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유아용 치실은 두 번 써도 될 텐데.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어린 시절, 그러니까 아직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세상 즐거웠던 어린 나는 딱 한 번 치과 치료를 받았더랬다. 여기서 '한번'이란 1회의 의미는 아니었다. 두세 개 썩은 이 치료가 끝날 때까지 네댓 차례 치과를 들락거려야 했다. 지옥 같은, 그 당시에는 정말 그랬다, 치과에 가지 않으려고 대문을 붙잡고 대성통곡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날카로운 송곳이 충치를 파고들 때 고통이란 당시 내가 알던 단어들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끔찍한 고통을 익히 알기에 내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실에 앉아 있을 때 들리는 날카로운 기계음이란…,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리는 격이었다. 한 번은 내 바로 앞 순서에서 치료받던 내 또래 아이 하나가 무슨 사고라도 생겼는지 입에서 피가 나고 치과가 한바탕 난리 났다. 어린 나는 안은 채 기절했고, 엄마는 그날 치료를 포기하고 기절한 나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기억 덕분에 국민학교에 입학한 이후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양치질하는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었다. 적어도 이가 썩어 그토록 무시무시한 치과에 갈 일은 만들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새나라의 어린이도 고등학생이 되었다. 당시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은 웬일인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라!' 따위의 말보다 '하루에 세 번 양치질하는 문화인이 돼라!'라는 훈화를 더 자주 했다. 자연스럽게 점심시간 끝나기 10분 전이면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삼삼오오 수돗가에 모여 양치질을 했다. 양치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깨달았던 나 역시 당연히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루에 세 번 양치질하는 온전한 '문화인'이 되었다. 충치가 생겨 치과 치료를 받는다고? 그건 21세기를 살아갈 문화인이 아니지! 진정한 X세대라면 하루에 양치질 세 번은 기본이잖아!
아내와 결혼하고 나서 받은 '문화적 충격'이 여럿 있었다. 분명히 아내와 나는 동시대인이었는데 마치 구석기시대 사람과 철기 시대 사람이 만난 것처럼 무척이나 달랐다. 그중 하나가 바로 '치실'이었다. 아내는 하루 세 번 양치질에 더해 '치실'이라는 걸 사용했다. 치실이라니! 태어나 처음 보는 문명의 이기(利器)였다. 마치 콜라병을 처음 본 부시맨처럼 치실 앞에 선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아내가 몇 번이나 사용 방법을 알려주었지만 왠지 나에게는 치실 사용이 어려웠다. 치실 잡는 법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왼손잡이어서 그런가? 결국 열댓 번 몸소 시범을 보여주던 아내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남편의 치실 사용을 포기해 버렸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영구치가 돋아나기 시작하면서 유아용 치실인 플랙커스(Plackers)가 언제나 화장실 선반 한편을 차지했다. 치실과는 영 인연이 없어 쳐다보지도 않다가 두세 해 전부터 나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사용하는 성인 치실과 다르게 손잡이 부분이 있는 유아용 치실은 내게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워낙 양치를 꼼꼼히 하던 새나라의 어린이 출신이라 그런지 유아용 치실을 사용하더라도 위쪽 어금니 주위에 1~2회 정도 사용하는 게 전부였다. 보통 치실이라면 그냥 버릴 테지만, 손잡이가 달려 있어 그런지 유아용 치실은 한 번 쓰고 버리기 아까웠다. 자연스럽게 화장실 선반에 올려두고 다음에 써야지 했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찾아보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20년 동안 동고동락한 아내가 귀신 같이 남편 의도를 알아채고는 버린 탓이었다.
아내가 인스타그램을 보고 저녁 식탁에 올린 근사하고 이국적인, 게다가 드물게 맛도 좋았던, '돼지고기 배추찜'을 먹고 양치질을 두 번이나 했는데 딱 그 자리, 위쪽 어금니에 고기 찌꺼기가 끼었다. 며칠 전에 쓰고 보관해 놓은 유아용 치실을 찾았는데 역시나 자리에 없었다. 정말 한 번 쓰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사랑하는 아내를 어떻게 설득할지 잠 못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