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독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1월 3일, 무라카미 하루키와 영화 이디오크러시

by 조이홍

지난해 마지막 글 몇 편을 '책 읽기', 정확히는 책 읽기 독려, 와 관련된 소재로 글을 썼더니 아내 심기가 영 불편해 보였다. 너~~무 '잘난 척' 하는 것 아니냐는 눈치다. 그럼 독자들이 싫어한다고, 나보다 더 독자를 신경 쓴다. 브런치 작가 소개란에 '세상에는 이 필요하다고 믿는 조이홍입니다. 남편은 쓰고 아내는 그리는 부부 그림 작가를 꿈꿉니다. , 일상, 환경, 그리고 궁금한 세상을 글로 씁니다.'라며 무려 세 번이나 '책'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에 비해 오히려 책 이야기가 너무 없지 않나 생각했는데, 아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실 내 글쓰기의 영원한 뮤즈는 아내다. 아내 덕분에 오늘도 '무쓸모의 쓸모'를 쓰고 있지 않은가!)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부모님 몰래 오락실에 가고, 만화방에 들락날락거렸을망정 책을 가까이하지는 않았더랬다. 그래도 '이야기'는 무척 좋아해서 중학교 때부터 부지런히 동시 상영관을 찾아 80년대를 풍미했던 '홍콩영화'란 영화는 모두 섭렵했다. 책이라고 하면 당시 아이들은 잘 읽지 않던 교과서에 나온 '단편 소설', 예를 들어 봄봄, 동백꽃,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메밀꽃 필 무렵, 소나기 등등을 찾아 전문을 읽는 정도였다. 가끔 대학생 누나가 읽던 책들, 예를 들어 <유리알 유희>나 <사랑의 기술>, <짜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호기심에 읽어보긴 했지만, 당최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없어 몇 장 넘기지도 못하고 포기했다. 그래서인지 고등학생 때 잠시, 그리고 유일하게, 가졌던 꿈의 1순위가 영화감독, 2순위가 소설가였나 보다.


본격적인 독서는 대학교 시절부터 시작했고 이후 회사에 다니면서 책과 가까이하기는 했지만, 몇몇 브런치 작가님처럼 일 년에 100권, 200권 읽는 정도는 아니고 고작 3~40권 읽는 게 전부였다. 지극히 평균적인 독서량일 터였다. 그런 내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나 '전국독서인연합', '전국민독서장려운동본부'에서 PPL이나 뒷 광고를 받은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책책책' 하나 싶었다. 내가 뭐라고…. (뒤에 두 단체는 실제로 있는 단체인지 잘 모르겠다)

일인칭단수.jpg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해외 소설가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테지만, 'No Japan' 운동 이후 왠지 잘 손이 가지 않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작 <일인칭 단수>를 새해 첫 책으로 읽었다. 지극히 하루키적인 문장에 하루키적인 소설이다 싶었는데 (처음에는 에세이인 줄 착각했다) 어떤 문장이 유독 눈에 걸렸다.


나는 '독서가'란 소리를 들을 만큼 체계적으로 치밀하게 책을 읽어온 사람은
아니지만, 활자를 읽지 않고는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는 부류에 속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딱 요만큼 책과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하루키는 (소설에서 ) 책이 없으면 전화번호부도 읽고 스팀다리미 설명서도 읽는다고 했지만 확실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뭐, 호기심에 전화번호부를 한 번 쭉 훑어본 경험도 있고, 즐겨 먹던 과자 봉지 뒷면 제품 설명서도 가끔 읽었지만 말이다. 그저 뭔가를 읽지 않고 있기란 불가능했고 그때 마침 '책'이 있었을 뿐이다. 만약 그때 그 시절에 '스마트폰'이란 게 등장했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난 좀 얼치기 독서가일 뿐일 테지만, 이런 나라도 마음에 들었다.


이디오크러시(Idiocracy)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2500년 미래 사회를 그린 영화로 바보(Idiot)와 민주주의(Democracy)라는 두 단어의 합성에서 직감할 수 있듯이 '바보'로 진화한 인류를 풍자한 B급 영화다. 똑똑한 사람은 과도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죽도록 일만 하다 보니 아이를 낳을 시간조차 없어 결국 인류는 멍청이 천국이 된다는 세계관을 가졌다. 수백 년간 동면 상태로 있던 평범한 인간 '조 바우어'가 깨어나 당당히 IQ 1등으로 대통령이 되면서 겪는 우여곡절을 코믹하게 그렸다. 영화 결말부에 조 바우어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동료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과거로 돌아가면 사람들에게 꼭 말해줘.
학교에 다니라고! 책을 읽으라고! 제발 머리를 쓰라고!”


그저 영화 내용일 뿐이다. 설마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여전히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은 책을 사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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