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장을 정리하며
프랑스의 유명 미식가 브리옹(Anthelme Brillat-Savarin)이 자신의 책에서 인용해 유명해진 속담입니다. ChatGPT에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줍니다. "음식이 인간의 건강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강조하며,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음식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음식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올바른 음식 선택이 인간의 삶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습니다."라고요. 맞습니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시대이니까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는 지금도 하루에 수 천명의 아이들이 기아로 사망하지만, 그 누구도 먹기 위해 사는 삶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먹는 거, 정말 중요하니까요.
이금희 아나운서는 자신의 책 <우리, 편하게 말해요>에서 "You are what you say"라고 살짝 비틀어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는 말을 들려주세요. 그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드리죠." 베테랑 아나운서의 당당함이 참 멋져 보였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것처럼 이 책은 우리 집의 첫 번째 '화장실 책'입니다. 걸걸한 말씨를 자랑하는 아이들의 언어 순화에 도움이 될까 해서요. 아이들보다 아내와 제가 주로 읽지만, 언젠가 화장실에서 스마트폰 대신 이 책이 아이들 손에 들려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먹는 것만큼 말하기도 무척 중요하지요.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잖아요. 요즘은 말 한마디 잘못해 고소당하기도 하니 입조심해야죠. 시절이 매우 수상합니다.
저는 이 말을 또 살짝 비틀어 이렇게 말해 봅니다. 먹는 것만큼, 말하는 것만큼 읽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아, 이건 저만의 착각인가요? 사실 더는 읽는 게 중요한 시대는 아니지요. 요즘 누가 촌스럽게 책을 읽나요. 몇 백 페이지짜리 어려운 책도 유튜브에서 10분 만에 설명해 주는 걸요.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요? 그렇게 요약된 정보가 정말 그 책의 전부일까요?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목적지에 이르는 동안 만나는 길가에 핀 꽃들, 연녹색으로 물든 5월의 숲,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빛나는 강줄기 또한 여행의 일부입니다. 독서는 과정이 8할입니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요.
뜬금없이 미니멀 라이프에 꽂힌 아내가 책장을 째려보며 '정리 한 번 하자!' 합니다. 아니, 한 권 한 권 손때가 묻지 않는 녀석이 없는데 이걸 정리하자고? 뒤통수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사실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모아 온 책을 보고 있으면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버리자니 아깝고 그냥 두자니 부담이긴 했습니다. 독서 습관이 워낙 고약해 내다 팔 수도 없습니다. 형형색색 밑줄은 기본이고 메모에 감상까지 적어두니 알라딘에서 '안 사요' 할 게 뻔하지요.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읽을 테지만, 아직 읽기에는 좀 어려운 감이 있습니다. 몇 번 권했다가 낭패를 보았지요. 유일한 해결책은 제가 다시 읽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베스트셀러나 재미있는 소설 위주이니 다시 읽지 않을 까닭도 없지요.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일 테고, 신간을 읽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지요. 그래도 다시 읽겠다고 하면 당장 정리하자는 아내 말을 유예할 수는 있을 테니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책장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참 다독했네요. 어떤 책들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시간의 파편들이 뽀얗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물티슈와 마른걸레로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니, 아 이건 아니죠, 새 책처럼 쨍쨍해졌습니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책장에 방지해 두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으니까요. 아내 덕분에 다시 옛 친구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혹시 이게 아내의 빅 픽쳐였을까요? 브런치 동료 작가님들은 이 책들을 보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겠어요? 작가님들도 작가님의 서재를 보여주세요, 그럼 제가 작가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드릴게요. 하하하, 농담입니다.
사실 이 책은 절반, 아니 그 반의 반도 되지 않습니다. 책도 그림책도 어마어마하지요. 사진 찍으려면 간단한 청소와 정리를 해야 하는데 너무 많아서 도저히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책이 많아서 좋냐고요? 네, 좋은 친구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