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Chapter 4

본격 픽스업 소설 <뜨거운 지구 연대기> 2026년 4월

by 조이홍

Chapter. 4


또 보자는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승원과 송우만 회장의 첫 만남은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두 번째 만남이 가을로 예정되었지만, 또 한 번 신종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위협해 무산되고 말았다. 비대면으로 진행된 만남은 짧게 끝났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건강했던 송 회장이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안부를 물을 짬도 없이 그간 진행된 사항을 보고하고는 급히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봄, 서현주가 송 회장의 부고를 전했다. 그의 나이 향년 85세였다. 억만장자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나 세상이 온통 떠들썩해졌다. 살아생전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송 회장의 죽음을 애도했지만, 세간의 관심은 천문학적인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재산에 집중되었다. 경제전문가들은 고인이 생전에 소유한 주식과 부동산 가치를 분석하고 현금 보유액과 미술품 가치를 추정했다. 어떤 이는 10조를 조금 웃돈다고 예측했고, 또 어떤 이는 100조를 훌쩍 뛰어넘으리라 확신했다.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재산이 언론에 공개되자 평생 독신으로 지낸 억만장자의 상속과 관련한 자극적인 기사가 연일 포탈을 도배했다. 사망 소식과 맞물려 증권가 찌라시를 통해 괴상한 소문도 나돌았다. 생전에 송 회장이 보여주었던 기행에 걸맞게 재산 상속을 둘러싼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리라는 것이었다. 온 나라가 술렁댔다. 두 사람만 모이면 으레 억만장자의 재산 상속이 입방아에 올랐다. 학생들도, 주부들도, 직장인들과 노인들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주인 잃은 억만장자 재산의 향방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 어마어마한 팬덤을 자랑하는 한 아이돌 그룹의 단체 입대도, 세기의 결혼으로 주목받던 스포츠 스타와 재발 3세의 이혼도, 오랫동안 쇼비즈니스 업계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연예인의 정치 입문 소식도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했다. 온라인 세상은 더 뜨거웠다. 고인의 유일한 혈육이라며 재산 상속을 주장하는 이들이 하루에도 몇십 명씩 등장했다. 그들의 레퍼토리는 얼추 비슷했다. 논리나 근거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인을 아버지라 부르며 대성통곡했다. 그런가 하면 고인의 측근임을 자처하는 몇몇 인물들이 '억만장자의 재산 상속을 둘러싼 음모'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올린 동영상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들 역시 별다른 근거를 내놓지 못했지만, 사리를 분별하는 전두엽의 기능은 돈이라는 환각제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기는커녕 돈을 향한 무한한 욕망이 광란의 춤을 추었다. 고인의 장례식을 치른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관심은 불꽃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봄 햇볕이 제법 따가운 4월 1일, 거짓말처럼 포털과 각종 언론에 ‘4월 5일 억만장자 유언장 전격 공개’라는 자극적인 머리기사가 등장했다. 자신을 송우만 회장의 법률 대리인이라고 밝힌 변호사가 Pooma-E 금융 그룹이 만든 메타버스 세계 ‘Pooma-E World’를 통해 고인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을 전하리라는 기사였다. 해당 기사의 진위를 둘러싸고 웃지 못할 논란도 일었다. 고인의 법률 대리인이 누구나 알만한 대형 로펌 소속이 아닌 지방에서 작은 법률사무소를 운영한다는 사실이 한 언론사의 단독 보도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Pooma-E 금융 그룹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지만,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역사상 가장 떠들썩한 식목일이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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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는 듯 송우만 회장의 유언장을 공개하는 Pooma-E World의 광화문 광장에는 1억 명을 웃도는 아바타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메타버스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검정 슈트를 차려입은 승원의 아바타가 광화문 광장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러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아바타들이 양쪽으로 갈라지더니 이내 그를 둘러싸고 거대한 동심원을 만들었다. 시장통처럼 시끌벅적하던 광화문 광장이 일순간에 고요해졌다. 한가운데 우뚝 선 승원의 아바타가 손에 든 원고를 펼쳐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Pooma-E 금융 그룹 송우만 회장의 상속을 진행할 법률 대리인 오승원 변호사입니다. 생업에 쫓기시느라 바쁘신 중에도 고인의 유언장 공개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제 출신 학교나 소속과 관련해 작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해를 가리키는데 해는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아무튼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고인의 유언장을 낭독하겠습니다.”

긴장한 탓인지 이제 경우 인사말만 전했는데 목이 타들어갔다. 현실의 승원이 물 한 모금을 들이켜자 그의 아바타도 똑같이 행동했다. 여기저기서 물 마실 시간이 어딨느냐, 궁금해 죽겠다, 이거 사기 아니냐 등등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쁜 사람은 그냥 나가라는 북극곰 형상을 한 아바타의 댓글이 순식간에 '좋아요' 천만 개를 기록했다.

“하나, 나 송우만은 재산의 절반인 50조를 지구 온난화를 늦추고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설립한 ‘새로운 지구 재단’에 기부한다. 이를 통해 미래 세대가 과거의 우리처럼 축복받은 기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첫 번째 유언이 공개되자 광화문 광장이 일시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보여줬다며 칭찬하는 이들과 이럴 거면 왜 유언을 공개하는지 따져 묻는 이들로 나뉘었다. 두 집단은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양 서로를 잡아먹을 것처럼 맹비난했다. 뇌나 심장 같은 신체 일부가 있는지를 두고 격렬하게 논쟁했다. 이때 흰 토가를 입고 수염이 덥수룩한 거인 형상의 아바타가 홀연히 등장해 아직 재산의 절반만 공개했으니 좀 더 지켜보자고 둘 사이를 중재했다.

“둘, 나 송우만은 재산의 30퍼센트에 해당하는 30조를 기후 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대한민국 최대 곡창지대인 상남평야와 그 일대를 매입하고 이를 국가에 기부한다. 이를 통해 미약하나마 식량 안보를 지키고 우리 아이들이 과거 세대처럼 배곯지 않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번에는 광화문 광장이 조용했다. 다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듯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마지막 남은 20퍼센트의 향방을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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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나 송우만은 재산의 20퍼센트에 해당하는 20조를 상속하기 위해 지상 최대의 쇼를 개최한다. 1년 전, 특별한 열쇠를 만들어 가로 15센티미터, 세로 7센티미터, 높이 5센티미터 목재함에 담아 상남평야 어딘가에 묻어두었다. 국적,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이 열쇠를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20조를 상속받을 수 있다. 기간은 유언장 공개일로부터 30일이며, 기한 내에 열쇠를 발견하지 못하면 상속액은 ‘새로운 지구 재단’에 자동 기부된다. 단, 비밀 열쇠를 찾기 위해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어떠한 장비도 사용할 수 없다. 괴팍한 늙은이가 준비한 마지막 쇼가 여러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삶은 하나의 거대한 보드빌 쇼와 같다고. 그러니 마음껏 즐기시기를 바란다. 이상과 같이 고인의 유언장 공개를 마칩니다.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편에 계속…)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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