상적이라는 이름이 무척 잘 어울린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은 김녕 성세기 해변, 함덕 서우봉 해변, 표선 해변 등 아름다운 해변과 쇠소깍, 성산일출봉, 송악산 등 제주도가 자랑하는 풍경들을 두루 경유한다. 특히 일부 해안도로 구간은 바다와 매우 인접해 있어 육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라이딩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주행하면 좀 더 수월하게 자전거 여행을 즐길 수 있단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은 총 10개 구간으로 길이는 약 234km에 달하고 1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제주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바람을 온전히 느끼려면 적어도 3박 4일 일정으로 계획하는 것이 좋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 코스  안내, 자전거 행복 나눔 홈페이지 참고 http://www.bike.go.kr>

 아름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애월 해안도로 구간도 자전거길의 일부다. 이 길을 가다 보면 구엄포구 근처에서 이국적인 제주의 풍경에서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색다른 풍광과 마주하게 된다. ‘소금 빌레’라고 하는 것이다. 벌레가 아니고 빌레가 맞다. 빌레는 제주방언으로 너럭바위(널따랗고 평평한 큰 돌)를 뜻한다. 이곳이 구엄리 소금밭으로 옛 주민들이 소금을 만들기 위해 돌염전으로 사용했던 평평한 천연 암반지대다. 


 소금 빌레에는 거북 등처럼 틈이 나 있는데 그 틈을 따라 찰흙으로 둑이 쌓여있다. 이곳에 고인 바닷물이 햇볕에 마르면 소금을 얻는 방식이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명종 14년(1559년) 부임한 제주목사가 이곳 주민들에게 소금 생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이후 1950년대까지 소금을 생산했고, 그 양이 약 17톤에 달했다고 하니 결코 적지 않은 양이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소금밭은 큰 딸에게만 상속하는 풍속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고된 노동이 고스란히 여성의 몫이었던 제주의 오랜 생활환경이 이런 풍속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현재는 소금을 생산하지 않고 2009년 돌염전 일부를 관광자원으로 복원해 옛 제주의 소금 만드는 전통을 소개하고 있다.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안내판 몇 개로 돌염전의 유래나 소금 만드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지만, 관광객의 발길을 잡아끌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다른 관광지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였다. 현재 구엄리 돌염전은 거북이 등딱지 같은 검은 바위와 찰흙으로 만든 작은 둑이 전부이다. 대부분 관광객은 잠깐 차에서 내려 독특한 경치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 찍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은 구엄리 돌염전의 존재조차 모른다. 우리도 그랬으니까. 아름다운 해안길을 따라 드라이브하다가 우연히 만나는 경우가 더 많다. 소중한 제주 전통의 일부가 지워져 버린 듯해 안타까웠다. 그럴듯한 관광지로 개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역사를 복원하고 스토리 텔링을 더해 옛 제주의 모습과 만나게 된다면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제주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다.  


 구엄리 돌염전은 우리 가족에게 추억이 담긴 장소가 되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검은색 너럭바위가 전부인 장소일 수도 있다. 제주 구석구석이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공간일 필요는 없다. 각자 방식 대로, 관심 가는 대로 여행을 즐기면 그만이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 이야기가 태어나고 그 이야기가 추억으로 가슴에 남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이유가 아닐까?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더운 줄도 모르고 비틀비틀대며 간신히 균형을 잡고 걸었던 구엄리 돌염전에 다시 가고픈 이유는 그곳에 '이야기'를 두고 왔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찾으려면 다시 한번 거북이 등 위로 난 좁은 길을 뒤뚱뒤뚱 걸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찾게 되리라. "기억나? 우리 그때 여기서 엄청 신나게 뛰어다녔잖아!"  

 

 첫째 아이와의 제주 자전거 여행에 동참하려고 둘째 아이도 거리 라이딩을 맹연습 중이다. 아내도 근사한 새 자전거를 장만했다. 아직 탄천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는 수준이지만, 제주의 해안길을 달리겠다는 의지는 '투르 드 프랑스' 참가 선수 못지않다. 운동 능력과 허벅지 굵기만 보면 우리 가족 중에 라이딩에 가장 최적화된 신체를 가졌다. 언제부턴가 한라산이나 설악산을 오를 때 아빠가 가장 뒤처졌다. '산에 오를 때는 가족도 남이다'라는 다소 황당한 신념을 가진 아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언제나 가장 먼저 오른다. 밀어주고 손잡아 주어야 겨우 오르던 아이들도 이제는 저만치 앞서간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만, 자전거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35년 라이딩 경력이 부끄럽지 않도록 틈틈이 준비해야 한다. 내년 봄, 온 가족이 함께 아름다운 제주의 해안길을 달릴 때 뒤처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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