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자신을 칭찬해야 할 때가 있다

1월 17일, 에코의 <젊은 소설가의 고백>을 읽고

by 조이홍
젊은소설가의고백.jpg

우연히 움베르트 에코의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일흔 살 넘어서 쓴 책의 제목에 젊은 소설가라니?

궁금했다.

움베르트 에코는 1932년에 태어났다.

언어학자, 기호학자로 학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다 우리 나이로 49세가 되는 1980년에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을 출판했다.

<젊은 소설가의 고백>은 그가 <장미의 이름> 이후 네 편의 소설을 더 출판하고 쓴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스스로를 '매우 젊고 전도유망한 소설가'라고 소개했다.

앞으로도 50년 동안 훨씬 더 많은 책을 써 내려갈 사람이라고.

그걸 보고 책 제목에 왜 '젊은 소설가'라고 이름 붙였는지 이해되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꿈은 50년까지 가지 못했다. 2016년 우리 곁을 떠났으니...)

이 책은 "나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몇 마디 할 만큼은 경험을 쌓았다고 믿는다"라고 밝힌 것처럼

움베르트 에코의 '글쓰기(소설) 방식'에 관한 고백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움베르트 에코는 세계적인 석학이자 20세기 기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중 하나였다.

(이련 표현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 불렸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부터 보르헤스와 제임스 조이스를 거쳐 디지털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지식을 갖췄고, 엄청난 독서가로도 유명했다.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까지 통달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움베르트 에코는 천재였다.


움베르트 에코에게 창조적 '영감'이란 약삭빠른 작가들이 예술적으로 추앙받기 위해 하는 나쁜 말일뿐이다.

그에게 소설이란 '언어의 조합'이 아니라 작가가 창조하는 '우주'다.

소설을 쓰기 전 작가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로 꼼꼼하게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수도사를 모두 초상화로 그렸다.

작품 도입부에 나오는 수도원 도면도 직접 그렸다. (그는 중세 미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다.

<전날의 섬>을 쓸 때는 배의 구조를 공부했고, <푸코의 진자>를 쓸 때는 소설 속 사건들이 벌어졌던

'기술공예박물관' 통로를 며칠이나 돌아다녔단다.

파리의 거리가 등장하는 장면을 쓰기 위해 며칠 밤을 그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우주)를 설계하기 위해 밀리미터 단위까지 계산했다.


글쓰기 관련 책은 언제나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렇다 보니 재미로 읽기보다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자세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는 조금 달랐다.

왠지 어깨가 으쓱했다.

얼마 전 쓴 소설을 에코의 방법론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썼기 때문이다.

작품이 전개되는 약 한 달여간을 하나의 달력으로 만들어 기록했다.

무대가 되는 섬(무인도)을 직접 스케치했다. 잘 그리지는 못했지만.

등장인물이 입고 있는 옷, 소지품 하나하나를 빠지지 않고 기록했고,

매일매일 무얼 먹었는지 기록했다.

이 모든 내용이 소설에 표현되지는 않지만 왠지 그렇게 해두어야만 할 것 같았다.

소설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기에 적어도 작가는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작가가 명쾌한 서사의 세계를 설계했다면 다음으로 글이 따라온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에코가 한 이 말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완전한 세계를 설계할수록 등장인물들이 그 세계에서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스스로 행동했다.

그럼 정말 글은 따라왔다.

물론 A4 백 장이 넘는 페이지 중에 그런 페이지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천재 작가가 한 말에 공감이 가다니….

나 쫌 대단하다 싶었다.


가끔 자신을 칭찬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날이 있다.

돈도 들지 않는 데 기왕이면 실컷 칭찬해주자!

이렇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주식 투자로 6개월에 1억 만드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