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픽스업 소설 <뜨거운 지구 연대기> 2044년 7월
혼자 있기 좋아하는 오엔도 마을에서 가장 멀리 벗어난 건 반나절 거리에 있는 죽음의 땅 근처 동굴이 전부였다. 혼자 있고 싶을 때면 날씨를 미리 짐작한다는 임무를 핑계 삼아 그녀만의 아지트를 찾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오엔도 사방이 붉은 모래뿐인 죽음의 땅을 혼자 헤맬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사실 탐험대를 제외하면 마을에서 벗어나는 일은 금기시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변덕스러운 날씨만큼이나 화성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많았다. 미지의 세계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공동체의 관습을 따르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오랜 경험으로 깨달은 주민들은 선생님 말씀이라면 거역할 줄 모르는 모범생처럼 마을 밖으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 오직 공동체의 운명을 책임진 탐험대만이 목숨을 걸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갔다. 임무에 성공하든, 성공하지 못하든 그들은 영웅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 한때 몽상가이자 외톨이였던 한 소녀가 또 하나의 위대한 여정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누리와 헤어진 오엔은 꼬박 나흘을 쉬지 않고 달렸다. 날씨를 예측하는 능력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대기에서 촌장 할아버지의 푸근한 냄새가 전해졌다. 할아버지 냄새를 따라 죽음의 땅을 가로지르던 오엔은 가끔 모래더미 속에서 옛 마을의 흔적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흔적을 세상에서 지운 것도, 다시 쓸쓸한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두 바람이었다. 그중 한 폐허를 지날 때 오엔은 불현듯 커다란 슬픔이 폭풍처럼 밀려와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바로 그 버려진 마을에서 한때 부모님과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을 그녀만 까맣게 몰랐다. 붉은 대지의 먼지들이 폐허가 된 마을에 켜켜이 쌓이듯 시간의 편린들도 그녀의 기억을 온통 뒤덮어 삼켜버렸다.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갑작스레 닥친 운명의 무게 때문이라고 단정지은 그녀는 슬픔을 잊기 위해 더 열심히 달렸다. 좋은 일도 더러 있었다. 온통 붉은 모래뿐인 죽음의 땅에서 먹을거리를 발견했다. 마을이 들어설 만큼 넓은 '녹색의 땅'은 아니었지만,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하는 데는 충분했다. 누리가 정성스레 챙겨준 식량을 지쳐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아껴 먹었는데 녹색의 땅을 발견한 건 커다란 행운이었다. 게다가 날씨 운도 따라주었다. 웬일인지 변덕쟁이 화성 날씨가 그녀를 응원했다. 그저 살랑거리는 미풍만 흘려보낼 뿐, 지난 나흘 동안 목숨을 위협할 만한 강풍이나 돌풍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황량한 붉은 대지 위를 달리기에 최상의 조건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숨이 턱턱 막힐 듯한 무더위가 계속되었다. 특히 태양이 머리 위에서 기승을 부리는 한낮에는 단단한 피부를 태워버릴 듯한 강한 햇볕 때문에 무척 고통스러웠다. 마을 근처와는 차원이 다른 햇살이었다. 바이오 슈트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통구이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도 오엔은 멈추지 않았다. 지치면 잠깐 눈을 붙이거나 그늘을 찾아 한숨 돌릴 뿐 붉은 대지를 달리고 또 달렸다.
누구보다 날랜 오엔이 멈추지 않고 달렸지만 앞서 출발한 탐험대는 아직 따라잡지 못했다. 이번이 마지막 탐험일지도 모르는 촌장 할아버지가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양이었다. 천만다행으로 돌풍에 사고당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만으로 오엔은 큰 걱정 하나를 덜었다. 지혜로운 촌장 할아버지가 이끄는 탐험대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염려는 없었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금단의 땅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오지 않았던가! 이런 속도라면 탐험대는 이미 금단의 땅에 들어섰을 터였다. 그늘에서 잠시 허기를 때우던 오엔은 돌소금 냄새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왠지 다시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첫날밤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렇게 일주일을 내리 달린 그녀는 마침내 금지된 땅, 광활한 평원에 첫발을 내디뎠다.
오엔은 선조들이 왜 이 지역을 금단의 땅이라고 불렀는지 온몸으로 이해했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의 땅은 오래전에 생명이 존재했던 땅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금단의 땅을 달리는 일에 비하면 죽음의 땅에서 경험은 즐거운 소풍과도 같았다. 대지를 녹일 듯한 태양이 작렬하는 금단의 땅은 무(無)의 세계였다. 회색빛 대지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계곡이나 동굴, 하다못해 잠시 쉬어갈 만한 그늘도 없었다. 바람도 좀처럼 불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대지는 언제 사나운 폭풍이 휘몰아쳐도 이상하지 않았다. 눈에 닿는 대상이 아무것도 없어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방향을 잃기 일쑤였다. 비현실적인 공간에서는 달리고 있는지 멈춰 있는지 분간하기도 힘들었다. 평원 위를 달리는 그녀가 달리는 꿈을 꾸는 건지, 실제로 달리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달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꿈속에서도 달렸고 현실에서도 달렸다. 마을 주민들은 한데 어울려 다니기 좋아했고 수다 떠는 걸 즐겼다. 오엔은 달랐다.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좋았다. 고독은 언제나 다정한 친구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를 괴롭히는 건 지친 몸이나 배고픔이 아니었다. 고독을 벗 삼는 그녀조차 감당할 수 없는 진한 그리움이었다. 언제나 다정한 촌장 할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날씨를 예측하는 방법을 끈질기게 묻던 별빛 같은 눈을 가진 아이들, 일상의 안부를 묻는 명랑한 이웃들, 실없는 농담이나 해대는 누리가 몹시도 그리웠다. 쉬지 않고 달려도 여린 몸은 신기하리만치 잘 견뎌냈다. 너무 지치면 한숨 자고 일어나면 회복되었다. 유독 그리움만은 한순간도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그녀를 옥좼다. 몇 번이나 포기하려던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별들이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해 주었다. 그녀만의 특별한 의식으로 별들과 대화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미쳐버렸을지도 몰랐다. 이번에는 불행이 혼자 오지 않았다. 누리가 챙겨 준 식량으로 마지막 허기를 채운 지 일주일이 지났다. 열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견뎠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나아가기에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미세한 공기의 흐름에서 촌장 할아버지의 냄새를 제대로 쫓고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탐험대가 금방 눈앞에 나타나리라는 희망에 부풀다가도 해낼 수 없으리라는 좌절감이 어느새 그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민한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마음이 무너지자 몸도 회복되지 않았다. 한 걸음도 더 내디딜 수 없는 한계에 부딪쳤다. 절망의 품에 덥석 안기려는 순간 저 멀리서 낯익은 몸짓이 눈에 띄었다. 촌장 할아버지가 틀림없었다. 오엔은 마지막 힘을 짜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할아버지와 가까워질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녀를 덮쳤다. 촌장 할아버지를 만나면 무슨 이야기부터 꺼낼지 몇 번이나 반복했다. 지금은 한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인데 자꾸만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할아버지에게 다가갈수록 불안감의 정체는 선명해졌다. 오엔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차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녀의 처절한 절규가 금단의 땅에 울려 퍼졌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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