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레이먼드 챈들러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쓰기
어젯밤에는 달이 무척이나 예뻤다. 노란 손톱 같은 달에 자꾸만 눈이 가서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브런치에서 소통하는 Lisa 작가님이 레이먼드 챈들러의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를 추천해 주었다.
레이먼드 챈들러?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필립 말로'라는 탐정을 주인공으로 일군의 하드 보일드 탐정소설을 쓴 작가였다.
(할리우드에서 각본가로도 활약했다)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작가, 내 스타의 스타인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이 책은 그가 친구, 출판 관계자, 때로는 독자에게 쓴 편지를 엮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의 몇몇 대목 때문에 어제는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나는 영감을 기다리는 편입니다. 생명력을 지닌 글은 모두 가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전업 작가라면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말 것."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야기한 '챈들러의 (글쓰기) 방식'이다. 가슴에서 글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는데 결국 글은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다. 하하하! 게다가 글을 쓰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읽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 책은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이 대목 역시 글을 쓰지 못하게 손을 꽁꽁 묶어버렸다. 특히 '무쓸모의 쓸모'에 쓰는 글들은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지극히 이기적인 글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뱉어 내는 곳이니까. 그런데 이 글을 읽으니까 뜨끔했다. 독자가 읽고 싶어 하지 않는 글이 과연 글일까?라는 아주 본질적인 문제와 직면했다고나 할까?
"스스로 터득할 수 없는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배움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이 대목을 읽을 때도 멈칫했다. 이 글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독자에게 챈들러가 해준 조언이다. 물론 그는 '분석'과 '모방'을 통해 수없이 써보기를 함께 조언했다. 그 자신이 그렇게 글을 썼던 것처럼. 레이먼드 챈들러에게 '플롯'은 만드는 게 아니었다. 수없는 반복을 통해 '자라나는' 것이었다.
"글의 특색이란 작가의 감정과 통찰의 본질에 따른 산물이다."
결국 글이라는 건 작가(쓰는 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대상에 대한 감정을 종이(컴퓨터)에 옮기는 행위이다. 출발이 시원치 않으면 옮기는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오죽하면 챈들러가 '글쓰기 기술에 집착하는 것은 빈약한 재능이나 재능이 전혀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을까? 다시 출발점에 선 기분이다.
세상(대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소설이 안 써져서 고생했다는 경험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내 생각에는,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고역으로서 소설을 쓴다는 사고방식에 나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한 대목이다. 하루키에게 소설은 퐁퐁 샘솟듯 쓰는 것이고, 챈들러에게 글은 가슴에서 나온다. 왠지 두 사람은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일이 여전히 즐겁지만,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다. 아직 나에게는 누군가가 '특별한 힘'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딱히 누군가를 위해 소설을 쓴다는 의식이 내게는 애초에 없었고,
지금도 딱히 없습니다. 나를 위해서 쓴다, 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적으로 나 자신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만 의식하면서 썼습니다. 아울러 거기에는 아마 자기 치유적인 의미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 써야 할까? 생각하게 된 시점에서 이 대목을 일부러 찾아 읽었다. '청소년 성장 소설' 쓸 때는 정말 즐겁고 기분 좋았다. 가슴에서 플롯이 나왔는지, 퐁퐁 샘솟듯 써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쓴 글에 무척이나 재미있어했다. 뭐,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아닌가! 조금 무책임하지만 계속 기분 좋게 써볼까 한다. 누군가, 언젠가 그 '특별한 힘'을 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