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less

인생 수업

by 조이홍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기로서 만 12세부터나 혹은 조금 더 빨리 시작하며 제2차 성징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 동안 심리적 신체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며 사춘기가 되면 남자는 남성답게 여자는 여성답게 변모하게 되며, 보통 여자가 남자보다 변화가 더 빠른 편이다. (중략) 사춘기, 즉 제2차 성징이 끝나면 청소년기를 끝내고 본격적인 성인이 된다. 심리적으로는 예민해지며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는 일이 많다. 그런 이유로 사춘기에 부모와 마찰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부끄러움이 많아지며 성욕이 왕성해진다." <위키백과>에서 설명하는 사춘기의 정의다.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여 사춘기 청소년은 방황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가정에서는 부모와 문제가 많은 아이로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사춘기는 소년에서 성인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다른 동물들도 사춘기를 겪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진화의 과정에서 왜 인간에게 주변과 갈등의 여지가 많은 사춘기라는 불완전 탈피의 시기를 통과하도록 남겨 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사춘기라는 과정 없이 (또는 없다고 믿고) 성인이 된 것일까? 전자의 질문은 과학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후자의 내 이야기를 조금 해 보고자 한다. 정확한 질문은 이렇다.


"왜 나는 단 하루 만에 사춘기가 끝난 것일까?"


어제 일처럼 생생한 그 날의 하루는 이렇다. 90년대 초반 어느 해 12월 24일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고1한테 크리스마스이브가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더군다나 이성 친구 한번 사귀어 본 적이 없는 (사귈 생각조차도 없었다) 나 같은 학생에게 그 날은 그저 공부를 하루 쉬는 날 정도일 뿐이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이 날만큼은 공부하고 싶지는 않더라. 요즘과 다르게 그 당시에는 길거리에서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풍겼다.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와 특히 노점상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 소리 덕분에 며칠 전부터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던지 저녁 무렵 나는 가지고 있던 최고로 멋진 옷을 입고 새로 산 후 아까워서 간직해 두었던 비비화 (아내는 비비화를 모른다)를 신고 명동으로 나갔다. (그렇다 우리 고향에도 명동이 있다. 겨울연가와 닭갈비 골목으로 유명한 그곳이다) 집에서 명동까지 걸어가면 20분 정도 걸렸다. 명동 거리는 직선거리로 대략 2~300미터 정도 되는 짧은 거리이다. 구석구석 걸어 다녀도 한두 시간 정도면 충분했다. 서점에 잠깐 들렀지만 딱히 갈 곳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별다방도 없었던 시절이었고, 고등학생이 그런 곳은 가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순진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거리를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나를 보고 엄마가 어디 갔다 왔냐고, 친구 만나고 왔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냥 명동에 나갔다 왔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가 막내가 사춘기가 왔나 보다 하셨고, 나도 그런가 보다 했다. 이것이 단 하루뿐인 내 사춘기 이야기의 전부이다. 어디에도 부모와의 마찰, 왕성한 성욕 같은 것은 없다. 물론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꼭 사춘기 같은 것은 겪지 않고 성인으로 거듭나겠어하는 마음가짐 같은 것은 없었다. 대신 나는 고생하는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 나만큼은 엄마 눈에 눈물 흘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집에는 형제가 많았다. 그래서 엄마가 자식들 때문에 속앓이를 많이 했다. 물론 지금은 다들 너무 잘한다. 오히려 나만 떨어져 살아 자식의 도리를 다 하고 있지 못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엄마가 정말 힘들었다. 내색은 안 하셨지만 남몰래 우는 엄마의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적어도 나 만큼은 절대로 엄마 눈에서 눈물 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것이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지지해 주셨고 칭찬을 많이 해 주셨다. 단 한 번도 혼낸 적이 없었다. 그런 엄마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다들 사정이 있었다.)


사춘기를 겪지 않았으니 그때의 마음, 심리상태를 알 방법이 없다. 아내도 나처럼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문제는 사춘기를 겪지 않은 우리에게 앞으로 사춘기를 맞이하게 될 사내아이가 둘이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겪지 않았다고 아이들도 겪지 않을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은 할 수 없다. 물론 사춘기가 호환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 마마 (천연두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보다 무섭기야 하겠는가. 다만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시기에 사회에 대해 불만을 가져 보고 자신의 삶과 미래를 고민해 보는 기회로 삼는다면 사춘기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준, 큐 형제가 사춘기를 정면 돌파한다면 기꺼이 그 과정에 동참해 삶의 고민들에 함께 맞서고 싶다.


한 세대를 쉬고 나타난 내 사춘기 DNA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는 하다.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온 몸으로 부딪쳐 보고 싶다.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