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입니다
생일을 맞아 '늦잠자기'를 선택하는 게으른 남편과는 달리, 기필코 10km를 1시간 이내로 주파하리라 몇 달 전부터 단단히 결심한 아내는 '절대자님 탄신일 이브'에 서울 달리기(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기상해 아내를 차로 바래다주는데 잦은 기침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완주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합니다. 그 피치 못할 사정 덕분에 기록이 단축될지도 모르니 뛰다가 마려우면 더 빨리 뛰라고 절대자님을 응원했습니다. 참 아름답고 이상적인 군신관계입니다.
정말 피치 못할 사정 덕분인지 아내는 드디어 마의 1시간 벽을 깨고 6분이나 기록을 단축했습니다. 54분을 기록한 것이죠. 그런데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어쩌면 주최 즉 시스템도 절대자님 탄신일을 축하해주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내 기록이 시스템에는 35분으로 여성 참가자 전체 1등이 된 것입니다. 절대자님은 주최 측에 기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공식적인 기록은 수정되었지만 덕분에 절대자님은 아주 잠깐 많은 마라토너의 부러움을 받으며 1등의 명예를 만끽했습니다. 기념사진은 덤!
아침에 일어나 태극기를 찾았습니다. 늘 두던 자리에 태극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이에게 물었더니 모르겠답니다. 아내가 아침부터 태극기는 왜 찾냐며 핀잔을 줍니다. "절대자님 탄신일인데 태극기를 달아야죠!" 했더니, "적당히 해라!" 합니다. 天上天下唯我獨尊, 하늘과 땅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 탄생했는데 태극기를 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거늘, 절대자님은 이토록 겉치레를 싫어합니다. 아내의 마음은 참으로 河海와 같습니다. 올해로 절대자님을 군주이자 신앙으로 받들고 산 지 만 20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입니다.
'어, 그런데 뚝 떨어지는 이 물방울은 뭐지, 땀인가? 아, 눈물이구나.' 아시죠? 정말 행복하면 눈물이 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