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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20. 2021

미지의 세계와의 만남, 용머리 해안

과거로 떠나는 시간 여행

 제주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최남단 섬이라는 지정학적 이유로 역사적으로 많은 풍파와 시련을 겪었다. 삼별초 항쟁부터 몽골제국의 지배, 조선시대 감귤 진상과 4·3 사건에 이르기까지 제주인이 겪은 고통은 뭍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가 하면 같은 이유에서 제주만의 독특한 신화와 풍부한 전설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제주도와 한라산을 만든 여신 설문대 할망부터 당신(堂神)의 어머니 백주또, 사랑을 쟁취한 농경신 자청비 등 신적 존재이지만 이웃처럼 친근한 신들의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오래도록 집을 비우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남편을 대신해 집안팎 살림과 육아를 오롯이 혼자 힘으로 감당해야 했던 여성들의 고단한 삶 때문에 제주에는 유독 여신에 관한 신화가 많다. 신화와 전설은 제주 곳곳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고된 현실을 위로받고 싶은 옛 제주인의 바람을 짐작하게 해 준다. 


 제주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용머리 해안'도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 중의 하나다. 이곳의 전설은 가슴이 아린다. 중국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만리장성까지 쌓았지만, 이웃 나라에 새로운 제왕이 나타날까 봐 늘 노심초사했다. 힘으로 흥한 이는 힘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항상 천기를 살펴보며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지리서를 펼쳐 놓고 보니 저 멀리 남방국 제주의 지세가 심상치 않았다. 곳곳에 혈(穴)이 있어 영웅이 쉴 새 없이 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먼저 손을 써야겠다고 판단한 진시황은 풍수사 호종단을 시켜 제주의 혈을 끊으라고 지시를 내렸다. 제주에 도착한 호종단은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 살펴보고 먼저 용의 꼬리 부분을 한칼로 끊고, 이어서 잔등이 부분을 두 번 끊어 버렸다. 그러자 바위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산방산이 며칠 동안 울었다. 결국 진시황의 명을 받은 호종단이 제주의 혈을 끊어 제주도에 왕(영웅)이 태어나지 못했다. 농사짓기에 척박한 땅과 억척스러운 날씨로 옛 제주인에게 그들의 터전은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된 노동과 중앙 정부에 진상해야 하는 감귤의 부담, 섬 밖으로 함부로 나갈 수 없는 답답한 처지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왕(영웅)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이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에 깃들어 있다.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은 생성된 시기가 다르니 전설은 다만 옛날이야기에 머물지만, 그 이야기 속에 남겨진 옛 제주인의 눈물은 결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중생대로의 시간 여행, 정말 공룡 한 마리 지나가도 이상하지 않겠다>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를 닮은 용머리 해안은 산방산 자락에서 해안가로 뻗어 나가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생성된 시기가 다르다고는 하나 멀리서 보면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정말 뚝 잘린 것처럼 보인다. 용머리 해안은 밖에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좁은 통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비로소 용머리 해안의 진면목을 만나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전혀 다른 세상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눈이 확 떠지고 정신이 번쩍 든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공룡시대로 날아온 듯한 기분이 든다. 당장 공룡 몇 마리가 뛰어다녀도 조금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세계가 눈앞에 짜릿하게 펼쳐진다. 지질학적으로 용머리 해얀은 180만 년 전 수중폭발로 탄생한 화산력 응회암층이다.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에 태어났기에 공룡이 지구를 누비던 중생대와는 어마어마한 시간 차이가 난다. 그래도 왠지 걷다 보면 공룡 발자국 서너 개쯤은 쉽게 발견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용머리 해안은 총 600미터 정도 거리로 높이 20미터 사암층과 지질학 교과서에 나오는 풍화혈, 돌개구멍, 해식동굴 등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낸 이색적인 경관을 두루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풍화혈은 오랜 풍화작용을 받은 암석의 표면에 형성되는 요형(凹型)을 말하고, 돌개구멍은 암반의 오목한 곳이나 깨진 곳에 와류(渦流)가 생기면, 그 에너지에 의해 원통형의 깊은 구멍이 생겨난 것을 말한다. 해식동굴은 차별침식작용으로 발달하는 동굴의 일종이다. '자연을 즐기고 느껴봐!'라는 주문에 언제나 시큰둥한 아이들도 이곳에서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키지 않아도 사암층 암벽이나 해식애(바닷물의 침식 작용과 풍화 작용으로 생긴 절벽)를 유심히 관찰했다. 때론 넓고 때론 좁다란 바윗길을 따라 걷는 재미도 있어 30분이면 둘러보는 코스를 두 시간 넘게 즐겼다. 게다가 코스 중간에 해녀 할망이 좌판에 깔아 놓은 싱싱한 해삼과 멍게, 문어숙회도 맛보았다. 특히 문어숙회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 놓은 풍경에 흠뻑 빠진 아이들>
<미국에 있는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느낀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감에 견줄만하다.>

 용머리 해안을 둘러보고 나오면 그 길 끝에 큰 범선 하나가 정박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하멜 표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선원 핸드릭 하멜이 타고 온 스페르베르(네덜란드어로 새매)호를 재현했다. 2003년 하멜 표착 350주년을 맞아 하멜 기념관으로 꾸며 놓은 것이다. 그러나 1653년 8월 16일, 낯선 이방인이 이곳에 난파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용머리 해안이 하멜이 도착한 곳이라는 주장은 이 부근에서 발굴된 네덜란드인의 유골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주 목사를 지낸 이익태의 <서양국 표인기>에는 서양인 핸드릭 얌센 등 64명이 함께 탄 배가 대정현 차귀진(지금의 모슬포 부근) 해변에 부서졌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최근에는 후자가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새다. 하멜과 그의 일행은 조선에서 머무는 13년 동안 대부분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고된 노역에 시달리기도 하고 주민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비슷한 경로로 조선에 표착해 귀화한 네덜란드인 박연과 달리 귀화 의사가 없던 하멜 일행은 결국 탈출에 성공해 일본에 도착한다. 하멜이 13년간 조선에서 겪은 일을 상세하게 기록한 <하멜 보고서>는 책으로 출판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어판, 독일어판, 영어판까지 속속 출간될 정도였다. 이로써 동양에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유럽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하멜 보고서>는 조선 역사상 외국인이 쓴 최초의 조선견문록이 되었다. 370여 년이 지난 지금 제주는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여행지가 되었으니 하멜도 이 사실을 알면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용머리 해안은 어른 걸음으로 30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곳도 마치 경주하듯 빠른 걸음으로 이동한다. 여행이 누리는 무엇이 아니라, 수행해야 하는 과제처럼 느껴졌다. 바쁜 일상에 지쳐 떠난 여행지에서조차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제주의 모든 장소가 그렇지만 용머리 해안은 오랜 시간과 자연이 합작해 만든 위대한 창조물이다. 미국의 아치스 국립공원이나 옐로 스톤 못지않게 자연의 경이로움을 선사해 준다. 용머리 해안을 둘러보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미끄럽지 않은 신발과 여유다. 준비물만 잘 챙긴다면 용머리 해안은 당신이 상상한 것 이상을 보여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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