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쓰고 또 쓰는 수밖에...
김동식 작가의 <초단편 소설 쓰기>를 알게 된 건 한창 '한뼘소설'이라는 걸 쓰고 있을 때였다. 한뼘소설은 말 그대로 손바닥만 한 분량의 소설로 1분 정도의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짧은 이야기다. 바쁜 현대인들이 일상에 지쳐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아주 짧은 이야기로 그들의 '독서 갈증'을 풀어주고 싶었다. 나름 애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한뼘소설을 쓰고 있을 때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다. '어라,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네.' 싶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 김동식 작가를 흉내 내는 것 같아 멀찌감치 밀어 두었다. 어쩌면 풋내기 작가의 치기 어린 자존심일지도 몰랐다. 그러다 편성준 작가님의 <살짝 웃긴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읽고 읽어볼 결심을 하게 되었다.
<초단편 소설 쓰기>는 정말 훌륭한 초단편 소설 쓰기 작법서다. 초단편 소설은 단편 소설보다 짧고 한뼘소설보다 긴 이야기다. 김동식 작가의 말처럼 '긴 서사를 최대한 압축적으로 그려낸 이야기이며 동시에 굉장히 경제적인 글'이다. '재미'가 중요하며 '반전'은 필수이다. 꼭 필요한 장면들로만 소설이 구성되기에 말로 할 때와 읽을 때의 분량이 비슷하다. 따라서 초단편 소설 쓰기의 호흡은 5분 내외며 길어도 10분을 넘지 않는다. 장편 소설은 말할 것도 없고 단편 소설조차 읽을 여유가 없는 독자들에게 이보다 좋은 '이야기'가 또 있을까. 이 책에는 초단편 소설 쓰기에 대한 작가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작가의 말대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영업 비밀'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이대로만 쓰면 금방 제2, 제3의 김동식이 나오는 건 문제도 아닐 터였다. 물론 김훈이나 조정래가 아니라 '김동식'이라는 점이 포인트고, 이미 초단편 소설이라는 분야를 김동식 작가가 굳건히 지키고 있기에 독자는 반드시 한 걸음 더 나가야 할 테지만, 훌륭한 길라잡이인 것만은 분명하다. 소설 쓰기에 도전해 보고 싶다면 이 책만 한 작법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튼 위로나 격려, 작가의 태도나 자세 따위는 언급하지 않는다. 오직 초단편 소설 쓰기로 나아가기 위한 현실적인 조언들 뿐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작가의 작품, 예를 들어 <회색 인간>을 읽어 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초단편 소설 쓰기>에서 설명한 방법들이 <회색 인간>에 그대로 구현되어 있으니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재미있기까지 하다.
생활밀착형 SF소설 <지구 연대기>를 끝내고 브런치북에 응모했다. <지구 연대기>는 열 편의 단편 소설을 엮은 픽스-업 소설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모두 독립된 이야기지만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이도록 쓰였다. 열 편의 단편을 한글 파일로 한데 모으니 원고지 600매 분량의 장편 소설이 되었다. 600매 분량의 장편 소설을 마음먹고 쓰려고 했다면 아마 더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짧은 편은 원고지 20매 분량, 긴 편은 80매에 달했다. 아무튼, 한 편으로 묶으니, 내용과 상관없이, 꽤 그럴싸해 보여 큰 짐 하나를 벗어놓은 듯 홀가분했다. 그런데 사실 열 편의 단편 소설들 대부분은 한뼘소설이 그 시작이었다. 그렇다, 손바닥만 한, 원고지 5매도 채우지 못했던 짧은 이야기들이 출발점이었다. 미래의 지구를 어떻게 그려낼까 고민하느라 망망대해를 헤맬 때 한뼘소설은 훌륭한 등대가 되어 주었다. 정작 열심히 한뼘소설을 쓸 때는 이런 식으로 활용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만, 차곡차곡 모아둔 글이 큰 힘이 되어준 것이다. 가끔 '진짜 작가도 아닌데 뭘 이렇게 열심히 쓰지?' 스스로 질문하곤 했다. 누군가가 읽어주지도 않는 브런치 글쓰기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나 자신을 설득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럴 때면 '이렇게 써놓은 글이 언젠가 재산이 된다'는 어떤 브런치 작가님의 조언을 떠올렸다. 지금은 내가 내 글에 독자가 되는 걸로 만족하고 묵묵히 써 내려가자 싶었다. 그렇게 500편 이상의 글을 썼다. 처음 <지구 연대기>를 기획했을 때 스무 편을 채우리라 마음먹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곁에 놓인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가 '할 수 있다'라고 격려해 주었다. 레이 브래드버리도 단편 소설들을 <화성 연대기>로 출간할 때 수많은 벽에 부딪혔다. 조엔 롤링은 또 어떤가. <해리 포터> 원고를 얼마나 많이 퇴짜 맞았던가. <지구 연대기> 열 편을 끝낸 시점에서 다시 한뼘소설을 시작해볼까 한다. 아주 작은 이야기들이 스스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루도록 그저 땅을 일구고 물길을 내주며 가끔 천연비료를 흩뿌려줄 계획이다. 그럼 작은 씨앗들이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수분을 머금고 광합성을 통해 훌쩍 자랄 터였다. 좋은 소설은 그렇게 태어난다고 분명히 어디선가 읽었다. 작가의 역할은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며 기록할 뿐이다. 작가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이야기들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 환경은 열심히 쓸 때만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