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글을 써야 한다.

1월 18일, 요행(뜻밖에 얻는 행운)

by 조이홍

독자가 기다리는 글을 써야 한다.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써야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손바닥만 한 해적판으로 나오던 '드래곤 볼'을 오매불망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던가!

그런 글을 써야 한다.


"어? 1월 18일인데 조이홍 작가의 무쓸모의 쓸모는 왜 안 올라오지? 벌써 밤 11시가 다 돼 가는데?"

"오늘은 또 어떤 수다를 떨지 궁금한 걸…."


단 한 사람도 이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매일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대중적인 취향을 반영하지 않는 예술은 있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고,

움베르트 에코는 "나는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쓰는 나쁜 작가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는다. 자기만족적인 작가들이 쓰는 글은 쇼핑 목록과 같다"라고 경계하지 않았던가!


나는 거창하게 예술하고 있다고 말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쇼핑 목록을 적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내가 쓴 텍스트는 '발행'이라는 단추를 클릭한 순간 내 손을 떠난다.

해석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고, 작가는 거기에 절대 간섭할 수 없다.

변명도 변호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개똥 밭에서도 황금을 보는 심미안을 지닌 독자가 덜 영근 내 글을 읽어 주기를.

내가 써 놓은 서툰 몇 글자의 단어가 아니라 내가 써 놓지 않은 삶의 진중한 의미들을 발견해 주기를.

때로는 어설픈 복선을 반전의 반전을 위한 의도된 문학적 장치였다고 인정해 주기를.

내가 가진 재능보다 내가 모르는 재능이 더 많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를.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을 모른다."라고 삶의 역설을 한탄했다.

같은 조 씨 성을 가진 조이홍은 이렇게 한탄한다. "글감이 있는 날에는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날에는 글감이 없다."


그래도 결국은 독자다.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써야 한다.

챈들러와 에코를 감히 누가 이길 수 있는가!


오늘 '무쓸모의 쓸모'에 내 나름의 이중코드(유머코드)를 심었다.

한 분의 독자라도 웃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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