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 만국의 직장인이여 몸 좀 챙깁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직장인이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역설적이다.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요, 만병통치약은 운동임을 모르는 직장인은 하나도 없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부디 꺼내지 않기를 바라는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직장인은 목구멍이 포도청인 슬픈 사슴이다. 대부분의 사무직 직장인들은 하루 8시간 근무 시간 중 10시간 이상을 앉아서 일한다. 분명히 분모는 8인데 분자가 10이 나오는 이상한 나라의 가분수다. 상황이 이럴진대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직장인의 거의 유일한 즐거움인 점심시간도 열정적인 부서장이 '모처럼 우리 같이 식사나 할까?'라던가 '오늘은 working lunch 어때?'라는 망발과 함께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치환되며 아침 햇살 아래 새벽 안개처럼 흔적도 없이 흩어져 버린다. 근무 시간 한 시간 줄여줄 것도 아니면서. 더럽게 맛없던, 게다가 불편했던, 점심 식사는 만끽해야 할 유일한 안식의 시간을 좀먹고 과거 속으로 영원히 자취를 감춰버린다. 이렇게 쌓인 스트레스를 퇴근 후 운동으로 해소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왜 (자본주의의) 신은 치킨과 맥주, 삼겹살과 소주라는 환상의 콤비네이션을 세상에 내보내 직장인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인지. 과연 어떤 직장인이 저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고행으로 가득한 사막, 아니 헬스클럽으로 향할 수 있단 말인가!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직장인들은 줄을 서시오, 아니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시길.
환자 중심의 서비스와 정밀한 검사로 유명한 메이오 클리닉(Mayo Clinic)의 운동생리학자 제임스 레바인이 '니트(NEAT, 비운동성 활동 열생성)'라는 깜찍한 개념을 제안했다. 따로 시간을 할애해 운동하기 어려운 직장인들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개념이다. 간단하게 말해 '니트'란 열량을 소모하는 운동을 제외한 일상의 활동이다. 기꺼이 '한 잔'의 유혹을 뿌리치고 헬스클럽으로 향하는 1%의 직장인을 제외하면 보통 직장인들은 달리기, 스피닝 등과 같은 조직적인 고강도 운동보다 사소한 일상의 움직임에 의해 더 많은 열량을 소모한다. 제임스 레바인이 제안한 '니트'란 온종일 근육을 작고, 짧게, 자주 움직이는 활동을 말한다. 서기, 앉기, 눕기, 줍기, 쪼그려 앉기, 대화하기, 웃기, 칼질하기, 걷기, 청소하기 등 자세를 바꾸는 일상의 모든 움직임들이 열량을 소모한다는 것이다. 이때 명심해야 할 점은 이러한 활동을 의식적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일상의 활동을 할수록 칼로리 소모가 많아지고 운동 효과도 극대화된다. 아래는 1분당 대략적인 칼로리 소모량이다. 똑같이 활동하더라도 의식하며 움직일수록 칼로리 소모량은 증가하게 된다.
서 있기 : 1.5칼로리
세수 : 3칼로리
보통 걷기 : 3칼로리
빠르게 걷기 : 6칼로리
장보기 : 3칼로리
요리하기 : 2칼로리
화장실 청소 : 4칼로리
자전거 타기 : 5칼로리
세차 : 5.5 칼로리
계단 오르내리기 : 8~10칼로리
내 몸이 살아 숨 쉬는 증거다. 실제로 일주일에 7일 출근하며 온갖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음주, 폭식 등으로 몸을 혹사시킬 때 지치지 않고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계단 오르기였다. 당시 우리 회사 사무실은 20층 건물의 18층에 입주해 있었는데 하루에 세 번 20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걸어서 내려가기는 몇 번 시도했다가 무릎이 아파서 포기했다.) 아침 출근할 때 한 번, 점심 식사 후 나른한 오후 시간에 한 번, 야근할 때 한 번 모두 세 번을 꼬박 몇 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걸어 올라갔다. 처음에는 4~5층만 올라가도 마치 한라산이라도 등반하듯 숨을 헉헉거리고 땀을 비 오듯 쏟았다. 15층 이상부터는 무의식이 자아를 둘러메고 올랐다. 그렇게 20층까지 올라가는 데 대략 25분 정도 소요되었다. 그러다 2~3주 정도 지나고 몸이 익숙해지자 15~20분 안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호흡이 안정됨은 말할 것도 없고, 자아를 잃지도 않았다. 체중 감량 효과는 없었지만 당시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던 몸무게를 감안하면 실질적인 감량 효과가 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비흡연자였기에 일단 의자에 앉으면 일어날 일이 없었던 내게 계단 오르기는 유일한 운동이자 탈출구였다. 어떻게 20분이나 자리를 비우냐고? 솔직히 톡 까놓고 말해서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데 20분 정도 자리 비운다고 회사가 멈추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강남 한가운데 있던 빌딩이라 공기가 좀 탁하다는 약점은 있었지만, 계단 오르기를 하면 몸도 마음도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운동할 시간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나를 만나 고생하는 내 몸을 위해 하루에 40분(오전에 1회, 오후에 1회)만 투자하자. 우리가 계단이 없지,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인심 썼다. 회사가 강남역 근처인 직장인을 위해 정말 개꿀팁 하나 더 풀어놓는다. 점심시간 한 시간 동안 산책하기 좋은 코스가 다른 지역도 아닌 땅값이 금값인 바로 강남역에 있다. 심지어 봄에는 벚꽃과 개나리가 활짝 피어 '비밀의 화원' 같은 길이다. 중간에 가볍게 몸 풀 수 있는 운동기구와 '용허리 근린공원'도 있다. 강남역 우성아파트 사거리에서 서초2동 주민센터를 지나면 굴다리가 하나 나온다. 굴다리 지나기 전 옆길로 들어가면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나온다. 물론 산책로와 고속도로 사이에는 커다란 방음벽이 설치되어 있고, 산책로는 온통 나무로 뒤덮여 있다. 의외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 길은 여름에도 덮지 않아 점심시간에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처음 이곳에 가본 사람은 누구나 강남에 이런 길이 있냐며 깜짝 놀란다. 눈치껏 10분 정도 먼저 나와 얼른 점심 식사를 마치고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시절에는 점심도 굶고 이 길을 걸었다. 한 시간이면 교보생명 사거리까지 느긋하게 걸어갔다 올 수 있다.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 걸으며 거침없이 상사 뒷담화를 날리면 심신의 안정을 되찾고 오후 업무를 반듯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산책로야말로 내게는 제주 올레길 못지않은 치유의 길이었다.
우리 몸은 하는 일이 많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심장은 1분에 60~70회 이상 뛰고, 심지어 들숨과 날숨은 살아 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담고 있는 건 또 얼마나 많은가! 생각도 담고, 영혼도 담고, 마음까지 담는 그릇이 바로 몸이다. 때로는 스트레스도 담아야 하고 직장 상사 눈치도 왕창 담아야 한다. 그런 소중한 내 몸을 혹사시켜도 좋다고 누가 나에게 권리를 주었던가! 직장인들도 부디 몸을 챙겨야 한다. 운동할 시간 없다고 넋두리만 하지 말고, 바쁘다는 핑계만 대지 말고 이제 '니트'로 몸을 챙겨야 할 때다.
이 글에서 인용한 니트의 개념과 1분당 칼로리 소모량은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문요한의 <이제 몸을 챙깁니다>를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