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제주에 머물면서 생필품이나 가공식품 구입은 주로 이마트를 이용했다. 대형마트는 절대 가지 말아야지 다짐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주에서는 가급적 전통시장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게 쉽지가 않았다. 솔직히 대형마트가 편하고 품목도 다양했다. 그리고 익숙했다. 물론 양파, 두부, 당근 같은 기본 식재료는 한살림이 신선하고 질도 좋아 주로 그곳을 이용했다. 특히 제주 두부는 담백하고 더 고소해 큐가 아침마다 별다른 양념 없이 반찬으로 먹기도 했다. 나도 두부를 좋아해 여기저기서 많이 먹어 보았지만 제주 두부는 그 맛이 정말 최고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작 전통시장은 갈 일이 별로 없었다. 주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나 특별한 군것질거리가 생각날 때만 갔다. 특히 하루 종일 해수욕을 하다 들어오거나 많이 걸은 날에는 아내도 저녁식사 준비가 부담되기 때문에 이런 날 들르기에 좋았다. 우리 가족은 식사 메뉴를 정할 때마다 (먹고 싶은 메뉴가 각기 달라) 한바탕 난리를 치러야 했기 때문에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전통시장이 최고의 장소였다.
이번에 처음 가본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우리에겐 낯선 곳이었지만 대부분 관광객들에게는 너무 유명한 곳이었다. 매일매일 많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특히 방송에 출연해 유명세를 탄 음식점들은 거리가 막힐 만큼 사람들로 붐볐다. 식당에서 밥 먹기 위해 줄 서는 것을 지독히 싫어하는 우리 가족은 이런 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나간다. 미디어에 소개되고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해서 그 식당 음식이 우리 가족 입맛에도 맛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물론 대부분 그런 식당이 맛있기는 하다)
요즘은 전통시장도 대부분 현대화되어 깨끗하고 정리도 잘되어 있지만 특히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깨끗할 뿐만 아니라 시장 안에 휴게시설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걷다가 힘들면 통로 가운데 마련된 벤치에 앉아 쉴 수도 있고 방금 산 군것질거리를 먹을 수도 있어 좋았다. 다만 시장 어디에서도 휴지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쓰레기는 구매한 곳에 갖다 주거나 직접 들고 가야 했다.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많은 관광객이 찾는 제주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서 꼭 맛봐야 하는 음식 중 하나인 마농(마늘) 통닭을 샀다. 집에서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기로 했는데 그 맛이 궁금해 시장을 구경하면서 한 두 개씩 집어먹었다. (정작 집에 와서 보니 먹을 게 없었다.) 제주 마늘은 맛이 달아 통닭과 잘 어울렸다. 내가 좋아하는 흑돼지 족발도 하나 샀다. 운 좋게 마지막 남은 하나였다. 한방약초와 허브를 넣어 푹 삶아 쫄깃하고 건강한 맛이었다. 흑돼지 스테이크, 문어빵, 우도땅콩만두와 옛날 야채빵은 그 자리에서 바로 먹었다. 귤도 한 봉지 샀다. 귤은 같은 가격이라면 전통시장이 양도 많고 더 맛있다는 것이 미식가 아내의 평이었다. 이곳의 명물 음식 중 하나인 꽁치김밥은 도전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꽁치 한 마리가 그대로 들어가는데 엄청 맛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꽁치 머리를 보니 누구도 먹어보자고 하지 않았다. 또 하나의 명물 모닥치기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떡볶이에 튀김과 김밥을 함께 넣어 먹는 독특한 방식인데 너무 배가 불러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놀다 보면 점심은 간단하게 먹게 되어 저녁 시간에는 배가 엄청 고파진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시장에 오면 평소 먹는 것보다 두 배는 먹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너무 배가 불러 이제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그럼 나는 예언을 하나 한다. 샤워 후 족발에 맥주를 마시고 있을 아내가 보인다고. 내 예언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아빠가 알아두면 좋을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이야기>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1960년에 상설시장인 서귀포매일시장으로 개설되었다. 80년대까지 지역 대표 특산물인 감귤 산업을 토대로 번성했지만, 감귤 산업의 한계와 인구의 유출 그리고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침체기를 겪었다. 2000년대 이후 아케이드 시설을 갖추고 좌판과 간판 등을 정비하고, 대형주차장을 마련하는 등 시설의 현대화를 통해 고객의 편의를 높이는데 노력하였다. 이후 2010년에 이르러 시장의 기능에 문화와 예술이 접목되어 전통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제주올레 6코스에 포함되어 이름도 현재의 서귀포매일올레시장으로 바뀌었다. 제주에서 시작된 올레길은 전국에 걷기 열풍을 낳았고 제주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때에 맞춰 다양한 문화예술축제를 개최하는 등 관광객의 발길을 끌었다. 시장 중앙에 생태 공간도 조성했다. 구간마다 분수대와 물레방아, 전통 해녀 조형물도 설치해 차별화를 꾀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침체에 빠져있던 시장은 전국에서 가장 활성화된 전통시장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시장 맞은편에 조성되어 있는 이중섭거리는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이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임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중섭거리에는 그가 가족들과 피난 와서 머물렀던 거주지와 미술관, 공방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공간과 독특한 카페가 줄지어 있다. 또한 주말이면 서귀포예술벼룩시장도 열려 제주의 예술가들이 그림이나 물품, 사진, 작품 등을 판매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