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해 먹지?" 실존적 고민의 대열에 합류하다
무려 20여 년만이다. '전생에 우주를 구한 자'의 운명을 타고난 아내는 'Sieze the moment(순간을 즐겨라)'라는 아포리즘을 매 순간 실천하는 '자유 영혼'이다. 그런 아내가 스스로 자유를 옥죄고 '열공 모드'에 들어갔다. 주말이면 이른 수영 후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집에 있으면 세 남자가 달달 볶으니 통 공부가 되지 않는단다. 솔직히 우리가 좀 그랬다. 아내,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했다. "애들 밥은 내가 잘 챙겨 먹일 테니 집안일 신경 쓰지 말고 시험공부에만 집중해." 모처럼 국가고시에 도전한 아내의 열정을 북돋우려 허세 아닌 허세를 좀 부렸다. 청소나 설거지는 어느 정도 자신 있었지만, 라면과 떡볶이를 제외하면 '요린이(요리 초보)' 수준인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끼니마다 라면을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닥치면 뭐 어떻게 되겠지 싶었다. 참 안일했다.
주말 아침이면 고민이 깊어졌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침을 걸러 브런치가 몸에 밴 내게 눈뜨자마자 "배고파, 아침 뭐야?" 묻는 아이들은 외계인만큼이나 낯설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아내가 미역국을 한 솥 끓여두었지만 까다로운 우리 집 평생 손님들은 절대 같은 음식이 연거푸 밥상에 오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아내의 자조 섞인 한탄이 십분 이해됐다. 그렇다고 끼니마다 칠첩반상을 내놓을 수도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대기업의 도움을 받는 길뿐이었다. MSG를 사용하지 않는 아내처럼 정성을 다해 요리를 만들 자신은 없었다. 서툰 아빠보다 음식에 더 진심인 전문가들이 밤새워 연구한 '요리의 정수'들을 마다할 까닭이 없었다. '요리 장인' 장모님의 밑반찬(주로 나물 반찬)도 냉장고에 가득했다. 어찌어찌하면 조금 투박해도 적당힌 균형 잡힌 소박한 밥상을 차려낼 듯했다.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밥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아내와 달리 입 짧은 아이들에게 엄했기 때문이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오이'를 먹지 않는 둘째에게 오이 반찬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할머니와 함께 식사할 때는 잘 먹는 나물 반찬을 집에서는 입도 대지 않는 건 그냥 눈 감아 줄 수 없었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버섯볶음이 그랬다. 할머니 앞에서는 척척 잘도 먹더니 집에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오호, 요것 봐라. 가만히 있을 줄 알고? "버섯 세 개 먹어야 비엔나소시지 하나 먹을 수 있어!" 선언하자 동시에 원성이 터져 나왔다. 안 들린다, 못 들은 척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음식을 좋아하던 아이들은 또래에 비해 나물 반찬을 무척 잘 먹었다. 솔직히 그 나이 때 나는 먹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반찬들이다. 편식하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는데 자랄수록 몸에 좋은 음식보다 입에 좋은 자극적인 음식을 찾았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인스턴트식품을 먹지 않을 수 없겠지만,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었다. 그 옛날, 라면 끓일 때 계란 넣는 걸 잊지 말라던 어머니의 마음일 터였다.
가장 자신 있는 음식인, 어차피 두 가지밖에 못하지만, 떡볶이를 해주겠다고 하니 아이들이 손사래를 쳤다. 아빠 떡볶이는 이제 지겹단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에서는 열불이 났다. "굶고 싶냐?"는 거친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밀어 넣었다. 언젠가 한 번 만들어 주었던 '만둣국'을 끓여 달란다. 사실 그때는 갓뚝이 도움을 받았더랬다. 갓뚝이 사골육수에 만두와 떡을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그만이었다. 떡볶이 만들 계획이라 사골육수는 준비되지 않았다. 그때 문득 아내가 알려준 천연 조미료가 떠올랐다. 국이나 찌개를 만들 때 으레 북어대가리, 파뿌리, 뒤포리, 무 등으로 육수를 우려내는 아내가 자신이 부재 시에 요린이 남편이 음식을 만들게 되면 넣으라고 일러준 비법이었다. 50원짜리 동전만 한 천연 조미료 두 알을 넣고 무작정 끓였다. 떡과 만두를 넣고 달걀을 풀었다. 결과는? 밍밍한 게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배.신.감. 마음이 급했다. 만둣국에는 뭘로 간을 하지? 서둘러 냉장고를 뒤졌다. 그런데 이게 뭐야, 간장 종류가 이렇게나 많다고? 양념 칸이 맛간장, 진간장, 국간장, 우동간장, 계란간장으로 그득했다. 맛간장, 진간장, 우동간장을 차례차례 넣어가며 맛을 보았다. 아무 맛도 나지 않던 맹탕이 조금씩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변했다. 마치 금을 만들려는 연금술사처럼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마침내 밍밍한 그 무엇이 내게로 와 만둣국이 되었다. 국물 한 숟가락 떠먹은 아이들이 "이거 진짜 아빠가 만들었어? 엄마가 육수 내 끓여준 것보다 더 맛있는 데?" 하는 게 아닌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들을 조용히 타일렀다. "때론 어떤 사실은 가슴속에 묻어 두는 편이 나은 법이야." 인생이 그랬다. 항상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었다. 아내가 없는 식탁에서 아내는 의문의 1패를 당했다.
맛난 만둣국에 어깨가 한껏 으쓱했다. 다음에는 떡볶이 해 줄게 했더니 아이들도 군말하지 않는다. 만둣국이 마음에 든 덕분이었다. 이제 떡볶이는 눈 감고도 할 만큼 자신 있었다. 장모님의 '마법 양념' 없이도, 고추장 없이 고춧가루만으로도 떡볶이를 만들 줄 알았다. 다음 목표는 '궁중 떡볶이'였지만 아내가 없을 때 도전할 만큼 용기 있지 않았다. 값비싼 소고기가 들어가지 않던가. 뚝딱뚝딱 눈 깜짝할 새 먹음직스러운 떡볶이가 탄생했다. 멀티가 불가능한 아내와 달리 동시에 만두도 구웠다. 배불리 먹은 아이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아빠 떡볶이 인정!" 했다. 밤늦게 귀가한 아내도 맛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연한 걸 새삼스럽게. 맛있게 떡볶이를 먹는 아내를 보자 자꾸 웃음이 나왔다. 아내는 아직도 자신이 의문의 1패를 당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알게 될 터, 때론 글쓰기가 이렇게 위험하다.
대기업의 사골 육수와 만두, 유명 식당의 설렁탕과 갈비탕, 그리고 떡볶이까지 동원해 끼니마다 변주에 변주를 거듭했다. 그래도 "오늘 뭐 해 먹지?"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레시피가 바닥을 보일 즈음 다행히 아내가 시험을 치렀다. 맛있다고 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도 서툰 밥상이 지겨워진 아이들이 엄마의 컴백을 갈망했다. 나도 건강하고 담백한 아내 손맛이 그리웠다. 모처럼 우리 세 남자의 소망이 하나로 뭉쳤다. 아내가 한 번만에 합격하는 것! 무언가를 애타게 갈망한 적이 있던가. 누군가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첫 째도, 둘 째도, 세 째도 아내의 합격이라고 말할 테다. 아내의 명예를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브런치에 글 쓸 시간이 부족한 나를 위해서.