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사라다와 나박김치 평행 이론
아내가 빛깔 고운 과일이며 야채를 다듬었다. 사각사각, 싹둑싹둑 경쾌하게 칼질하는 소리가 루빈스타인의 피아노 연주로 듣는 슈만의 <카니발>처럼 들렸다. 완벽한 하모니가 듣기에 참 좋았다. 이쯤 되면 어떤 요리를 만드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오랜만이다.
사실 '샐러드(salad)'가 올바른 표기이지만, 각종 과일(사과, 감, 귤, 건포도)과 야채(양배추, 파프리카, 옥수수)를 주재료로 해 마요네즈로 한껏 맛을 낸 요리에는 왠지 '사라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다. 최근 '덕선 엄마'라는 별명을 새로 갖게 된 아내는 음식 만들 때 손이 유독 컸다. 우리 가족 한두 끼 먹을 정도 양이면 충분한데 늘 그 이상으로 푸짐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커다란 용기 한가득 행복이 넘쳐났다.
어린 시절 내게 사라다는 '부의 상징' 같은 음식이었다. 집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잔칫집, 특히 결혼식장에 가야만 먹을 수 있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부모님 따라다니는 걸 극도로 피했지만, 왠지 결혼식장만큼은 매번 따라나섰다. 그 이유 중 팔 할은 사라다였다.
손 큰 아내 덕분에 매번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몇몇 독자분들은 이미 잘 알터, 나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얻고 미각을 잃었다. 아내가 만든 음식이 아내를 포함해 아이들에게도 맛있을 때는 모두가 행복했다. 그 반대 경우라면 행복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만든 사라다는, 대부분이 그렇듯이, 후자에 속했다. 모두 딱 한 입씩만 먹고 그 이후로 손도 대지 않았다. 엄마 음식에 언제나 냉정한 둘째 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제법 인간의 도(道)를 깨우친 첫째 아이까지 그랬다. 그럼 남은 음식은 오롯이 아빠 몫이 되었다. 아까워서가 아니라 정말 맛있어서 사라다는 내 차지가 되었다. 밥 먹을 때마다 방 공기에 한가득 담아 맛있게 먹었다. 늦은 밤 출출할 때 야식으로도 먹었다.
국민학교 4학년 실과 시간에 나박김치를 만들었더랬다. 나박김치는 당근, 무, 사과, 배, 배추 등을 예쁘게 썰어 만든 물김치의 일종이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가 만든 나박김치를 부모님께 선물로 드릴 예정이니 장난치지 말고 성의껏 만들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셨다. 고맘때 아이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 말을 새겨듣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대충 썬 재료에 야리꾸리한 맛을 내는 정체불명의 나박김치가 만들어지는 건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도저히 부모님께 보낼 수 없는 음식, 아니 무엇이었다. 통상 나박김치라 불리는 그 물건은 커다란 항아리에 가득 담긴 채 교실 뒤편에 앙증맞게 자리를 잡았다. 각 분단마다 하나씩 무려 네 항아리나!
다음 날부터 우리는 점심시간마다 나박김치를 도시락 뚜껑에 한가득 담아 먹어야 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도,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도 예외가 없었다. 모두 공평하게 하루에 한 그릇씩. 당시 비위가 무척이나 약한 나로서는 나박김치 먹기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힘들었다. 고역도 그런 고역이 없었다. 11년 사는 동안 점심시간이 기다려지지 않은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4교시 끝나면 점심시간 없이 바로 5교시가 이어지기를 바랄 정도였다. 간절히. 물론 그런 기적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커다란 항아리에 담긴 나박김치를 모두 비우는 데는 한 달하고도 며칠이나 걸렸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한 달이었으리라.
아내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 사라다를 덜어 먹을 때마다 자꾸 그때 점심시간이, 야리꾸리한 맛을 내던 나박김치가 떠올랐다. 하지만 정말 이상했다. 공통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말이다. 왜 그랬을까? 아내가 만들어 준 사라다는 세상 맛있는 걸. 오늘 밤에도 맛있는 사라다를 안주 삼아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셔야겠다. 역시 겨울밤에는 시원한 맥주에 사라다만 한 안주도 없지 않은가!
(이미지 출처 : Pixabay, 아내가 만든 음식으로 올리고 싶었지만 아내는 허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