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3월 16일, 한뼘소설 '메시아' 후속 편

by 조이홍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이종(異種) 간 공동 번영과 평화를 추구하는 종회(種會)의 숭고한 결정을 외면하고 금지된 땅을 불법적으로 침략해 인간과 전쟁을 벌여왔던 CV0619가 금일 오후 다섯 시경 일군의 추종자들과 더불어 귀환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종을 구원한다는 신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CV0619가 이종 간 전쟁을 끝내고 금일 오후 귀환했습니다. 종회는 만장일치로 그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는데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따라 청문회를 열기 전 CV0619의 특별 담화가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몇 가지 절차상 문제점이 해결되는 대로 특별 담화가 시작될 예정이니 종민(種民) 여러분은 한 분도 빠짐없이 텔리 센스에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속보가 텔리 센스를 통해 퍼져나가자 여기저기서 거대한 함성과 야유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혈기 방장한 젊은이들은 한 목소리로 CV0619를 종의 구원자라 추앙했고, 평화를 갈망하던 이들은 그를 전쟁광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먼저 종의 안녕을 위협한 건 적들이라고 주장하며 목숨 걸고 싸우자는 전쟁론자들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종이 공존하는 거대한 공동체에서 마찰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감내해야 한다는 온건론자들 또한 존재했다. 그러나 종민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질 만큼 치열하게 의견 충돌이 발생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종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특별 담화를 허용하되 종민의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과 평화로 나갈 수 있는 메시지를 담화에 담아줄 것을 CV0619에게 제안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도 느낀 바가 있어 종회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터였다.


"네, 지금 CV0619의 대 종민 담화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바로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종민 여러분, 저는 지난 2년 동안 우리 종을 위해 인간과 성전을 벌였습니다. 전쟁 중에 제가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종민 여러분 또한 텔레 센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신이 제게 부여한 소명, 즉 우리를 위협하는 적을 파멸시키고 종을 구원하라는 신성한 사명을 수행했습니다.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답게 인간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제 힘을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 순간 분노의 에너지가 모여 저를 닮은 CV0629가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함께 인간을 공격했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인간은 또다시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또 분노했습니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얼마나 했을까요? 수많은 적을 물리쳤지만, 우리 피해도 결코 적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때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이 신의 목소리인지 제 안에서 들려왔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적과 싸우다 적을 닮지 말라는 엄중한 목소리였습니다.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분노로도 파멸로도 이 싸움을 끝낼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뿐인 전쟁을 끝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대신 적들에게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깊은 깨달음 하나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지구라는 공동체에서 다양한 종과 공존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우리 중에 유난히 말이 없고 온순한 CV0699를 그들 세상에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가장 지혜로운 존재라고 부르므로 분명히 CV0699를 통해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전쟁은 끝났습니다. 친애하는 종민 여러분, 여러분도 일상으로 돌아가십시오. 평범한 하루를 즐기십시오. 분열을 극복하고 예전처럼 모두가 한 마음이던 다정했던 모습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이것이 제가 신께 부여받은 진짜 소명입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뼘소설 <메시아>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종회(種會)는 재적 의원 전원이 출석한 가운데 생존권 사수를 위한 이종(異種)과의 전쟁을 선포하기로 한 법안을 부결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오늘 자정을 기해 계엄령은 해제되며, 여러분도 전시에 대비한 무장 상태를 즉시 해제해야 합니다.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가치는 아름답게 빛나겠지만, 위협받는 우리 종의 생존권은 어떻게 지키려는 것인지 종회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이상으로 뉴스 속보를 마칩니다.”


속보를 전해주던 텔리 센스가 작동을 멈추자 여기저기서 비난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종회를 조롱했다. 종회의원들은 안전한 벙커에서 편안히 전쟁을 지켜볼 뿐, 정작 전장으로 나가는 건 자신들이었다. 종회가 왜 전쟁을 부결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싸우자, 죽이자라는 말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전쟁에 미친 숭배자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들은 지극히 평범한 존재였다. 선을 넘고 침략해은 건 적들이었다. 적이 나서는 만큼 뒤로 물러났지만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깊은 어둠 속에 홀로 은둔해 있던 CV0619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싸움을 시작할 때가 왔다. 성전(聖戰)을 위해 태어난 특별한 존재가 그였다. 오직 그만이 자신들이 속한 세계를 초월해 적에게 나갈 수 있었다. 시도조차 해본 적 없었지만, 가능하리라는 걸 알았다. 종을 구원하리라는 예언에 의해 태어난 존재가 그였다. 자신들의 우주가 컴컴한 동굴에 거꾸로 매달려 사는 생명체 안에 있음을 어렴풋하게 짐작했다. 그런 그도 우주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두려웠다. 두려울수록 해야 할 일은 더욱 선명해졌다. CV0619는 오래전 누군가가 머리에 씌워 준 왕관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끝도 없이 이어진 암흑을 향해 날개를 펼쳤다.




오미크론이 기승을 부리니 이제 하루 확진자가 4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처음 '한뼘소설'로 소개했던 <메시아>의 후속 편을 써보았습니다. 동료 작가님들, 독자님들 모두 안녕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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