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픽스업 소설 <뜨거운 지구 연대기> 2063년 6월
대기를 붉게 물들인 먼지구름으로 뜨거운 한낮에도 어스름 저녁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때맞춰 소풍 나온 양떼구름이 태양과 스칠 때마다 대지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었다. 삶의 풍파를 견뎌낸 주름 투성이 노인의 얼굴처럼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곰살맞은 오후였다. 대지 위로 뾰족하게 머리를 세운 야자수들도 고즈넉한 정취를 더했다. 그 순간 태준은 어릴 적, 이제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지도에서 지워진 ‘잃어버린 섬’으로 부모님과 함께 여행 갔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붉게 타들어 가는 노을이 유난히 아름다운 섬이었다. 어린 소년의 눈에도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우러진 해 질 무렵의 하늘은 강렬했다. 그 모습을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시키려는 듯 미동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태양과 하늘과 섬과 바다가 그려낸 수채화 같은 풍경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는 태준의 소박한 바람은 갈기갈기 찢기고 말았다. 그가 속한 세계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태준은 망각의 강물 저 멀리로 흘려보낸 낡은 기억이 떠오르자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시절 동네 골목길을 함께 뛰놀던 단짝 친구와 우연히 마주친 기분이었다. 꺽다리 야자수 때문일지도 몰랐다. 지금은 어디에서나 있는 흔히 볼 수 있지만, 그가 어렸을 때는 오직 ‘잃어버린 섬’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나무였다. 야자수가 즐비하게 늘어선 이국적인 풍경이 섬의 매력이었고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매일 뜨고 지는 해조차도 특별한 섬이었다. 태준은 굳게 걸어두었던 빗장 사이로 요즘 들어 불쑥불쑥 머리를 들이미는 먼지투성이 추억들이 내심 반가웠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기억 밖으로 밀어낸 그 시절의 농밀한 감정들과 다시 마주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이었다. 태준은 투명 마스크 너머 풍경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군데군데 군락을 형성해가는 침엽수들은 뜨거웠던 지구가 조금씩 식어가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땅속으로도 그러할 터였다. 무섭게 자라나는 나무들은 마치 어린 시절 잠들기 전에 어머니가 읽어 주시던 ‘재크와 콩나무’의 마법 콩나무 같았다. 신비한 콩은 거짓말처럼 하룻밤 사이에 구름을 뚫고 거인이 사는 하늘나라에 닿았다. 신기한 이야기에 푹 빠져 매일 밤 읽어달라고 어머니를 졸랐더랬다. 마법의 콩은 얻지 못했지만, 이제 인간은 수개월 만에 나무를 수십 미터까지 자라게 했다. 해수면 상승으로 바닷가 도시들과 도서 지역이 지도에서 사라지고 경작지도 급격히 줄어들면서 몇몇 유전자 변형 기술이 빠르게 일상에 적용되었다. 과학자들은 마치 출발선에 나란히 선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처럼 ‘탕’하는 신호와 함께 경쟁하듯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다. 중요한 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방향이었다. 좋은 기술이란 인간이 아니라 지구에 얼마나 이로운가로 결정되었다. 두 번의 참혹한 사건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물러서는 지혜를 터득했다. 너무 늦었고 대가는 혹독했다. 농업혁명에서 시작된 풍요의 수레바퀴는 과학 기술과 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고속 엔진을 달고 인류에게 다른 어떤 종(種)도 경험하지 못한 쾌락을 선사했다. 화려한 파티 중에도 미래를 걱정하던 깨어 있는 과학자들과 지식인들이 머지않아 파국이 닥쳐오리라 경고했지만 달콤함에 중독된 사람들은 멈출 수도 없었고 멈추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결국 자신이 이룩한 성취에 도취된 인류는 훗날 역사가들이 ‘파멸의 주간’이라고 명명할 잔인한 4월을 아무런 대비 없이 맞이해야만 했다.
만물이 태동하는 생명의 계절에 역설적으로 수많은 종(種)이 멸절하는 대재앙을 피할 수 없었다.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출현한 그들은 지혜로운 신참의 탐욕에 제물로 전락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건 과학 기술로 단단히 무장한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수백 년 동안 쌓아 올린 문명의 상징들이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수많은 사람이 가족과 친구를 잃었고 삶의 터전마저 잃어버렸다. 인류를 지옥의 불구덩이로 밀어 넣은 원인도, 뜨거운 불구덩이에서 꺼내 준 은인도 공교롭게 모두 과학 기술이었다. 씁쓸한 미소를 짓던 태준은 얼굴에 밀착된 초박막 강화유리 소재의 안면 마스크로 손을 가져갔다. 투명 폴리이미드에 나노 여과기에 내장되어 미세먼지뿐만 아니라 각종 유해가스를 차단해 주는 K-619 보급형 마스크였다. 한 세대 동안 마스크는 제2의 허파라고 불릴 만큼 외부활동 시 없어서는 안 될 안전장치였다. 법률로도 강제했지만, 사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외출하는 배짱 두둑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한동안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빨라진 진화의 산물로 생체 마스크를 착용한 신인류가 태어나리란 농담이 유행할 정도였다. 마스크는 지난 한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스크도 서서히 무대에서 내려올 준비를 해야만 했다. 세계 정부가 지난달부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안전 수준인 400ppm 이하로 떨어진 지역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극히 일부 지역에만 해당하지만 30여 년 만에 찾아온 탈(脫) 마스크 조치였다. 태어날 때부터 마스크를 착용했던 젊은이들에게 마스크는 피부와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마스크 없는 일상이 어떤 의미일지, 어떤 정신적·육체적 영향을 끼칠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한 뉴스가 연일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태준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신세대들에게 얼마간의 적응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래가 펼쳐지리라는 점이었다.
마침 서율이 잠든 G-2022 지역도 몇 군데 남지 않은 자연림에 해당되었다. 거의 30년 만에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어볼 기회였다. 태준은 살아 있는 동안 이런 행운이 찾아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괜스레 울컥하는 감정을 시간의 무게로 간신히 억눌렀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고 해도 자동 폴딩 버튼을 누르는 그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모진 세월을 버텨온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이라도 선뜻 용기 낼 수 없을 만큼 마스크는 삶 그 자체였다. 어렵사리 용기 내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가자 매캐한 공기가 순식간에 태준의 코를 통해 폐까지 파고들었다. 순간 헉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호흡이 정지되는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시도하는 자연 호흡에 그의 신체 기관들도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오류에 빠졌다. 멈춘 호흡을 다시 시작하라고 뇌에서 명령했는지 태준은 연거푸 재채기를 했다. 그와 동시에 손목에 차고 있던 다목적 시계에서 다급한 경고음이 들렸다. 신체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애플리케이션이 태준의 호흡과 맥박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반응해 자동 활성화된 탓이었다. 몇 가지 수치들을 꼼꼼하게 확인한 태준은 시계 화면을 터치해 경고음을 잠재웠다. 이제는 이런 변화들에 익숙해져야 했기에 태준은 캡슐 형태로 변한 K-619 마스크를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다. 사랑과 재채기는 감출 수 없다더니 멈추지 않는 재채기가 잔망스러웠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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